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 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4. 5. 17:13

  


전체 이야기는 쉽고 평이한 로맨틱 코메디지만, 이 영화의 장점으로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인데, 현시대 미국의 보편적인 중산층 중에 약간 삐딱하거나 아웃사이더적이거나 열등한 느낌이 배어있는, 그렇지만 내던지거나 자포자기하지는 않고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독특한 매력이 주는 재미에 있다. 더불어, 원작소설의 장점이기도 하겠지만 기존에 익숙했던 것과 어딘지 모르게 다른 느낌의 다소 둔탁하지만 현실적인 인간미가 살아있는 인물들의 밀고 당기는 대화의 매력도 좋았다. 


미국에서와는 달리 국내에서 비록 어떤 관객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을지라도 소위 대박을 내지 못한 것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남주인공 팻(브래들리 쿠퍼 분)은 보통 한국 로코 관객이 흠뻑 빠져들만한 남주와는 다소 빗나가 있다. 일례로 팻과 비슷한 인물이 남주이며 대박을 낸 국내 드라마 또는 영화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자세히 찾아보면 매니아층의 지지를 받은 작품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여주인공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도 유교적인 가치관이 심층에 뿌리 깊게 깔려있는 국내 관객이 흠뻑 빠져들만한 인물까지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남자 관객이 여자 관객보다 좀더 많이 티파니를 좋아할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주변 인물들인 팻의 부모와 친구들(대니, 로니)은 평범하면서 약간 열등한 부분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 보통 한국 관객이 매료되는 자의식이 강하지만 인간적인 감성이 매말라 있어서 여주인공이 그것을 치유해주는 목표로서의 상류층이 아니라는 뜻이다.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 분)은 실직 상태이며 도박이나 내기를 매우 좋아하며 미식축구팀 필라델피아 이글즈의 열광적인 팬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이전에 축구장에서 싸움을 해서 축구장에 접근금지 처벌을 받은 상태다. 레스토랑 개업을 준비 중이지만 집에서 하는 중요한 일은 친구와 미식축구 경기 결과로 내기를 하는 것이다.

  

대니(크리스 터커 분)는 팻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알게된 친구이고(정상적인 사회인은 아니다), 로니는 동네 친구인데 그의 부인 베로니카는 팻의 아내 니키의 친구이다. 로니는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생활의 질적 향상을 많이 원하는 부인 때문에 그리고 직장생활이 썩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어하지만 인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보편적이고 소시민적인 인물이다. 

  

남주인공 팻은 고등학교 보조교사였는데 현재는 실직상태이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곤두박질쳐 화를 내고 자제를 못 하는 일종의 조울증을 앓고 있다. 그전에도 조울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법원의 명령으로 강제로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8개월간 치료를 받게 된 이유는 그의 아내 니키가 집에서 외도를 하는 것을 목격했고 상대남자를 폭행한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영화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말을 잘 하는 편에 속하는 자폐증적인 요소도 조금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만 보면 인물들이 죄다 괴팍하거나 삐딱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영화인 것 같은데, 이 영화의 원작소설 작가의 특징이며 재능이며 독창성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다소 열등한 처지의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범주에 속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보편성에 매우 근접해 있는 이야기라서 많은 관객이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욱 매니아적인 취향이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팻은 비록 조울증 치료약을 살이 찐다는 이유로 먹지 않기도 했지만 열심히 자신의 병을 치료해서 아직 이혼 도장을 찍지 않았지만 별거 중인 니키와 재결합의 희망을 품고 있는 착하고 성실하고 열정적인 남자다.  

  

여주인공 티파니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실직을 하게 됐는데 (이 영화에서는 현재 미국의 위태로운 중산층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예가 실직한 인물이 많다는 점이다) 실직의 결정적인 이유는 티파니가 남편을 잃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회사내 수많은 사람들과 무분별하고 단발적인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괴팍한 인물이다. 그러나 티파니는 팻을 만나면서 그때까지의 무분별한 삶을 깨끗히 청산하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고 발전시켜 나간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장점 중에 하나로서 티파니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전 작품 '헝거 게임'에서의 헤로인 '캣니스'의 매력과는 다소 다르지만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섹시하거나 요염하지는 않지만 강인한 여성적인 매력이 있고 무엇보다 모성애가 은근히 배어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모성애적인 부분을 엷게 느낄 수 있다. 

     

한편, 팻의 아버지는 도박과 내기를 좋아하고 열광하는 미식축구팀 필라델피아 이글즈가 어떤 행운의 작용에, 예들 들어, 팻과 함께 경기를 봐야 팀이 이긴다는 징조, 승패가 좌지우지된다고 믿는 인물인데 영화에서 팻의 방에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의 한켠에는 아들 팻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이고, 나아가서는 가족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하는 어떤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할 때 팻의 아버지가 마냥 게임과 내기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열등한 가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즉, 지극히 정상적이고 성실한 가장인데 살짝 삐딱한 정도이다. 

  

팻의 어머니는 비록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측면을 갖고 있는 남자들을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면서 잘 지켜주는 모성애를 은근히 발휘하는 인물이다. 이 점은 티파니와 공통적인 요소이다. 이 영화에는 커다란 두 가지 측면이 느껴지는데, 약간 미성숙한 성격의 남자들이 사회적으로 안정을 목표로 노력하는 측면, 그리고 그런 남자를 모성애로 지지하는 두 여성(티파니, 팻의 어머니)의 측면이 그것이다. 

  

  

이야기 자체만을 보면 그렇게 확 다가오지도 않고 매력적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개성있는 인물들이 오소독소하게 엮어내는 장면들이 흥미진진했고 재밌었다. 티격태격하는 대화가 뻔하지도 않고 너무 이상하지도 않고 대중을 위한 영화답게 수위조절을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소설을 읽고 싶고 이 작가가 쓴 다른 소설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흔한 로맨틱 코메디의 것과 슬쩍 다른 뭔가의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투명하고 아름답고 순수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런 측면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냉소적이고 툭명스러운데 그 바탕과 이면에는 보편적인 사회성과 성장을 향한 의지가 깔려있다.

  


2013년 4월 5일 김곧글(Kim Godgul)



관련글: 헝거게임 (The Hunger Game) : 판엠의 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