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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Fifty Shades of Grey, 2015)

by 김곧글 Kim Godgul 2015. 4. 10. 14:28


  

이 영화가 국내에서 기대했던 것 만큼 흥행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국내 관객은 또 다른 '색, 계(Lust, Caution, 2007)' 영화 또는 그 만큼의 수위를 기대했었는데, 그것에 못 미쳤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아마도 요즘시대 10대 (또는 20대) 여성 관객 취향에 적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는 학생들 소꿉장난 같고 강렬하지도 숨을 멋게 하는 장면도 없어서 많은 국내 남자 관객들이 김빠진 콜라 같다고 느꼈을 것이다. 국내 여성 관객의 경우에는 장면이 문제가 아니라, 남주인공 '그레이'가 이런 장르의 영화에 빠져들 정도로 강한 매력을 풍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 같다. 남주인공은 보통 한국 로맨틱 드라마에서 매우 인기를 끌었던 타입은 아니다.

  

이 영화가 기존의 이런 장르 영화와 차이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김빠진 것 같은 느낌, 즉, 순수하고 순박한 느낌이 영화를 돋보이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원래 언더그라운드 또는 마이너 시장의 소재를 오버그라운드 또는 메이저 시장에서 거부감 없이 흡인력 있게 표현했다는 점이 장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죄수들이 생사를 걸고 교도소를 탈옥하는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코메디 장르가 아니면서 그 어떤 순수함이 담겨졌던 '쇼생크 탈출'이 다르게 느껴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쇼생크 탈출' 수준의 작품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굳이 이 영화의 타겟을 구분하자면 여자 관객 쪽이다. 남 부럽지 않게 성공한 젊은 미남에게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측면을 순수하고 소박한 성격의 여주인공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치유해주는 이야기, 현대판 소녀 취향 순정만화일 것이다.   


탄탄하거나 치밀하거나 오밀조밀한 구성이 들어있는 이야기는 아니고, 마치 여주인공 '아나스타샤'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천천히 남주인공을 만나고 알아가고 사랑하고 연애의 갈등을 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특이한 특징이며 기존의 이런 류의 작품과 차이점은 그런 특이한 성적 행동을 함에 있어서 남주인공이 매우 차분하고 침착하고 끈기있게 계약서라는 것을 여주인공이 심사숙고해서 수용하기까지 충분히 기다린다는 점이다. 이 점이 소녀 취향 관객들에게 좋은 느낌을 주었을 것 같다. 국내 작품 중에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고, 있었더라도 A4지에 몇 줄 적어놓는 정도였다. 이 영화에서처럼 마치 주식회사와 주식회사가 합병이라도 하는 듯이 많은 항목들을 조목조목 기입하고 깊고 푸른 연애를 시작하는 이야기는 기존에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과 한국의 사회적인 문화 차이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한국은 문서보다는 정, 의리, 친분 이런 것을 더 가치있게 평가하기 때문이고(이로 인한 폐해가 종종 발생해서 최근 들어서는 서로 서로 좋게 좋게 문서화를 많이 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기는 하다), 미국은 사회적 관계가 문서로 시작해서 문서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를 감상하던 어떤 한국 관객은 젊은 남녀가 육체적 사랑을 하려고 하는데 있어서 매우 상세하게 작성한 계약서 같은 것으로 시간을 끄는 장면을 보면서 속으로 매우 답답해 했을 것이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기대했던 것과 달리 순수하게 소박하게 보편적인 가치관을 무시하지 않은 채 특이한 성적 관계를 맺는 젊은 남녀 주인공의 러브스토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답답하고 고지식한 현실을 일탈하고 싶은 욕망이 인간에게 (그렇다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부는 확실히 그럴 것이다) 있는데 근사한 로맨틱 소설을 좋아하거나 준수한 가치관이 담겨진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의 입맛에 맞는 특이한 성적 취향 소재 작품일 것이다. 흔한 소녀 취향의 달콤한 로맨스에 아주 약간 청양고추를 가미한 작품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2015년 4월 10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