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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구정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2. 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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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전 풍경 중에 예전과 달라진 점은, 지하철 맞은 편에 앉은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는 허르스름하게 차려입은 블루 칼라 중년까지 무가지 신문조차 없는 공휴일이라 뻘쭘한 기류를 떨쳐내려고 스마트폰에 몰뚜하고 있는 모습도 이채롭지만, 뭐니뭐니해도, 역전 대합실에 동남아 출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이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일상적인 풍경이 되긴 했다. 김홍도가 다시 태어나 풍속도를 그린다면 '역전'이라는 작품도 그려질 가능성이 높고, 그 속 인물들로 몽고계(한국인 포함) 뿐만아니라 여러 아시아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장면도 넣었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대개는 떡국, 잡채, 전, 고사리나물을 먹자마자 쇼파에 들어누워 휴대용 IT기기로 게임을 한다. 남자 아이들은 그다지 해야할 일이 없으면 무조건 게임과 대면한다. 그들에겐 게임 속의 가상 세계에서 동심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나와 비슷한 세대들이 황순원의 '소나기'나 알퐁스 도테의 '별'을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문뜩 그리워한다면(물론 안그런 사람도 많겠지만), 요즘 아이들이 한참 컸을 때는 가상 세계에서 크리티컬 데미지(Critical Demage)의 칼부림을 끝내고 희귀 아이템을 득탬했다며 특유의 깜찍한 춤을 추는 아바타의 애교를 추억으로 상상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후자는 더 치밀하게 '자본시장주의'에 맞닿아있다는 점이 차이다. (물론 내 생각에 소박하고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무엇도 한 세대 윗분들이 보기에는 도토리 키재기로 보일 수도 있다)

가끔 생각한다.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전반적으로 꼬지고 카세트테이프로 팝송을 듣던 시절, 친구를 만나서 맥주, 과자, 오징어, 땅콩을 널려놓고 밤새도록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로 좋았던 시절, (어랏? 웬 서정성?)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단지 현대문명세계의 변화때문이 아니라, 개인 통신 수단과 여가 시간 사용의 변화로 평균 인간 사회성이 적잖게 변했고, 단지 내가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만약 IQ(지능지수)나 EQ(감성지수)처럼  현대 사회성을 점수로 환산하는 (좀 멍청한 짓 같지만 누군가 시도할 것 같다) 'SQ(소셜지수)'라는 것으로 나를 평가한다면 침팬치나 돌고래보다 낮을 지도 모른다. 한편, 아이러니컬하게도 낮은 소셜지수는 나의 독특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성장시키는 측면도 있다. (사실 이곳 블로그에 장문을 쓰거나 문자를 창작하는 것도 항상 누군가와 사회성을 유지하기보다는 그렇지 않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있다)

문뜩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한다. '결혼을 하면 내 개인 생활이 매우 적게 줄어들테고, 부인, 아이들, 부모님들, 친척들과 함께 보내야하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익숙해지는데 스트레스의 압박이 좀 있을 것 같은데 잘 이겨낼 준비는 됐어?'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며 용기를 심어준다. '정말 사랑스런 부인을 만나 사랑해줄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으며 살고 있는 당연한 인생사 쯤이야 이겨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나만 특별히 그런 건 아니다. 인간들 대부분이 그렇게 잘 살고 있다.'


아주 어렸을 때 세배돈을 받으면 주로 전자오락실에 가서 외계인을 물리치는데 썼다(그래서 현재 지구가 무사한데 확인할 길은 없다). 조카들은 엇그제 내가 준 세배돈으로 십중말구 xbox360용 게임디스크를 구입해서 외계인과 전투를 벌릴 것이다(올해도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기는 글렀다). 요즘 시대에는 세배돈도 시세에 맞게 줘야한다. 안 그러면 조카들에게 왕따당할 수도 있는 시대인 것 같다. 아무튼 요즘 시대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가 나날히 중요해지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치열하게 열심히 부지런히 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사회라는 거대 시스템이 조종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예나 지금이나 마냥 한가롭고 여유롭게 한들한들 살수만은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가보다.

구정 연휴의 끝자락에 올해 가장 중요한 목표를 되새겨본다. 그것은 나만의 여신을 품절녀 종결자로 만드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생동안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2011년 2월 6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