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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다찌마와 리, 미스 홍당무, 모던 보이, 멋진 하루 - 섞어리뷰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1. 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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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마와 리
(2008, 국내영화)

재밌을려고 노력은 많이 했지만 감각이 현 시대를 따라잡지 못 했다. 관객이 시간, 돈, 몸치장, 관심을 기울여 상영관을 기꺼이 찾았건만, 스크린으로 서빙된 요리가 시대착오적이다. 차분한 식탁 위에 두루마리 화장지가 놓였다. 현 시대는 웬만해선 국내 상업 영화에 화장실 개그는 관객을 끌어모으지 못 한다. 그런 류 재미는 UCC 파일로 인터넷 강국의 전용선을 타고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재미 없었다. 어떤 컨셉으로 어떤 영화적 의의를 담아 어떤 스타일로 연출하려는 의도였는지 알겠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영화는 영화다' 영화가 TV 연예오락 프로 정서를 차용해서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창조한다면 월등하게 차별되고 새로운 개그의 미학을 제공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 했다.

상상력, 소재, 스토리, 캐릭터, 연출 등이 그렇게 나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현대 영화는 훨씬 세련되고 순수하고 담백하고 날렵하고 센스있어야 한다. 90년대에 이런 정도의 스타일로 나왔다면 지금처럼 쪽박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문화 전반적으로 바야흐로 '신고전주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현재 국내 관객은 담백하고 순수하고 정직하고 깔끔한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특별히 미국, 일본과 달리 국내 관객은 화장실 개그를 상영관에서 즐기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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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홍당무
(2008, 국내영화)

화장실 개그 풍 지리멸렬한 지식인의 성적 농담이 적잖게 담겨진 것은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 한 이유다. 내 생각일 뿐이다. 영상미는 좋다. 주조연 연기도 좋다. 스토리 구성도 좋다. 그 외 영화 기술적인 요소도 수준급이다. 국내 영화제에서 시나리오 상, 신인 감독상, 여우주연상, 신인 여우상 등을 받은 것 같다. 그런데 왜 흥행은 별로 였을까?

세상 모든 영화는 어떤 영화를 막론하고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는 대개 장점이 단점을 덮어버리지만, 시무룩한 반응을 얻은 영화는 단점이 장점의 앞길을 대자로 막는다.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미쓰 홍당무의 단점은 과거에 대학교를 배경으로 있을 법한 통속 연애물의 교수와 학생의 불륜, 3각 관계를 중고교로 옮기면서 인물간의 관계를 바꿔주고 새로운 재미를 주려고 했는데 재미 탄약이 화장실 개그와 조롱이 담긴 성적 농담이었고 게다가 결말은 업친 데 덥친 격이다. 국내 관객이 갸우뚱 할 정도로 노골적인 화장실, 성적 조롱 탄피를 학교에 임시로 마련된 간이 법정에서 따지고 따진다. 미국에선 통할지 모르지만 국내 보통 관객은 결코 통쾌하게 재밌어하는 장면은 아니다.

모호하다. 좋게 말하면 여러 장르 요소의 참신한 혼합이고 나쁘게 말하면 맛없는 비빔밥이다. 90년대라면 통했을지 모르겠다. 현 시대는 담백한 내용의 장르 영화가 잘 팔린다.

독특하고 참신한 여주인공과 영화 전체에 깔린 배경, 스토리, 주제와는 찰떡 궁합은 아닌 듯 하다. 좀 괴팍하더라도 내면은 순수했는데 외모 때문에 사회적 소외를 당한 여주인공이 백조로 결말 맺지 않은 요소는 결정적으로 이 영화가 일부 평론가들에게 또는 매니아층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보통 대중들의 평범한 감동과 재미는 알아서 따라오라고 웅변하는 것과 같다. 미운 오리 새끼가 결국에 백조가 되는 스토리가 유치하고 뻔하지만 현 시대 보통 관객이 영화관을 찾는 본능이다. 매력적인 배우를 쫓아 영화관을 찾는 보통 관객의 심리도 결국 평범한 오리(관객)가 백조(배우)와 90분 연애, 모험을 꿈꾸게 하는 스크린 콘서트다. 잘 만들어진 이 영화가 대박을 내지 못 한 결정적인 이유는 내용상 보통 관객에게 행복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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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두 영화 제작비를 합쳐서 만들었을 법하게 티라노 사우루스 규모였지만 미술만 유일하게 돋보였던 영화도 있다. 잔재미도, 내용도, 구성도, 메시지도 시대착오적이다. 제작자는 고급스러운 반일 감정에 호소해서 흥행을 내고 싶었던 것 같다. 엄청 큰 실패다.

