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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마더(2009, 국내) - 보통 관객을 위한 스토리가 아니다.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9. 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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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포함 영상미와 더불어 영화 기술적인, 예술적인 부분은 나무랄데 없이 출중하다. 성공적으로 흥행했다고 말할 수 있고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러나 만든 사람들은 좀더 흥행할 것으로 기대했었다며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기대 이상으로 흥행하지 못 한 이유는 내 생각에 스토리 자체에 있는 것 같다.

예술 영화이거나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목적이었다면 이 영화는 아주 잘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중영화로서 흥행하는 데는 너무 힘이 들어갔다. 너무 스토리를 꺾었고, 너무 새로운 캐릭터를 전면에 들춰냈다. 수세기 동안 한국 땅에 보통 사람들의 내면에 형상화되어 한민족 원형으로까지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어머니 상과 동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어둡기까지 한 어머니 상을 전면에 보여준 것이 예술 그따위에 무관심한 보통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 모으는데 실패한 가장 큰 이유 같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수많은 여자가 있고, 수많은 어머니가 있고, 보통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상적인 어머니 상 외에 어떤 어머니는 실제로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처럼 그런 어머니도 있을 수 있다. 충분히 개연성 있고 한 작품의 주인공이 될 만하다. 그러나 한국의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보통 많이 생각하는 어머니 상을 깨는 어머니를, 또한 그런 어머니 캐릭터를 오랫동안 뛰어나게 연기했던 연기자를 통해서, 보고 싶어 할 정도로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고 몰입하거나 연구하거나 매니악적이지 않아 보인다. 일그러진 모성애를 지닌 어머니 상과 그것만을 전면에 내세운 스토리가 보통 관객에게 불편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남의 영화에 감 나와라 말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이 영화가 해외 영화제의 호평을 겨냥하지 않고 국내 흥행을 우선 목표로 만든다면 이야기를 이렇게 바꿀 수 있겠다.

어머니는 초반부터 매우 괴팍하고 기괴하고 무지하고 순박한데, 동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혀를 내두르며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어머니는 안 좋은 소문까지 뒤집어쓰고 살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해명할 정도로 영리하지도 않고 말주변도 없고 인맥도 없고 금전적인 능력도 없다. 어느 날, 아들이 살인자 누명을 쓰고 경찰서에 붙잡혀 간다. 죽은 여고생 핸드폰에 찍힌 누군가 살해하고 어머니의 아들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무시하고 아무도 동조하지 않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누명을 벗겨내려고 고군분투한다. 무지하고 괴팍하고 순박한 어머니가 어떻게 아들의 누명을 벗겨내는지가 영화의 주요 이야기다. 여고생 핸드폰에 찍힌 남자들이 어머니를 암살하려하지만 어머니 특유의 억척스런 성격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아들의 무죄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다. 영화의 재미는 무식하고 천대받는 어머니가 평소 모습을 넘어서 광기와 괴력까지 발휘해서 보수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여러 남자들을 물리치고 아들의 누명을 어떻게 벗기느냐가 핵심이 되었을 때 보통 관객이 재밌어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 같다.

이렇게 스토리가 바뀌었을 때 뻔한 결말이고 많이 봤던 어머니 상일지는 몰라도, 서구권의 유수한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할 수는 있어도, 영화 평론가들에게 평범한 이야기라고 폄하될지 몰라도, 한국의 보통 관객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재밌게 봤다고 생각할 것 같다. 다소 경우가 다르지만 보통 관객의 흥행성에 명중한 '해운대'처럼 말이다. 그러나 스토리만을 제외한 영화적인 완성도만을 본다면 마더가 ‘해운대’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있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더욱 빛내는 데는 성공했다. 흥행에 덜 성공했다고 해서 영화가 별로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영화는 개봉되는 시기의 사람들의 의식과 동떨어질 수 없다. 영화라는 녀석은 마치 터미네이터에서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T2000같은 존재다. 개봉되는 시기에 보통 관객의 구미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적절히 변신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잘 만들어졌으면서 흥행하지 못 한 영화의 유일한 흠집은 바로 현시대 보통 사람의 의식을 또는 보편적인 집단 무의식의 원형을 매몰차게 외면했거나 잘못 겨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껄끄러운 느낌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생각해보니까 혹시 이런 내면의 의문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굳이 현 시점에서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어머니 상을 깬 어두운 어머니 상을 영화로 봐야 할 이유는 뭘까?'

2009년 9월 11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