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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

by 김곧글 Kim Godgul 2015. 4. 5. 19:00




극장 상영중일 때는 안 봤고,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던 저화질 영상으로 감상해서 본래의 작품성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참고 기다렸다가 최근에 고화질이 풀리자 마침내 마음을 가다듬고 감상했다.   

  


먼저, 이 영화를 한국에서 1천만 관객이 봤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의외라는 놀라움이다. 지금까지 소위 초대박을 쳤다고 볼 수 있는 1천만 관객 고지를 넘은 영화는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영화들이었다. 영화 본연의 깊은 작품성과는 무관하게 한국 사람 특유의 기질이나 관습이나 취향에 잘 맞았기 때문에 1천만을 넘었다는 분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시대에는 대기업 극장주들이 작정하고 어떤 영화를 전략적으로 전폭적으로 지지하느냐에 따라 흥행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보통 한국인들의 취향까지 컨트롤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튼 '인터스텔라' 영화가 한국에서 1천만 관객이 넘었다는 것은 의외이며 특이한 현상으로 생각된다.

  


영상미보다는 이야기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이야기는 소위 현대과학, 현대신학 이라는 나무에서 축출한 걸죽하고 진한 원액을 주요 소재로 사용했는데,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지금까지 1천만은 커녕 5백만 관객을 끌어모은 경우 조차 없었기 때문에 의외이고 특이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 없다. 2012년에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2012)' 영화도 거의 1천만 관객이 감상했었는데, 이 경우에는 좀 다른 것이 전 세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꽤 흥행했던 에일리언 시리즈(아마도 2편이 가장 흥행)의 프리퀄에 해당했고, 인터스텔라만큼 과학적인 소재를 사용하지는 않았고 다만 신비주의적이거나 신화적인 요소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리고 결정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에 가깝기 때문에 인터스텔라와 비슷한 성격의 영화로 분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흥행하게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요즘 시대 10대, 20대가 이 영화에 열광할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30, 40대 남자 관객들이 매혹되었을 것 같다. 아버지와 딸의 애뜻한 사랑 이야기가 핵심적으로 들어있다는 점, 미세먼지로 종말을 맞이하는 인류의 미래에 농사 짓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생업 전선(취업과 생계와 미래가 결코 녹녹하지 않다는 점에서 요즘 20대도 감정이입될 수 있는 요소이다), 자식들을 남겨두고 외로운 모험을 떠나는 아버지(마치 돈을 벌기 위해서 얼마 동안 집을 떠나는 아버지 같다 또는 기러기 아빠), 기독교적이면서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신학이 들어있다는 점(쉽게 말해서 한국 남자들에게는 이것은 마치 어떤 초과학적인 힘이 자신에게 로또복권 같은 것을 당첨시켜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 이런 것들이 한국의 남자 관객들을 감동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추가해서, 입문학과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과학(레고 조립이 아니라 물리학 같은 것)과 관련된 내용의 책들이 80, 90년대에 인기를 끌었었다. 즉, 지금의 30대, 40대가 젊었을 때 교양으로 취미로 관심을 가졌던 분야이기도 한다(현시대는 대부분 성공학, 돈벌기, 경제학, 창업, 취업, 아이 교육 관련 책이 많이 팔린다). 그들이 고단한 현실을 잠깐 쉬어가며 예전의 풋풋했던 젊은 시절을 추억하게 해주는 특별하면서 고상하면서 희소성 있는 영화였기 때문이라는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추가로, 매스컴에서 맛집이라고 홍보된 식당을 여러 곳 방문해봤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무명의 어떤 곳, 또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가끔 만들어먹는 어떤 특별한 요리를 오랜만에 먹고 감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박이라고 또는 1천만 고지를 넘었다고 홍보되는 여러 작품을 보고나서 "재밌고 괜찮기는 한데... 내가 기대했던 깊은 경지의 작품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극장 방문에 익숙한 어떤 한국 사람들이 인터스텔라를 보고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대박 영화의 모습이지." 라고 생각하며 2번 이상 관람했기 때문에 1천만을 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웜홀이나 블랙홀이 현대 물리학과 관련해서 어디까지 과학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흥미로워하는 관객도 많을 것이다. 미세먼지가 가져올 인류의 재앙에 경종을 울리는 환경보호 메시지를 담은 좋은 작품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아버지와 딸의 애뜻한 사랑을 표현한 가족애로 봐도 부족함이 없다. 나아가서 자신을 희생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한국적으로 말하자면 조국과 민족을 구원하는 애국자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해서 외롭지만 꾸준히 자신의 길을 고군분투하는 예술가, 탐험가, 과학자, 의학자, 학자, 사회운동가... 등등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넓게는 신학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흥미를 느꼈다. 그렇다고 필자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뜻은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종교와 신앙과 인간의 삶에 관심이 많지만 기독교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고 수많은 종교들을 두루 생각한다.

