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엔씨소프트, 프로야구, 로이스터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2. 11. 18:5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이 프로야구를 창단하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다소 불만스러워하는 프로야구 관계자들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그의 행보가 이해는 간다.

김택진이 꿈 많고 파릇파릇했을 학창시절에 우리나라 최초로 프로야구가 창단되었고 그 영향력은 매우 컸었다.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는 현재로 치면 고가의 명품이거나 굉장히 매니아적인 물건이었고, 온라인 게임은 아애 존재하지도 않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은 전자오락실뿐이었고, 라디오 음악 인기 차트는 대부분 팝송이 차지했고, 영화도 지금처럼 대중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 당시 소년들이 많이 즐겼던 오락거리는 프로야구, 만화책, 오락실 정도였던 것 같다.

일본 만화 비공식 번역판의 영향도 있지만 그 당시가 야구 만화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보물섬'이라는 아주 두꺼운 월간 만화 잡지가 나와서 꽤 인기를 끌었었다. 그런데 오래 가지는 못 했다. 여담이지만, 먼 미래에 한국 만화 역사를 논할 때 보물섬 잡지를 빼고는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강제규 감독과 김용화 감독이 허영만 만화 원작 '미스터고'를 영화화한다고 보도되었었다. 이 만화의 오리지널 또는 기원이 최초에 보물섬에서 연재되었었다. (이후에 그려진 것과 완전히 같은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야구 만화에서는 참신한 소재였던 거대한 고릴라가 4번 타자를 한다는 소재였던 것 같다)

또 하나의 여담은 '로보트 킹'으로 유명한 고유성 화백이 영화 고전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만화로 연재하기도 했었다. 인기가 없어서 비록 3회인가 4회에 종영했지만 만화잡지로서는 꽤 신선한 시도였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처음으로 이 영화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 만화를 통해서였다. 그 당시 소설책도 구해서, 뭔 내용인지 몰라도 졸아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현재 김택진 정도의 나이대가 학창시절이었을 때 좋아했던 오락거리는 만화였고 그 중에서 야구만화는 가장 인기 장르였고 (현대 영화로 치면 액션 장르), 그 인기 많았던 만화가 실제 세계에 펼쳐진 것이 국내 프로야구였으니 인기가 좋지 않을래야 좋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김택진 정도의 사람이 모아둔 엄청난 액수의 돈으로 어딘가에 투자해야하는데 그곳으로 프로야구를 선택한 것도 의외는 아니게 보여진다. 인간은 누구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꿈과 무관하지 않게 살아가기 마련이다.
(강제규가 허영만 화백의 야구만화 '미스터고'를 만드는 것도 김택진의 경우와 대동소이한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보도대로 부산에 야구붐을 일으켰던 로이스터 감독이 다시 감독직을 맞는다면 아주 흥미로울 것 같다. 현대 프로야구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간간히 심심할 때 어쩌다 보는 정도지만, 지금까지 봤던 국내 프로야구팀을 지휘했던 감독 중에 로이스터 감독 스타일이 가장 내 마음에 들었다. 세부적인 것까지야 잘 모르지만(실제로 그의 스타일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얼핏 야구 중계에서 간간히 보인 것으로 판단하건데, 로이스터 감독은 기존의 권위적이고 보수적이고 군대적인 국내 감독 스타일과 매우 상반되는 스타일이면서도 한국 야구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미국적인 무엇이 한국의 어떤 조직에 뿌리내리기는 매우 어려운 편인데 로이스터 감독은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내가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갖고 애청하게 된다면 그 첫번째 이유는 로이스터 감독 스타일의 야구를 즐기기 위해서다.

선수들과 코칭스텝들에게는 팀의 승패가 자신들의 생계와 맞닿아있으므로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할지 몰라도, 그냥  관객인 나로서는 팀의 승패보다 야구 자체의 재미, 즉 선수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멋지게 펼치는 야구를 보는 것 자체가 좋다. 따라서 팀이 지고 이기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선수들이 야구를 즐기면서 멋지게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어차피 토너먼트가 아니고 시즌 리그전이니까 여러 게임을 하다보면 질수도 있고 이길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팀이 이기던지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던지 변화는 중요하다. 새로운 물결이 들어와야 고인물이 흐를 수 있고 썩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물결을 수용할 수 있는 조직 체계가 매우 중요해진 현대사회인 것 같다.


2011년 2월 11일 김곧글


ps: 나는 돌아댕기는 것보다 창문이 있는 집안에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문자 창작도 포함), 깨작대거나... 등등을 좋아한다. 그래도 필이 꽂히면 그냥 여기저기 주로 도심지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먼 곳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도 충분히 즐기는 편이다. 서울의 도시 풍경을 돌아보는 것도 좋아한다. 한남동과 신사동이 접해있는 곳에 위치한 조그마한 '학동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모기한테 수십방 뜯기기도 했지만, 활짝 핀 벚꽃의 아름다운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벌써 1년 전이다. 올봄에도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