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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 2015)

by 김곧글 Kim Godgul 2016. 4. 4. 12:34




시종일관 생전 처음 보는 영화적 영상미, 인간의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본능을 다룬 이야기, 설원으로 뒤덮힌 광활한 삼림의 황망하면서 아름다운 풍광,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 한 편의 농도 짙은 서사시를 안은 서정시를 보는 듯 하다.   

  

  

인상적으로 사용된 롱테이크지만 지금까지의 여느 롱테이크와 차별화된 영화적 영상미로 화면 전체를 몰입감 있게 담아내면서도 결코 등장 인물을 배경에 파뭍히게 하지 않고 오히려 돋보이고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게 만든 뛰어난 영상미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이전 작품 '버드맨 (2014)'의 연장선이며 그의 장기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는 매우 역사적인 시대적 배경 속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았지만 흔히 등장할 법한 서구문화의 종교사상이나 통치이념이나 계몽사상 같은 것은 매우 미약하게 다뤄지거나 때로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다뤄지고, 대부분 혈육과 종족에 대한 처절하고 질퍽한 복수를 다뤘다는 점이 차별화된 매력이라고 보여진다.  

  


예를 들어, 악역 '피츠제럴드(톰 하디 분)'는 아버지의 일화를 언급하며 신은 그저 다람쥐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리고 쏴서 잡아먹었다고 매우 냉소적으로 말한다. 어쩌면 이 부분이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신에 대한 평범하지 않은 내용을 담았기에 대개 보수적인 아카데미 상에서 작품상을 받지 못 했던 것처럼 이 영화도 같은 처지였을 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수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다람쥐였을까를 생각해보면 서구문화에서 아마도 기독교 다음으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 북유럽 신화에서 '세계의 나무' 위를 기어올라갔다고 하는 동물로 다람쥐가 등장한다. 다람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신화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고 아직 정답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영화 속의 시대는 서구열강이 전 세계를 상대로 탐험과 정복과 식민지화에 열을 올리던 시대였고, 미국 내에서는 주로 영국과 프랑스가 아메리칸 인디언을 상대로 정복하고 약탈하던 시대였는데, 지금까지의 영화는 대개 서구인은 소위 문명인이고 인디언은 소위 야만인처럼 표현된 경우가 많았고 약간 다른 시각으로 좋게 표현된 작품은 인디언도 서양인 못지 않게 그들만의 고유의 깊은 전통과 문화가 있는 문명인이라고 표현한 정도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약간 다르게, 즉, 서구인들이 야만인이라고 하는 인디언이나 서구인 자신들이나 그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인간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적대세력과 또는 일체의 외부 세계와 처절하게 사투를 벌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소시민이다. 그 속에서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자신 또는 핵가족 정도이다. 마치 최근의 현대 사회를 은유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것은 국가나 사회 존속을 위해 이상적이거나 도덕적인 사상이나 가치관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TV 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배경 사상이다. 그러나 못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아직도 현대 사회 어딘가의 어떤 부류의 인간들에게는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을 생각들이기에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찬사의 중심에는 영상미와 연기가 있었지만 말이다.

  

  

누가 뭐래도 판타지가 아니라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주인공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의 명연기에 찬사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은 감독의 감탄스런 실력 외에 악역 피츠제럴드를 연기한 톰 하디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주인공을 그 자신 이상으로 빛내주는 것은 어떤 조연일 경우가 많다. 대개 명작을 살펴보면 그렇다. 만약 글래스가 집채 만한 곰과 사투를 벌리고 거의 죽다가 살아나는 사건 없이 그냥 산전수전 극복하는 정도로 고생하는  캐릭터였다면 마치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배트맨을 앞도해서 실질적으로 주인공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한 것처럼 피츠제럴드가 악인으로서의 주인공이 될 뻔 했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과 명연기가 빛났다. 필자는 처음에 피츠제럴드를 연기한 배우가 누구인지 모르고 보다가 분명히 뭔가 있는 배우일거라고 예상했었는데 아닌 게 아니었다. 올해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톰 하디도 올려졌었는데 그가 수상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톰 하디의 특이한 점 하나는 일반적으로 많은 배우들이 선이 굵거나 묵직한 캐릭터를 위해서 스스로 또는 어떤 배역에서 목소리를 굵고 낮게 깔아주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대개의 경우에 옳은 선택인 경우도 많지만 요즘처럼 개성있는 특징이 중요한 시대에 자칫 흔하게 평준화될 수 있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데, 톰 하디의 악역은 (다크 나이트 어라이즈에서도 그랬고) 목소리 톤은 그렇게 저음도 아니고 굵지도 않은데 악인의 모습이 천천히 전달되고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아마도 목소리만 들어봐도 그가 톰 하디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매력이 있는 목소리이다. 여담이지만, 말하는 어투가 특이하면서도 매력있는 다른 배우로서 방금 생각난 배우는 '제시 아이젠버그'가 있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도 약간 살펴보니 느낌이 좋다.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영상미와 연기가 뛰어난 영화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소설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4월 4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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