  


주인공 쿠퍼가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웜홀을 통과해서 다른 우주로 떠나기 전에 이미 선발대가 출발했었고 그 미션을 '나사로' 미션이라고 했다.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끈 팀장이 만 박사이다. '나사로'는 상식적으로 알다시피 예수가 태어난 고향 '나사렛'을 상징한다. 즉, 만 박사는 '예수(Jesus)'를 상징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도착한 얼음으로 뒤덮힌 행성에서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자의적인 동면에서(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측면에서 예수의 행적과 같다) 되살아난다. 즉, 부활을 상징한 것이다. (마침 오늘이 부활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표현하는 것은 예수가 인류를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구원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것을 표현했다. 예수의 정신이 기독교를 한낮 유대인의 지역 종교에서 전 세계인의 종교로 전파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인류가 당면한 새로운 위협까지 구원해내지는 못 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쿠퍼의 딸 머피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머피가 발견한 (물론 쿠퍼와 타르스(Tars)와 고차원에 살고 있는 존재의 도움을 받아) 중력을 제어할 수 있는 물리이론으로 인류는 지구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지상에서의(지구라는 고향에서의) 종말로부터 어느 정도 구원받은 셈이 된다.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카톨릭적으로) 인류의 구원을 성모 마리아가 수행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추가로, 브랜드는 2차 성모 마리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냉동 보존된 인류의 종자를 가지고 지구와 유사한 행성에 도착했다는 것을 마지막 장면에 보여준다. 그녀는 헬멧을 벗고 지구에서처럼 호흡하며 황야 같은 곳을 돌아다닌다. 그녀의 애인이었고 그 행성에 선발대로 도착했던 남자의 무덤 앞에 서 있다는 것은 그녀가 성모 마리아(결혼 하지 않고 아기를 잉태한 것)를 상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머피의 방에서 나타나는 중력이상으로 인한 비현실적인 현상은 신학에서 일종의 신으로부터 전달되는 중요한 메시지 이전에 나타나는 영험한 기운, 징후를 상징하고, 시계의 초침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은 신의 특별한 계시를 전달받는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 딸에게 계시를 전달해주는 분은 신학에서 말하는 절대자 신(God)이 아니라 실제 아버지 쿠퍼라고 영화 후반에 확인해준다. 즉 영화는 수많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나 종교인들이 가장 부정하고 싫어하는 것을 표현했다. 즉 '신은 인간이 창조한 것이다', 라는 표현이다. 마치 니체가 말했을 법한 표현이다. 이런 점이 아카데미 상에서 작품상을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아카데미 상을 주는 실세는 보수적이고 유대인이 많다.

  

그러나 영화는 칼로 무를 자르듯이 단정하지는 않는다. 토성 근처에 웜홀을 가져다 놓고, 블랙홀에서 쿠퍼를 구해주고 그를 통해서 딸 머피에게 인류를 구원할 매우 핵심적인 과학정보를 제공했던 어떤 고차원에 사는 미지의 존재가 인간이 오래동안 숭배했던 절대적인 신일 수도 있고 또는 먼 미래에 우리 인류일 수도 있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물에서 탄생한 인간형 외계인이 신일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 우주의 일반적인 3차원 4차원을 넘어선 고차원에 존재하는 그 어떤 존재를 지칭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영화적으로 흡인력 있게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잘 알다시피, 타르스(Tars) 로봇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명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모노리스(monolith)을 닮았다. 모노리스는 영화 속에서 외계인이 가져다 놓은 영험한 기운을 인류에게 준 기하학적 물체이다. 최근에 다시한번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봤는데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란 감독은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게 일종의 경의를 표현한 것 같다. 타르스라는 로봇의 모양도 그렇고, 타르스는 나중에 쿠퍼와 미지의 존재 사이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도 해준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데이비드 보우먼'이라는 지구인이 미지의 저편으로 이동해서 시간과 공간이 일반적이지 않은 곳에 이르러 별로 탄생한다(starchild). 인터스텔라에서는 쿠퍼가 미지의 저편에서 온 존재들이 만든 것 같은 시간과 공간이 일반적이지 않은 곳에서 지구의 딸 머피와 통신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다소 비슷한 패턴이다. 똑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인터스텔라 초반에 무인 드론 비행기를 캐치하는데 인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표현했다. 노트북 화면에도 인도 문자가 나온다. 왜 굳이 인도였을까? 물론 놀란 감독이 영국 출신이고 영국에게 인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국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여기에도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연결되는 점이 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목성으로 향했던 디스커버리호를 총 책임지고 있던 고성능 컴퓨터 HAL-9000(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컴퓨터 톱10에 들 정도의 존재감이 있다)을 제작한 사람이 유명한 여류 과학자인데 그녀가 인도 출신이었다. 영화에는 안 나왔지만 소설에는 분명히 나와있다. 먼 옛날에 소설을 읽어봤었기에 이 부분은 기억이 난다. (인터스텔라의 드론과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9000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는 두 기계의 뇌가 해체되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이다)


추가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두 번째 장에서 달의 기지로 이동하던 헤이우드 박사가 우주정거장에 들렀을 때 지구에 있는 딸과 화상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도 인터스텔라의 장면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좋다 나쁘다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누구나 일생동안 함께 지속하고 싶은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어떤 물체, 사물일 수도 있고, 어떤 장소, 건물일 수도 있고, 어떤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사상, 종교일 수도 있고, 어떤 음악일 수도 있고, 어떤 그림일 수도 있는데, 어떤 영화라는 항목에서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일생동안 생각날 때마다 감상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자체가 뛰어난 점도 있지만 영화를 통해서 더 나은 어떤 것을 향하도록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5일 김곧글(Kim Godgul)  

  

  

  




PS: "어떤 미지의 지역에 선발대가 출발했는데 연락이 두절되고 실제 주인공과 일행이 그곳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서구권 작품들에 종종 발견되는 플롯이다."


관련 글: 금단의 행성 (The Forbidden Planet,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