모던 보이 (2008 국내영화)

걸출한 두 배우에게 오점을 남겼다. 영화가 주인공 배우만의 작품이 아니므로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해할만한 사람은 다 이해한다. 연기가 어색하고 재미 없는 이유가 배우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을.

이런 정도의 규모를 쏟아부었다면 흥행과는 상관없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영화가 뽑아졌어야 하는데 수준 이하다.

개인적으로는 괜찮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데 일부 열혈 매니아들은 극찬하며 좋아하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처럼 돈줄을 산꼭대기에 엄청 쏟아붙고 꿀벌 대신 파리를 엄청 불러모은 영화라도 영화적 존재감의 명줄은 꽤 길었었는데 이 영화가 적어도 그런 정도는 됐어야 할 규모였다. 냉담한 반응만큼 기대하지 않고 가볍게 봤는데 그 수준보다도 아래다. 단지 미술, 소품만 풍요롭다.

반면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은근히 매력있는 국내영화도 있었다. 깔칠한 여자와 살살이 남자의 작고 짧은 여정. 고전적인 이야기 패턴을 탈피했지만 일반인이 즐기기에 낯설 정도로까지 예술 영화도 아니다. 그러나 해외 영화제에서 좋아할 영상미와 시나리오다.

멋진 하루 (2008 국내영화)

요즘은 영화를 볼 때 일부러 사전에 정보를 거의 막고 본다. 선입관과 편견이 끼어들어서다. 주연이 누구인지, 흥행 했었는지 정도만 알고 본다. 멋진 하루를 괜찮게 보고 누가 감독했는지, 시나리오는 누가 썼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여자, 정혜', '러브 토크'를 만들었던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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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도 자신의 스타일을 일관성 있게 연장한다. 흥행은 안 됐는지 몰라도 영화적인 완성도는 꽤 높다. 좋다. 한국 영화 시장이 좁다는 것, 게다가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할 연령대, 감수성이 보통 사람보다 섬세한 편에 속하는 관객이 인간 확률적으로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여러모로 괜찮게 잘 만들어진 영화인데 국내에 평균적으로 널리 퍼진 영화 감상 감수성은 아니다. 흥행과는 무관하게 일관성 있게 이런 스타일로 근사하게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 든다.

관객은 희수(전도연 분)의 시점으로 병운(하정우 분)과 여정을 떠난다. 즉, '병운' 같은 감수성을 지닌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 그다지 재미를 못 느낄 것이고 '희수' 같은 감수성을 지닌 관객은 은근히 잔잔한 재미를 느낄 것 같다.

바야흐로 신고전주의 문화 강물이 흐르는 시대라 이런 스타일로 흥행하기는 힘들다. 몇 년 더 국내 영화 시장이 성숙되고 숙성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간장, 와인, 책은 오래 된 것일 수록 좋다. 언젠가는 이런 류의 영화도 어느 정도 수지타산이 맞게 상영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 기대한다.

은근히 영상미도 세련됐고, 걸출한 두 배우의 연기도 섬세하고 좋다. 삶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각자가 생각해보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제시하는 결말도 괜찮았다.

영화를 보며 내내 '회상 장면에라도 조금만 더 강렬한 러브씬을 넣었더라면 흥행에 큰 보탬이 됐을텐데...'라고 아쉬워했는데 영화가 끝났을 때는 역시 감독의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 흥행은 덜 됐을지라도 영화적인 완성도를 생각하면 자극적인 러브씬이 없는 편이 더 좋은 것 같다.

2009년 1월 9일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