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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비몽'의 감상은 비(悲)가 아니라 다소 비(非)다. - 비몽(悲夢 2008)

by 김곧글 Kim Godgul 2008. 12. 2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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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내국인처럼 김기덕 감독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평론가, 영화전문가들처럼 우러러보지도 않는다. 화려한 놀이공원, 만화경 대도시를 여행하는 느낌이 호두 한두 알갱이가 간간히 씹히는 익숙한 밀가루 빵이라면, 생소하고 낯선 지역, 건물을 돌아댕기는 여행은 일본 관광객이 한국에 처음 왔다가 가이드의 권유로 곱창을 처음 먹어보는 느낌일 것이다. 앞에 것이 보통 장르 영화라면 뒤에 것은 김기덕 영화다.

낯설지만 살펴볼 가치는 있는 존재란 뜻이다. 낯선 예술품이라고 특별히 더 봐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주식이 밥이라고 하루 세 끼 꼬박 밥만 먹을 수 없듯이 가끔 낯선 예술품을 탐험하는 것은 한편으론 너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틈을 내서 연인에게 요리를 해줬는데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솜씨물이 되어서 안스러워하는 자신을 위해서 낯선 맛을 군말 군표정도 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연인의 행동과 비슷하게 감상할 존재가 낯선 예술품이다.

김기덕의 이번 작품은 좀 별로다. '비몽'의 감상은 비(悲)가 아니라 다소 비(非)다. 예술가가 언제나 출중한 작품을 내놓을 수는 없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다. 피카소라고 죄다 명작만 그린 것은 아니다. 매너리즘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대중성을 담으려고 노력했는데 역효과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는지도 모른다. 환영받았던 자신의 재능을 노골적으로 재탕하는 실수를 골라내지 못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사람들의 감수성도 그에 못지 않은데 그것을 따라잡는데 단지 촬영, 조명, 미술에만 관심 기울였는지도 모른다.

내 감상이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실수는 시나리오 자체다. 먼 훗날, 김기덕의 여러 작품을 비교 평가하는 전문가의 식견이 있다면 '비몽'은 시나리오적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 개인적인 예상일 뿐이다. 착상, 아이디어는 흥미로왔지만 빚은 작품은 총명하지 못 한 빛이다.

그렇더라도 김기덕의 영화는 언제나 내 관심 레이더 안에 있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이 나올까? 장르 내에서 영화적인 표현을 잘 조합해서 잘 만드는 감독이 있는 반면 영화의 장르 자체를 뒤틀고 분해해서 새롭게 조합해보고 실험해서 만드는 감독도 있다. 두 부류의 감독이 모두 중요하다. 둘 중 한쪽이 위태하면 영화 자체의 목숨이 오늘 내일 할 것이다. 각각은 서로 다른 쪽의 영양 높은 혜택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2008년 12월 26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