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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아듀 2010, 방가 2011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12. 2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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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빨리 지나듯 1년도 빨리 지나는 것 같다.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생각의 영역에 먹는 나이를 고민할 여지가 침투할 가능성이 높은 나이대로 접근해간다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갈수록 더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나의 일과 소임을 열심히 해나가고, 적당히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운 삶일 것이다. 진정으로 깊은 사랑을 하지 않고 죽으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주 중대한 뭔가를 빼먹고 떠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자손을 남겨야 한다는 본능적인 것을 떠나서 말이다.


올 초에 경제와 관련된 커다란 이슈는 스마트폰과 3D 영상이었던 것 같다. 꼭 이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에서 경제적 지원을 쏟아 부은 분야를 보면 그리 신빙성이 떨어지는 얘기도 아니다. 아바타가 전 세계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대박을 치면서 당장 내일모래부터 모든 영상 매체가 3D로 바뀔 것처럼 매스컴이 침을 튀기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온라인상에서는 '클릭-스틸러(click-stealer)'로 활약했다. 울궈먹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요즘들어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2D 영상을 좋아할 것 같다. 그렇다고 3D 산업이 저문다는 뜻은 아니고, 다만, 어떤 영역을 차지하겠지만, 기존의 2D 영상산업이 위축될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다. 오히려 2D 영상 산업은 고화질 방향, 섬세하고 감성적인 시각적 만족감을 제공하기 위해 더 높은 경지를 올라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 같다.

스마트폰 산업에 관한 관심은 정초보다 더욱 상승했다. 국내 대기업 제품도 잘 팔렸다고 홍보되고 있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리고 주로 짧은 글을 읽고 쓴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터 블로그 문화가 유행에서 슬슬 밀려나는 느낌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블로그는 인터넷 대로변을 쌩쌩 달리는 자가용 물결이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자전거, 스케이트 보드, 롤러 블레이드 심지어는 스카이 콩콩 느낌의 ‘짧은’ 글들이 인터넷 대로변을 빼곡히 매웠다. 트위터다. 인터넷 세상이 온통 게시판 댓글 같은 존재감의 글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국민학교 시절, 또래들과 야구팀을 조직했었다. 그냥 같은 반, 동네 친구들이 당시 유행을 쫓아 놀았던 것이다. 그때 야구팀 이름이 ‘참새 야구단‘이었다. 그렇게 지은 이유는 한번 모이면 야구 연습은 안 하고 다들 입만 살아서 참새처럼 짹짹(tweet)거리기만 한다고 해서였다. 문뜩 먼 옛날이 떠올랐다.

넓은 지구촌의 사건과 이슈들이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바로 코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해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반대급부로 사람들은 더욱 개인의 소중함을 돌보는 것도 잊지 않는 것 같다. 결국 누구나 '나의 삶'이 중요하다. '나의 행복'이 중요하다. 밖으로는 국가, 민족, 단체, 조직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국 달과 별도 잠드는 깊은 밤에는 홀로 침대에 눕는다. 결국 인간은 혼자인 셈이다. 내면까지 전부 외부세계와 공유될 수는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 것 같다. 아무리 소셜 네트워크가 발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경세포처럼 연결되어도 인간은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훗날 인간과 똑같은 인공로봇이 나오더라도 이런 점이 인간과 로봇을 구분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트위터는 이전의 인터넷 매체(게시판, 카페, 개인 홈페이지, 블로그)보다 훨씬 더 개인적인 매체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개인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타인과 소통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타인에게 보다 개인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소통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의 성장도 이러한 개인의 기호를 지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내년에도 더욱 활성화될 것 같다.

올해 태블릿의 활성화는 전초전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기존의 유명한 웹사이트의 레이아웃도 다시 좁아지고 빼곡하게 정돈하는 것 같다. 역사가 깊은 웹사이트에 속하는 인터넷 무비 데이터 베이스(www.imdb.com)가 단편적으로 얘기하는 것 같다. 스마트폰, 태블릿PC로 방문하는 이용자들을 위해 웹사이트를 간결하고 작게 만드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사실 노트북도 11인치나 13인치가 일반적인데 이 화면보다 넓은 레이아웃으로 이용자를 맞이하는 웹사이트는 떡볶이를 보통 남자는 한 입, 여자는 두 입에 씹을 수 있는 길이보다 더 길게 써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잘은 몰라도 인터넷 사이트를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이전에는 17인치 모니터에 기준을 두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태블릿PC(아이패드), 노트북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레이아웃을 만드는 것 같다.

