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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2008년 개인적으로 뽑은 최고 영화 - 인투 더 와일드, 추격자, 다크 나이트

by 김곧글 Kim Godgul 2008. 12. 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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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세월이 빠른지, 총알 탄 사나이가 거북이 되어 배경으로 스쳐지나간다. '이 세상' 이란 곳에 잠깐 여행 온 것 같다. 이 세상은 한낱 여행지에 불과하다. 먼저 운명하신 분들은 여행지를 훌쩍 떠나 어딘가 다른 여행지에 좋건 나쁘건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존재할 것만 같다.

2008년에도 어김없이 사회, 국가, 국제적으로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겠지만 나 자신과는 크게 상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기적이겠지만 이 세상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다. 자신에게 의미있지 않다면 우주 전체가 의미 있건 말건 상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깊은 인간의 내면은 동일할 것이다.

재밌는 영화는 언제나 이 세상 여행의 고단함를 풀어준다. 어루만저준다. 단지 아드레날린을 뿜어줘서만은 아니다. 컴퓨터 게임에 빠지면 시간도 잘 가고 재밌고 신난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 속 가상 세계를 빠져나오면 언제나 허무하다. 무의미하다는 안도감이 안개가 되고 충열된 눈을 콕콕 찌를 뿐이다. 정신은 멍하고 머리 속은 텅 비어버린다. 어떤 게이머는 그러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효과도 때로는 현실의 고단함을 어루만지곤 한다. 2년 정도 전부터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다.

좋은 영화는 아련함을 메아리 친다. 가슴 깊은 곳을 어루만진다. 감수성을 진하게 다룬다. 그 어떤 뭉클하고 아련한 감수성을 걸죽하게 남긴다. 여운의 안개가 감수성 마을 구석구석 모락모락한다. 아직까지 컴퓨터 게임은 전달하지 못 하는 영화만의 핵심 매력이다.

감수성을 진하게 다루다 보니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분위기가 다르다. 언젠가 게임 만드는 회사에서 짧게 일했었는데 그 사람들의 감수성은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지닌 감수성과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게임이 전달하는 것과 대부분의 영화가 전달하는 것은 꽤 다르기 때문이다. 간혹 공통 요소도 있지만 미약한 수준이다.

감수성을 진하게 다루다 보니 영화에 너무 몰입한 배우들이 혼란을 겪는 일도 흔하다. 오래동안 쌓인 감수성은 와인처럼 숙성되어 훌륭한 맛과 향기를 관객에게 전달하지만 너무 예민해진 감수성은 상처받기 쉬운 살얼음판처럼 되어버린다. 보통 사람보다 깊고 넓은 감수성 항아리를 지닌 이들의 애환이다. 몇몇 연기자들이 이 세상 여행지를 떠난 경우가 그렇다. 국내에서는 최진실이 있고, 국외에서는 히스 레저가 있다.

현 사이트 최진실 관련 글: 어떤 의미에서 최진실은 행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2008년에 내 감수성을 깊고 넓게 휘감았던 영화를 세 편 뽑아 봤다. 그 중 하나는 2007년 개봉됐지만 나는 2008년에 봤다.

'다크 나이트', '인투 더 와일드', '추격자'

히스 레저가 주조연한 다른 영화는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타입은 아니었다. 관심 없었다. 그러나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의 연기는 여느 뛰어난 연기를 훌쩍 뛰어넘는다. 먼 옛날 배트맨 1편에서 훌륭했던 잭 니콜슨의 조커를 재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경박한 조커를 묵직하고 잔인하면서 지능적이면서도 유모 감각을 잃지 않는 새로운 악당 아이콘으로 승화시켰다.

히스 레저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재창조한 조커는 시나리오 텍스트와 감독의 요구를 훌쩍 뛰어넘어 하늘 높이 날아갔다. 비범한 자들이 머문다는 그곳을 유영한다. 그 댓가로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처럼 날개를 잃고 지상으로 추락한다. 모든 비범한 자들이 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히스 레저는 살아나지 못 했다. 쉽게 말하면 신이 인간을 만들 때 건들면 책임 못 진다는 감수성의 깊은 영역을 건드렸기에 그에 상응하는 충격파를 받았는데 그것을 이겨내지 못 한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혼신을 다해 몰입했던 배역과 이별하고 본래 자신에게 돌아올 때 깊은 우울증을 약물 과용으로 해결하려다 죽음을 맞았다.

