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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달라진 역전 풍경 & 외국인 지도자 & 컴퓨터 게임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10. 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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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서 추석날 수원역에 갈 일이 있었다. 몇 년 동안 명절에 큰 역에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확 달라진 것인지 아니면 1,2년 사이에 달라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하철 표를 터치스크린이 달린 자판기에서만 판매하는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길게 늘어선 인파들의 구성비가 낯설었다.

다소 과장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략 7명 중에 1명은 외국인이었다. 역 내부도 그렇고 역 주변에 길거리를 거니는 인파들의 비율도 비슷했다. 주로 동남아 쪽 외국인이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긴 중국인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 외국인은 더 많을 것이다. 정말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것 같다. 물론 현재는 특정 지역에 외국인이 몰려 살지만 국내 미래학자들의 예상대로 십년 정도 후에는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 외국인이 될 거라는 예측이 과장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몇 달 전에 명동에 가봤었는데 패션이나 시선처리나 행동의 어딘가 한국인과 다른 일본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상점들의 간판에는 일본 문자가 춤추고 있었다. 조만간 서울도 도쿄나 뉴욕처럼 다국적인 도시가 될 것 같다. 수원이나 부산도 분위기는 다르지만 다국적으로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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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국 야구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부산의 롯데 자이언츠의 비약적인 성장과 팬몰이가 큰 몫을 했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로이스터 감독이 있었다.

과거에 히딩크가 한국 축구를 국제적으로 성장시켰지만 실질적으로 국내 프로축구에는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 즉, 국내 프로축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도록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로이스터 감독은 한국 야구가 국제적으로 위상을 떨치는 데는 전혀 기여하지 않았지만 한국 프로야구의 부흥에는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특정 구단을 정해서 응원하지도 않고 부산이 고향도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롯데가 하는 야구가 시원스럽고 열정적이고 팬들의 응원도 재밌어서 종종 시청했다. 비록 PO에서 안타깝게 졌지만 롯데 야구 분위기는 한국 야구 역사상 이전에는 없었던 열정과 분위기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롯데 외에 어떤 구단에서도 롯데와 비슷한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확실히 로이스터 감독이 지휘하고 나서 롯데가 좋은 쪽으로 전혀 다른 팀이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처럼 뛰어난 지도자라면 외국인을 적극 스카우트하는 것도 의미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뛰어난 외국인 지도자가 국내의 어떤 조직을 지휘하는 동안 주변의 고지식한 국내인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깨달을 것이다. 물론 모든 외국인 지도자가 어떤 경우에나 성공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연, 지연,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묶여서 제자리걸음하는 조직이라면 시도해 볼만 할 것이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외국인 지도자에 대한 유연한 가치관을 지니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고질적인 국내 사회의 어두운 발뒤꿈치 굳은살을 떼어내기에 외국인 지도자를 스카우트하는 방법은 충분히 시도해 볼만해 보인다. 반드시 외국인 지도자를 스카우트해야 굳은살을 떼어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굳은살을 떼어낼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에 효과적으로 보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영어 학습 시간을 강화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타국의 뛰어난 지도자를 스카우트하는 데는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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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라 형님 댁에 갔었는데 오랜만에 조카들을 만났다. 초등학교 초반 때만 해도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재밌었는데 한 놈은 초등학교 5년 또 한 놈은 중학교 3년이 되어서인지 거의 컴퓨터 앞에서 게임만 하고 어쩌다 텔레비전을 보고 밥 먹을 때 잠깐 얘기하는 게 전부였다. 물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면 대화를 하지만 이어갈 수 있는 소재가 게임에 관한 것 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5년생이 몇 년 더 어렸을 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제법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즉 내게는 형수님)의 취향도 있겠지만 웬만큼 그려서는 그림으로 밥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일찌감치 학교 공부에 전념하게 유도했다. 그래도 내가 사준 미니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게임 캐릭터를 보니까 그림 쪽에 재능을 타고 나긴 했다. (그 대신 몸치다) 다만 천재적이지는 않을 뿐이지 누가 봐도 잘 그리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두 녀석들이 하루 종일 게임만을 한다. 보통 평일에는 게임할 수 있는 시간만 할 수 있도록 제안되었는데 명절이라 특별히 맘대로 할 수 있도록 허락받아서인지 새벽 2시까지 게임을 했다.

나도 게임을 좋아하지만 한창 어린 아이들이 집에서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의 평일은 학교, 학원, 집에서 게임이 전부였다. 나는 심심해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쏴 돌아다녔다. 작은 개천이 길게 늘어졌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바람으로 머리카락을 가르며 하류로 내려갔다.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다. 비둘기들이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조깅하는 시민들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너무 멀리 간 것 같아 슬슬 되돌아오는데 상류 쪽으로 올라오는 거라 자전거 페달을 밟는데 꽤 힘들었다. 그 생각을 미처 못 했다. 나도 당장 좋은 것만 쫓다가 뒤에 가서 고생한 꼴이 되었다. 내가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게임을 최대한 줄이고 같이 산책하고 돌아 댕기며 사진 찍고 그림 그리는 것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싶다. 만약 다른 쪽에 흥미가 있으면 그쪽으로 유도할 것이다. 만약 게임을 미친 듯이 좋아해서 어쩔 수 없다면... 아이가 게임을 창작할 수 있는 (스토리를 지어내고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겠다.

2009년 10월 5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