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고전이라고 하면 후대의 여러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경우에 불리워질 수 있을 것이다. 1956년, 당시로서는 큰 자본을 투입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큰 흥행을 거두지는 못 했다고 한다. 왜 그런지 직접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놀라운 사건이나 액션이 펼쳐질 것 같은 분위기인데 실제로는 매우 심심하고 미지근한 편이다. 그렇지만 왜 이 영화가 고전으로 추켜세워지며 많은 세월이 지난 현대에 고화질 영상매체로 재출시되는지 최근에 직접 보고서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 써진 웬만한 영화역사책에서 언급되는 편이고 인터넷으로도 정보가 많으니 영화에 관한 전문적인 궁금증은 그렇게 풀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개인적인 느낌과 생각일 뿐이다.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것은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가 1956년이라는 점이다. 한창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이니 3차 세계 대전이니 팽팽하게 긴장하던 냉전시대였다. 어떤 UFO 전문가들은 UFO가 당시의 수많은 미국인의 공포와 히스테리에 의한 허구적인 사회현상일 뿐이며, 이때부터 미국인들의 의식에 UFO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그만큼 미국과 소련 간의 미사일 핵전쟁에 관한 집단공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었다는 뜻이다. 이 시대에 유행했던 SF 소설의 하위 장르가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룬 내용이다. 그 영향은 한참 나중까지 가지를 치는데, 예를 들면, '미래소년 코난(원작 단편소설은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 '터미네이터', 유명한 컴퓨터 게임 '폴아웃(Fallout)',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영화가 핵전쟁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대와 전혀 무관하다면 고전이라는 타이틀이 버거울 것이다. 쓰레기를 맑끔히 분쇄하는 가정용 핵분열기가 잠깐 나오고, 무한동력 같은 내용이 나오지만,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따로 있다. 그것은 그 시대에 핵전쟁에 대한 심리적인 공포 자체를 살펴봐야한다는 메시지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의 배경이나 이야기는 본격적인 SF영화일지라도 이야기의 핵심 내용은 심리공포물에 가깝다. 다만, 그렇게 만들지 않아서 매우 무섭지는 않다. 요즘 시대 사람들이 보면 심지어는 코흘리개를 위한 교육적인 만화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로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다. 

  

핵전쟁을 하면 당장 떠오르는 영화감독이 있다. 제임스 카메론이다. 그를 본격적으로 출세시킨 영화가 '터미네이터' 1편이다. 그 다음 작품이 에일리언 2편인데 초반 이야기 설정이 이 영화와 비슷하다.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떤 외계 행성에 지구인들이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서 군인 탐사대가 광속 우주선을 끌고 방문하는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배경 설정은 다른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이 영화는 익히 알려진 대로 콘라드의 '어둠의 핵심(Heart of Darkness)'이라는 고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아무튼 서구권 작품에는 이와 유사한 설정의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어떤 미지의 지역에 선발대가 출발했는데 연락이 두절되고 실제 주인공과 일행이 그것을 알아보려고 찾아갔다가 놀라운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 말이다.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계 행성에 도착한 선발대 지구인들은 미지의 괴물에게 다 죽고 오직 한 사람 '모비어스' 박사와 그의 딸만이 생존해 있는데 초과학 주택에서 잘먹고 잘 살고 있다.


'로이'라는 집사 역할을 하는 드럼통 같은 로봇이 등장하는데, 배속에서 거의 모든 사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자다. 얼핏 드는 생각에 일본에서 유명한 만화 '동짜몽(도라에몽)'이 이 로봇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배속에서 무한에 가까운 사물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로이는 미국에서 엄청나게 유명한데, 스타워즈의 진공청소기를 빼닮은 로봇 R2D2의 조상 뻘이기도 하고, 아마도 헐리우드의 유명한 거리에 최초로 영화배우 출신 로봇이 핸드프린팅을 한다면 로이가 일순위일 것이다. 혹시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로이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 처럼 인간으로 치면 정신분열증을 일으켜서 엄청난 사건이 터질거라고 예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그런 일은 없다.

  

영화의 중심 내용과는 다소 떨어져 있지만, 모비어스 박사의 외돌딸 '알테라'는 아버지 이외의 남자를 단 한 번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회윤리적으로 남녀사이에 가로놓여있는 장벽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도착한 군인 중에 한 남자가 알테라를 유혹하는데 알테라는 완전히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그냥 다 받아준다. 성인 처녀에 가까운 나이지만 키스를 처음으로 해보게 되는데 보통 연애의 감정을 느끼지 못 한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이브 같은 인격이라는 설정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은 이 행성에는 인간의 문명보다 100만년 앞서서 흥망성쇄했던 외계인 문명의 잔존물이 있고, 그들은 무한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고 지능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을 보유했는데 그들이 멸망하게된 이유는 바로 그 과학기술 때문이다.


그리고 모비어스 박사와 그의 딸을 제외한 다른 지구인들이 어떤 미지의 괴물에게 살해당했는데 그 괴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모비어스 박사의 공포심의 이드(id)가 창조해낸 괴물이라는 점이다. 모비어스 박사도 군인 선장이 괴물의 정체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이 부분이 다소 어설픈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장이 거의 심리학을 부전공한 셜록 홈즈 수준이다.)