이렇게 놀랍게 IT기기가 세상을 이끌고 있지만 아직 산업혁명만큼 혁신적인 것이 나오지는 않은 것 같다. 좀 더 혁신적인 파급력을 지니는 거라면, 소규모 영세업자가 스마트폰의 부품을 따로 따로 구입해서 자신만의 노하우와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컴팩트하게 조립해서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 또한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자신만의 스마트폰을 조립할 수 있고, 각양각색의 앱(App)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도 자신이 생각한 앱을 만들어서 사용하거나 팔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산업혁명에 맞먹는 혁신적인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현재 IT 세계는 주로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정치제도로 치자면 왕정이다. 개인은 ‘메이드 인 왕국’이 제공한 삽과 곡괭이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IT 대장간은 왕국 내에만 존재한다. 만화책이나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볼 수 있는, IT 제품을 가내수공업처럼 소규모 업자도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형성될 시대가 올지 궁금하다.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기억에 남는 외국 영화는 '인셉션', '킥애스', '더 로드', '소셜 네트워크'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순수하게 영화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인셉션’이다. 높은 언덕에 있는 웅장하고 압도적인 궁전을 바라보는 듯은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킥애스’는 콜라와 피자를 먹으며 참신하고 짜릿한 웰 메이드 만화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더 로드’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나 혼자 쓸쓸하게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데 문뜩 그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는 정적이고 감성적인 느낌, 바로 그런 감수성이 올라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사과파이를 해먹어야겠다.)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는 영화적인 감성으로 좋았다기보다는(물론 좋았지만 전적으로 영화적인 감수성만은 아니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 잠재되어 있던 창작력을 다시 일깨워주는 영화였다. 오래 전에 영화에 빠지기 전에 인터넷 비즈니스에 몸담았던 적이 잠깐 있었는데 그때 계획했던 큰 그림이 어떤 면에서 현재의 '페이스북'과 닮은 점도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말이다. (단순히 온라인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을 아우르는 인터넷 판 가상 사회 말이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관련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깨어났다. 마치 무덤에서 좀비가 벌떡 깨어난 것처럼 말이다.

국내 영화 중에서는 감성적인 면에서 ‘더 크로스’가 가장 좋았다. 혼자 보고 혼자만 생각하고 느끼고 싶은 영화였다. 오락성은 전혀 없다. ‘더 로드‘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은유적으로 감상했다. 한 인간과 냉혹한 사회가 운명적으로 얽혀 있는 세상을 은유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 홀로 사막을 횡단하는 인생길을 걷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외에 인상적이었던 국내 영화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영화적인 느낌으로 좋았던 것 같다. 어떤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 가요계에서는 아이돌 그룹이 대세였다면 영화계에서는 '학살돌'이 인상적었다. '캑애스'에서 '힛걸', '렛미인'에서 '엘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어떤 면에서 현대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일본 애니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학살돌이지만 서구권 상업 영화에서 최근 들어 심심찮게 등장해서 맹활약을 하는 것 같다. 관객에게 그 어떤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과거에도 학살돌이 없지 않았지만 학살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학살돌일 뿐이었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영화 '레오'에서 '마틸다'이다.

그건 그렇고, 올해도 어김없이 후회가 많다. 좀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아쉽다. 계획 했던 것도 잘 안됐다. 가장 중요한 것도 완성하지 못 했다. 내년 목표 중에 가장 중요한 것도 당연히 그것이다. 대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과 ‘사랑’일 것이다. 깊게 빠져들 일이 없다면, 깊게 빠져들 사랑하는 연인이 없다면, 서두에 말했지만 앙꼬 없는 붕어빵일 것이다. 깊게 사랑할 연인, 깊게 빠져들 일,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깊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무엇, 신체에 있어서 심장과 두뇌와 같은 것이다. 두뇌가 없는 것은 좀비들이다. 진정으로 깊은 사랑을 하지 않는 자, 좀비가 될 지어다.


2010년 12월 20일 김곧글


ps: 올해 크리스마스도 어김없이 컴퓨터의 손, 마우스를 잡고 늦은 밤 동안 한숨을 쉬며 지새워야 한다. 내년 이맘때는 그녀의 손을 잡고 왠지 시애틀에 있을 것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과자를 씹고, 깊은 밤을 지새우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하지 못 하면 나도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 (문뜩, '좀비들의 크리스마스'... 영화 소재로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ps: 내년에는 종이노트에 메모했던 톨글을 마저 정리해놓고,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아이템이다. 최근에 떠오른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어쩌면 지구촌 누군가 벌써 시작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거인처럼 윤곽을 들어낸 사이트는 없다. 그 아이템은 공익의 측면도 있고,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도 있고, 개인 각자에게 유용한 측면도 있고, 문화적으로 진보된 풍토적인 측면도 있고, 보다 인간적인 사회와 삶과도 관련이 있다. (너무 거창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그냥 단순하고 쉽고 일상적인 무엇이다. 참고로 이곳에 올려진 문자들과는 전혀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