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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엘리시움(Elysium 2013)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10. 16. 15:21


  

닐 블롬캠프 감독의 전작 '디스트릭트 9'이 꽤 신선하고 풋풋하고 생기넘치는 SF 영화여서 좋았었고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가 다소 높았기 때문인지, 또는 감독이 전작의 흥행성공으로 인한 중압감으로 판단력과 선구안이 흐트러져서인지 이번 영화 '엘리시움'은 이야기와 캐릭터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완성도에 균열을 야기했고 결과적으로 재미가 반감되었다. 

  

장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 황폐화된 지구에 사는 인간들의 삶이라든가 인공위성 엘리시움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한 표현이 그럴듯하게 현실적으로 잘 표현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비주얼은 괜찮았다는 얘기다.


전 지구적으로 극단적인 빈부의 격차는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고, 아마도 미래에는 비록 인공위성 자치국까지는 등장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더욱 확연하게 차이가 날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예상하고 있다. 상위 10% 또는 1% 또는 0.1% 인간들이 특별히 모여사는 곳이 엘리시움이라고 볼 수 있다.  

  

사는 거야 그렇다치고, 어디서 살든지 조금 불편하거나 편한 것의 문제니까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빈민가 출신 지구인들이 엘리시움으로 들어가려는 이유는 단지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도 없지 않지만, 만병통치 의료시설을 일반 가정에 구비해놓은 천국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불로장생이 보장된 곳이다. 매우 오래 살 수 있느냐, 아니면 적당히 살다가 죽느냐가 미래에는 계층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서구문명의 대표적인 종교에서 먼 옛날 예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특별히 선택된 민족만이(유대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가 출연해서 누구나 본인의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세상으로 바꾸었다. 즉, 지역 종교를 세계 종교로 만들었다. 이것을 은유한 것이 이 영화의 영웅 패턴이다.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은 그때까지 세계의 패러다임을 확연히 바꿔놓는 공적을 이루고 살신성인이 된다. 예수가 한 것과 똑같다. 누구나 엘리시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바꿔놓았다. 참고로, 천국 같은 엘리시움이 지상의 입장에서 하늘 높은 곳에 위치한 것도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천국을 은유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른 것도 들어있는데 그것은 야만인이었던 게르만족이 남쪽으로 남하해서 당시 최고 문명국가 로마에 들어가서 사는 것, 또한 바이킹족이 척박한 스칸디나비아 땅을 떠나 따뜻하고 농사짓기에 기름진 땅을 정복해서 사는 것도 이 이야기의 이면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황무지 지구에 사는 주인공 맥스가 고향을 떠나 엘리시움 왕국을 정복하는 것은 영락없이 바이킹족의 행적을 닮았다. 비록 자신은 전투 중에 죽지만 엘리시움은 황무지 지구인도 거주할 수 있는 지역으로 바뀐다.

  

또한 이 영화는 아프리카의 현실을 은유하기도 한다. 지구의 황무지는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난민들이고 엘리시움은 미국 또는 유럽이다. 의료 지원만 제대로 되었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황무지 지구인의 꿈은 유럽 또는 미국에 입국해서 최신 의료 치료를 받아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에 잘 은유되어 있다. 참고로 닐 블롬캠프 감독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다.

  

이처럼 이 영화가 내적으로 담아내려는 것은 고전적이고 의미심장하고 역사적이고 신화적이다. 그런데 이것을 심플하게 잘 필터링하지 못한 것 같다. 다소 중구난방이다. 심플하거나 담백하지 못 했다. 너무 많은 내용을 넣으려고 했다. 관객을 감흥이라는 곳으로 이끌어주는 4차선 도로만 여러 개 이고 8차선 대로는 없다는 얘기다. 그럭저럭 목적지에는 도착했지만 감정상의 아쉬움이 남는다. 결과론적으로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는 얘기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크루거를 연기했고 앞서 '디스트릭트 9'의 주인공을 열연했던 배우 '샬토 코플리'의 악역이 매우 좋았다. 꼭 악인 캐릭터가 광기에 서릴 필요는 없지만 이 경우에 광기의 표현이 워낙에 출중해서 그런 논쟁을 할 틈이 없었다. 물론 맷 데이먼도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냈다. 


  

이 영화의 감상을 생명력의 열매와 아기 버전으로 표현하면, 깊은밤에 아기가 생명력의 열매를 물고 달콤한 꿈을 꾸며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보니 흔한 실재 과일 조각을 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3년 10월 16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