즉, 모비어스 박사는 이 행성의 외계인이 남긴 과학기술장치의 도움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공포, 이 행성에 왔을 때 이런 초고도 과학기술이 지구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엄청난 대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다른 지구인 일행들이 지구에 알려주려고 이 행성을 떠나려고 하는 것에 공포감을 극도로 느꼈고, 그것이 투명한 그러나 실제로 파괴력을 지닌 괴물을 창조해냈고 이것이 다른 지구인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후반에는 그 괴물이 군인들과 박사 자신까지도 죽이려고 한다.    

결국, 이 사태는 흔히 봤던 방식대로 해결되고 군인들과 알테라와 로이는 화기애애하게 지구로 향한다.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가장 무서운 괴물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공포다' 쯤 될 것이다. 이것을 영화가 개봉한 1956년과 연결하면, '3차 세계대전 또는 핵전쟁의 발발에 지나치게 과대망상적으로 몰뚜하다보면 인간들의 내면에서 만들어낸 집단 히스테리가 핵전쟁보다 더 무서운 괴물을 만들어내고 평화롭게 잘 살던 사회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메시지가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을 현대에 적용하면, '어떤 일이든지 지레 겁먹고 당황하면 잘될 수 있는 일도 그르칠 수 있다' 라고 확장할 수 있다.


보통 SF 장르가 인간의 정체성(필립 K. 딕)이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의 파멸 또는 순수한 대자연이 인간을 향한 역습을 다룬 이야기가 많은 편인데 반하여 이 영화의 메시지는 세련미까지 느껴질 정도로 독창성이 엿보였다. 비록 고전문학에서 차용한 내용이지만, 1956년에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큰맘 먹고 만들기까지 한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세월이 흘러도 고전 SF 영화로 대접 받고 있다. 십중팔구,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 소설, 만화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어렸을 때 KBS 주말의 명화 시간에 영화평론가가 코멘트하는 예고편도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로봇이 나오고 외계 행성에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니까 단단히 기대하고 봤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루해서 접었던 추억이 있다. 최근에 이 영화를 차분히 다시 보는데, 전에는 안 보였던 것들이 보여서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1956년에 나온 지루한 이야기이므로 그것을 극복하는, 엉덩이를 의자에 꼭 붙여놓으려는 의지가 요구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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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일종의 여담이다.

 

우주선의 선장은 국내서도 인기 많았던 '총알 탄 사나이'의 주인공 '레슬리 닐슨'이다. 이 영화에서는 포복절도하는 개그를 하지는 아니다.


우주선의 전파병으로 짧막하게 출연한 배우 '리처드 앤더슨'은 국내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6백만불의 사나이'에서 그를 많이 도와주는 조연이다. 당연히 '소머즈'에서도 조연으로 연기한 그 배우다.


로봇 로이의 다리를 보면 마치 프랑스의 미셀린 타이어 회사의 캐릭터가 생각난다. 아마도 디자이너가 착상하는데 참고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로이가 꽤 유명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의외라는 생각이 든 것도 있다. 지구에서 보낸 우주선이 마치 일반적으로 UFO 라고 상상하는 비행접시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지구에서 발사한 우주선 형태는 선박, 비행기, 잠수함, 항공모함을 변형한 모양이 많은데 이 영화의 우주선은 완전히 UFO 형태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것은 어쩌면 그 시대에 사람들이 UFO로 착각한 비행접시는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실제로 미국 군사기지에서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던 신형 전투기라는 것에 동의하는 소품 디자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인이 보통 떠올리는 컴퓨터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1956년에 상상한 우주선의 조종실은 정말 조잡하고 유치해 보인다. 12년 후에 만들어진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우주선 디자인이 얼마나 세련됐는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다.    


모호하고 기괴하게 들리기도 하는 배경음악은 당시에도 인정받았다고 하는데 은근히 현대적인 세련미도 느껴진다. 현대 클래식 전위음악 같은 느낌도 든다.

  
이 영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로이라는 로봇을 제작하는데 나름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56년을 감안하면 정교하고 치밀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로이는 영화적으로 일종의 반전의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홍보 수단으로 포스터에 의존했던 당시에 포스터만을 보면 마치 로이라는 로봇이 미친 괴물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아래 포스터 참고). 관객은 그것을 무의식 중에 예상하고 관람한다. 그런데 전혀 딴 놈이 괴물이다. 인간의 내면의 공포가 창조해댄 고차원적인 (나름 문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이고 우아한) 괴물이었다.



  

군인들이 모비어스 박사가 외계인의 문자를 적어놓은 것을 보고 "상형문자로군. 설형문자도 한자도 아닌 것 같아." 라고 말한다. 아래 그림은 이 영화에 등장한 외계인 문자이다. 실제로 어떤 체계가 있는 문자체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소품 디자이너가 그럴듯하게 그린 것 같다.





2013년 4월 2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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