여러 배우들의 굵직한 연기도 좋았지만 영화 자체의 담백하고 간결한 전개가 압권이었다. 새로운 오락영화 영상미를 창조했다. 다크 나이트를 보기 전에 평들이 극과 극이어서 기대 반 냉담 반 관람했었는데 개인적으로 2008년 최고의 오락영화로 뽑았다. 2000년부터 2100년까지 100년 동안 전 세계 영화 중 최고의 영화 100편을 뽑는 일은 유명한 잡지에서 흔히 하는 이벤트다. 다크 나이트는 이 목록에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오락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몇몇 관객들의 비평들도 틀린 말은 아니다. 크고 작은 단점들이 존재한다. 근사한 숲 속에는 썩은 나무도 있고 썩은 동물 시체도 있고 독버섯도 있다. 그렇다고 근사했던 숲이 어디로 가버리지는 않는다. 혹시 내 눈이 삐었고 나 혼자만의 과대평가일지도 모른다고 추스리기도 했다. 다행히도 전 세계에는 나와 비슷하게 공감한 관객이 많이 있었다. 인터넷 무비 데이터 베이스(http://www.imdb.com/chart/top)의 Top250 영화 중에 4위에 올라 있다. 등수놀이 한판 뜨자는 의미가 아니다. 다분히 미국적인 취향과 무관하지 않다. 다크 나이트가 범상치 않고 출중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현 사이트 다크 나이트 관련 글: 고담 전설 영웅 화려하게 복귀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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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추격자'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기존 한국 영화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같은 장르에서 '세븐 데이즈'가 있었지만 헐리우드 공식이 짙게 베어있다. 그래도 한국적이게 잘 소화했기에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 확실히 추격자는 새롭게 출중하다.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몇년 전 영화 '올드보이'가 국내 영화계에 새큰한 바람을 일으켰었는데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은 찬바람을 매섭게 맞았었다. 나홍진 감독의 차기작도 어쩌면 왠만한 관객이 기대하는 것에 훨씬 못 미칠 수도 있다. 예술 분야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내놓는 작품마다 수작이 될 수는 없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나홍진 감독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는 추격자에서 보여준 영상미와 서사미에서 새로운 재능 때문이다. 그 재능은 현대 영화 관객을 매료시킨다. 단순히 흥행몰이 했다고 주목하는 건 아니다. 예술성으로 상 받을 일은 없겠지만 뛰어난 장르 오락 영화를 잘 만드는 국내 감독이 있다. 봉준호 감독이 대표적이다.

다행히 나홍진 감독의 영상 스타일은 봉준호 감독과 꽤 다르다. 두부를 자르듯이 단칼에 구분할 수 없지만 봉준호의 영화는 여성적이고 나홍진의 영화는 남성적이다. 새로운 관객층의 여성적, 남성적 감수성을 말한다.

세월이 너무 빨라 이들의 신선한 감수성도 몇 년 내로 해묵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상쾌하고 신선하다. 2008년 봤던 한국 영화 중에 단연코 '추격자'가 최고였다.

현 사이트 추격자 관련 글: 찌그러진 갑옷 기사가 절대악 용에 붙잡힌 공주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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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영화 중에 어떤 영화를 보기까지 사전에 약간의 동기가 있다. 보통 관객이 가장 관심 갖는 항목은 주조연을 누가 했냐다. 어떤 감독이 만들었지? 어떤 시나리오 작가가 썼지? 원작이 뭐였더라? 살펴보는 관객은 매니아 수준이지 일반 관객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 흥행의 결과는 주조연을 어떤 스타가 연기했느냐, 감독이 누구였느냐 보다 모두 통합한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다. 총체적 의미의 영화 자체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는 90년대에 너바나(Nirvana) 만큼 유명했지만 국내에서는 별로 인기 없었던 펄 잼(Pearl Jam) 록밴드의 보컬 '에디 베더'가 사운드트렉을 담당했다고 해서 보게 됐다. 동기가 그랬다. 에디 베더의 음유 노래가 담긴 앨범을 먼저 듣고 영화를 봤던 특이한 경우다. 음악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영화를 보면 영화에 아련하게 녹아들어있다.

감독이 숀 팬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의 연기는 훌륭하지만 그가 만든 영화를 찾아 본 적은 없다. 이 영화를 보고 숀 팬을 감독으로서 다시 보게 됐다. 훌륭한 재능을 가졌다.

실재 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래서 더 감동이 왔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번 쯤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어떤 점에선 누구나 '이 세상'이란 여행지에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똑같다. 누구나 전체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자신에게 친근한 세계가 있다. 공기가 있다. 사람이 있다. 친구가 있다. 영화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만나는 사람마다 착하고 순수하다. 누구나 누군가와 더 알게 되고 친해지는 이유는 그 사람과 자신이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같은 공기가 흐르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오락 장르 영화는 아니다. 어떤이는 별로 재미 없을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미래로 달려가는 이 세상이란 여행지를 여행하는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은 주인공 알렉스처럼 노자처럼 부처처럼 예수처럼 살 수 없다. 그냥 꿈이라도 꿔봐서 나쁠 건 없다.

현 사이트 '인투 더 와일드' 관련 글: 굴레를 해탈하려는 맑은 청춘의 영상시

천재 물리학자 아인쉬타인은 단언했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
나는 빛보다 빠른 것을 발견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세월'이다.

2008년 12월 5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