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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마션(The Martian)

by 김곧글 Kim Godgul 2015. 12. 30. 20:29

한국어판 책표지


영화 포스터


아직 영화를 안 본 상태에서 소설을 먼저 읽고 싶었다. 우연히 어떤 대형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2015년 올해의 책'에 선정된 것을 보게 됐다. '왠일? 한낯 SF소설 따위가 어떻게 한국에서 올해의 책에 뽑혔을까? 미친듯이 괜찮지 않고서야 완전 드문 일인데' 호기심에 구입해서 읽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SF장르를 매우 좋아한다. '한낯' 이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친근감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어판의 북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맷 데이먼'이 화성땅에서 셀카를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을 북커버로 사용한 듯한 디자인이다. 산뜻한 오렌지색 배경에 만화 같은 일러스트레이션과 화사한 노란색 속지. 게다가 원제에는 없었던 한국어판의 부제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문구가 커버의 제목 옆에 붙어 있는데 이 문구가 소설의 성격을 제대로 표현하면서 한국인 독자의 취향을 사로잡는데 적중한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괴짜'라는 단어가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성격을 잘 대변한다. 좋은 의미에서의 괴짜이다. 즉, 어떤 고난과 역경의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난관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괴짜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예능프로를 밝고 재밌게 잘 하는 개그맨 같은 방송인이 어떤 악조건의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와트니만의 전매특허적인 특징이 있다면 매우 해박한 과학적 지식과 정교하고 치밀한 계획과 꾸준한 노력으로 역경을 극복해간다는 점이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내내 쭉.   

  


'해박한 과학적 지식의 향연', 이 소설의 홍보에 사용되지 않은 문구 중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일 것이다. 아마도 이야기를 간단히 표현하면 '어떤 괴짜 과학자가 해박한 과학적 지식과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그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화성에서 구조되는 리얼리즘 휴머니즘 스타일의 이야기'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소설에는 수많은 과학적 지식이 나오는데 그냥 저냥 읽는데 부담스럽지 않다. 왠만한 교양과학서적을 뺨칠 정도의 전문성이 깔려있다. '이게 정말 가능한거야?' 라는 의문이 들기도 잠깐, 어느 순간 주인공 '마크 와트니'에게 몰입하여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원하게 된다. (물론 평소에 과학적인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일부 서술이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거의 1인 독주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주인공이나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다른 인물들이 마치 현대인에게 익숙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성격들이라 몰입이 잘 되는 편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나온 우주를 소재로 한 SF소설 중에 이보다 더 사실적인 느낌으로 자세히 써진 작품은 없을 것이다. 아직 화성에 인간이 발자국을 남긴 적이 없는 현시점에서 마치 엇그제 이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자세하게 생생하게 글을 썼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자료 조사를 하는데도 수 개월 또는 수년이 걸렸을 것 같다. 어쩌면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말이다.

  

  

저자의 약력을 보니까 소설가와 그렇게 가까운 직업에 종사하지는 않았다. 처녀작인 이 작품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고,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까지 했지만, 유수의 SF 문학상에서는 그다지 상복이 없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기인할 수도 있다. 즉,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성격만을 봤을 때 매우 평면적이다.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나 자신과의 내적 갈등이 거의 없다. 모두 하나 같이 착하고 성실하고 용감하고 냉철하고 박애주의적이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팔방미인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무릇 현대인의 내적 갈등을 어떤 방식이나 관점으로 표현되지 않은 작품은 대중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다소 고리타분하거나 과거지향적인 취향의 평론가 또는 문학의 권위자 무리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기는 힘든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이 그런 케이스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비록 흔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은 이야기이고, 다소 어린이 교육용 만화에 등장할 법한 특징의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지만 , 중요한 것은 독서하는 동안 내내 재밌게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어쨌든 매우 재밌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감상평이다. 번역도 잘 된 편이다. 특히,유머러스하고 구어체적인 말을 한국독자가 어색함 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잘 번역되었다. 간간히 유머러스한 단락들이 나오는데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독자라면 매우 재밌게 느낄 수 있다.

  

  

이 소설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에 속한다. 깊은 맛은 덜 하지만 확실히 전매특허적인 매력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30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