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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순위 경쟁 예술 시대도 한철이다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4. 12. 21:30

인터넷도 없었고 컴퓨터도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던 시절, 음악감상은 젊음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취미였던 시절이 있었다. 내 경우 군대 가기 전까지는 라디오로 팝송을 종종 들었는데, 군대에서 유별난 사람을 만나고나서 장르가 슬쩍 바뀌었다.

그 쫄병의 이름은 '혁명'이였다. 소위 데스메탈(Death Metal) 장르를 하는 인디 밴드의 보컬이였다. 처음에는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못 하니까 괜히 헉헉(아주 저음으로) 내지르는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웬만한 가요, 팝송, 트로트까지 수준급 이상으로 잘 불러서 주위를 놀라게 했었다. '가수는 가수였다.' 아무튼 그의 소개로 알게된 음악 장르가 '얼터너티브 락'이었다. 펄잼, 사운드가든, 너바나, 나인 인치 네일즈, 앨리스 인 체인스,... 홍대 음악 카페, 혜화동 음악 카페... 제대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 음악에 빠져 살았었다. 음악도 좋았지만 그 장르의 뮤직비디오도 좋았다. (그 결과 감수정은 깊고 넓어졌지만 현실 사회 적응은 뒤쳐졌었다.) 그는 얼터너티브 락 장르를 가장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 경우에 가장 빠져들었던 뮤지션이 '너바나'였다.

음악성으로 치자면 명성있는 뮤지션들보다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쉽고 단순하고 명쾌하고 시원하고 원초적이며 게다가 깊은 내면을 어루만져주는 감수성의 음악이라면 그 장르에서는 단연코 너바나였다. 미국에서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대중적으로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 했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아했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영원히 먼 길로 떠났던 날은 4월이였다. 그냥 그랬다구. 그의 원초적인 감수성의 창작 음악을 더 많이 들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여러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스스로 통제하며 발전시키지 못 하면 불행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남긴 셈도 된다.

최근에 예술 분야에서 특히 음악 관련 분야에서 무슨 무슨 순위 다툼 컨셉이 유행인 것 같다. 소위 '순위 경쟁 예술'이 폭풍유행 중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신선하고 자극적이라(가학적인 컨셉의 연장선 --;) 흥미로운 점도 있겠지만, 예술의 본질을 따져본다면 그렇게 쾌적한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세상사는 돌고 돌고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봉우리의 산세처럼 변화무쌍해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도 않을 것이다.

고음이니 성감이니 톤이니 절대음감이니... 하는 것은 분석하는 순간 별개가 되는 것이다. (마치 양자이론과 비슷하다. 분석하기 전과 분석한 후의 존재성은 서로 다르다. 즉 커트라인 순위를 의식해서 표현한 예술은 그렇지 않을 때의 예술과 전혀 다른 존재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좀더 자세히 분석하려고 깨트려 조목조목 살펴보면 그것은 커다란 것과 별개의 다이아몬드 조각일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살아있을 때 나은 알과 거위의 배를 갈라 끄집어낸 한두 개의 알은 별개의 가치일 것이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그 오묘한 이유들을 일일히 분석하고 통계를 낸다고 해서 그 순위화된 항목이 사랑의 진실을 포괄적으로 깊고 진실되게 설명하지는 못 한다.

90년대에 미국에서 얼터너티브 락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는 그 전까지는 락 음악이 다소 현학적으로 변질되어서(60년대에 비해 그랬다는 뜻) 소위 속주 기타리스트에 대한 관심에 몰렸었다. (유럽에서는 클래식처럼 복잡하고 고전풍의 아트락(Art Rock), 프로그래시브 락이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또는 '건스앤로지스(Gun & Roses)'처럼 빅 슈퍼 밴드만 떼돈을 벌 수 있었다. 록 음악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 쯤에 그런 것에 관한 대중들의 반발력에 의해 이웃 집 젊은이들이 부르는 것 같은 음악, 비록 분석적으로 따져보면 이전의 훌륭한 락(레드 제플린, 딥퍼블, 핑크 플로이드...)보다 다소 떨어지거나 재활용 수준일지는 몰라도 9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개인적인 감수성을 확실히 담아내는 얼터너티브 락 장르가 새로운 음악 시대를 열었었다. 즉, 음악의 기술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던 장르가 유행했었다가 개인의 느낌과 감수성을 중요시하는 장르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유행하는 '순위 경쟁 예술'은 최근에 좁디좁은 매스컴 국내 음악 시장을 초토화시킨 걸그룹들의 파죽지세에 다소 식상한 일반 대중들의 반발력의 지지를 얻어 인기를 끌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또한 한국인 특유의 유별난 '순위 경쟁 속성'도 한몫 거들었다.

유행이 돌고 돌듯이 언젠가 주부 가요 열창이 폭발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가 지금은 조용한 황혼의 유행이 되었듯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과부하에 걸린 '순위 경쟁 예술'도 차츰 수그러들어 황혼의 유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본래 예술의 순수성 즉 감수성, 창작성이 단지 테크닉적인 측면에 치중하거나 또는 세부적이고 분석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유행을 대체해서 조금 색다른 형태의 유행으로 바뀔 것이다.

어쨌거나 예술을 소비하는 대중들이야 유행에 민감하다고 치더라도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할 것 까지야 없고 그렇다고 외면하면 더더욱 안되고, 자신에게 알맞는 그 교집합의 어느 지점에서 우뚝 서서 자신만의 넓은 예술적 세상의 지평선과 내면의 목소리를 함께 귀기울이며 예술을 창작하면 될 것이다. 사실 '순위 경쟁 예술'에서 논쟁거리는 예술 자체에 포함되었다기 보다는 예술 작품의 소통, 보급, 유통과 관련된 무엇일 뿐이라고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4월 12일 김곧글


ps: 거짓말처럼 겨울이 훌쩍 가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등뒤에 숨어있다가 '까꿍'한다. 그래봤자 황혼의 겨울이다. 곧 모기와 친해져야할 여름이 도래할 것이다.


커트 코베인이 좋아했던 동년배 뮤지션 Sonic Youth 의 초창기 인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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