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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2013)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1. 12. 12:31

  

헐리우드에서는 비(rain)를 느와르 장르 전성기에 비장함, 비극, 우울을 암시하는 소품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최근에는 예외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영화 '노트북'에서는 강렬한 환희에 비가 사용되기도 했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정화, 순수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소나기'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한 여름의 장마가 주요한 소재로 사용된다. 도심공원에서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면서 사랑이 싹트고 깊어지는 매개체로서 장마가 중요하게 작용된다. 특이한 점이라면 적어도 영화속에서는 햇살이 찬란한 공기를 뚫고 또는 화사한 녹색의 나무를 가로질러 빗줄기가 부수수 내린다. 우울함이나 비장함이 아니라 순수, 정화, 안락함, 평온함, 내면적인 것으로 인도한다.  

  

아마도 전 세계 애니메이션에서 비가 내리는 장면만을 놓고 따져봤을 때 이보다 더 섬세하고 정교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이 섞였지만 마치 비가 내리는 장면에서 만큼은 이 작품이 최고다, 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노고와 열정을 쏟아부어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별의 목소리'로 너무나도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여러 작품을 감상했는데 이번 '언어의 정원'은 '별의 목소리'와 이야기적으로 닮은 점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유사한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상대방을 애뜻하게 그리워하는 순수한 사랑을 담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비록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신분(학생과 교사)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닫아버리고 남자를 대하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는 아파트 옥외 계단을 맨발로 내딛으며 달려가고, 마침내 두 남녀는 (비록 남자가 속마음을 반대로 표현했더라도 여자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격정적으로 서로에 대한 진실되고 순수한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성인물급 정서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현재 시점에서 그때를 그리워하는 장면과 나레이션으로 아련함과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마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묘사된 배경과 비 내리는 다양한 효과는 담백하면서 순수한 이야기와 함께 싱크로를 이뤄서 아름다운 서정시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되었다. 40분 안팎, 다소 상영시간이 짧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물론 억지로 길게 늘리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만 이런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깊은 곳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포스터 카피문구가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 인데 정말 정확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이전'의 뜻은 아마도 사회적인 문화적인 윤리적인 규범적인 것의 울타리 속에서 이뤄지는 현대인의 일반적인 사랑보다 시간적으로 훨씬 옛날 즉 인간이 원초적으로 순수하게 살았던 시대의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014년 1월 12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