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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1. 2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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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이란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아끼지 않아서 읽어봤지만 심오한 무언가 보일락말락 했지만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받지는 못 했던 명작소설 '위대한 게츠비'의 작가다. 감독은 한 시대를 자신의 이름표 스타일리쉬로 풍미시켰던 '데이비드 핀처'이고 그의 페르소나로 기록될락말락한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았다. 참 화려하다. 거장 작가의 스토리, 거장 감독 대열에 끼고자 고군분투하는 감독, 아직 거장은 아니지만 영원한 스타로 남고 싶고 여러 아이의 가장인 톱스타가 손발을 맞췄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고 눈돌아가는 미술, 로케이션, 특수효과, 안정적인 연출실력도 좋았다. 스토리도 영화적이다. 소위 헐리우드라는 찬란한 환경에서 뛰어난 재능가들이 펼친 '원숙미'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원숙미'다. 정말 잘 만들었고 연기도 좋고 담긴 이야기도 의미심장하고 철학적이지만 '차라리 원숙미를 절제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스토리와 영상미에서 원숙미가 다소 지나친 감이 느껴졌다. 초반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감동을 잔잔하게 전달하려는 원숙미때문에 더 찬란하게 빛나지 못 한 것 같다. 약간의 아쉬운 점이다.

지나친 원숙미를 빼고 여러 면에서 잘 만들어졌다. 핀처 감독이 거장을 꿈꾸며 기존에 파릇파릇한 자신의 스타일을 수정해보는 시도는 좋았지만 너무 보수적이었고 덜 친관객적이게 만들었던 '조디악'에 비하면 훨씬 땟깔좋은 상업영화스럽다. 물론 이 영화는 영화학도가 영화학교에서 기존의 영화 이론을 열공하고 고진감래 끝에 자신만의 영상미를 창조했을 부류의 영화를 말한다. 때문에 상업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기 쉽다. 아마도 핀처 감독은 이 영화에서 보여준 영상미를 당분간 계속 밀고 나갈 것 같다.

한 인간의 삶이 거꾸로 간다. 관객은 기이한 판타지의 일생을 관람하며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본래 이야기 자체는 괜찮다. 단지 몇몇 장면들은 미국의 유구한 역사와 맞물려 있는데 감동을 더 깊게 전달하려는 것과 깊게 연결되지 못 한 느낌이다. '포레스트 검프'만큼 수량공세는 결코 아니지만 약간 오버하는 감이 있다. 그 외에 서구 영화에서 흔한 설정이 다소 식상스럽게 자극한다. 미국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고려해야했으므로 이해는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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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아카데미상에도 여러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을 읽는 한국인은 상에 꽤 민감할 확률이 크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 촬영 관련 상을 받을 것 같다. 어쩌면 감독상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성만을 따졌을 때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보다는 한 수 아래로 느껴졌다. 개인적인 감동이 그랬는데 아카데미상에 관계된 이들의 선택은 어떨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 큰 상을 타고 말고는 경우에 따라선 미세한 차이일 뿐이다. 후보에 오른 작품은 모두 훌륭하다. 대개 인간사가 그렇듯이 약간의 행운과 시대상이 수상자를 좌우하기도 한다.

옛날의 '데이비드 핀처'를 기대해서 굉장히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짜릿할 거라는 기대감을 버리고 점잖은 원숙미의 감동이 영화가 진정 전달하려는 목표라는 것을 인지하고 감상한다면 결코 실망하지 않고 다소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만약, 후반부를 사랑하는 연인과 딸을 위해서 자신의 기이한 운명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을 전달하는 스토리였다면 어땠을까?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에 가까워서도 잔잔한 유모를 가미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벤자민이 언젠가 자신의 기억을 잃고 간난아기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자신을 돌볼 백발의 연인에게 다음과 같이 써진 쪽지를 남긴다면 어땠을까?

"언젠가 간난아기 되어 당신 가슴에서 식사할 때, 우리의 한창 때가 불연득 떠올라 내 입술이 예전으로 돌아가더라도 너무 심하게 맴매하지 말아줘."

벤자민은 백발 연인의 품에서 포맷된 지능의 간난아기로 일생을 마친다. 

2009년 1월 28일 김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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