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스탠리 큐브릭 다큐 (Stanley Kubrick A Life In Pictures, 2001)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11. 14. 12:30



2001년에 나온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다큐다. 그는 1999년 3월에 죽었다. 그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실제 년도까지 살지는 못했지만, 문득 궁금한 점은, 영화가 개봉한 1968년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30년후 2001년에는 달에 인간이 상주하고 목성으로 탐험대를 보낼 수 있을거라 상상했을까? 아무튼 2001년보다 10년이나 훌쩍 지난 2011년 현재까지도 그런 일은 '모여라 꿈동산'에 나올법한 이야기다.

이 다큐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영화를 중심으로 감독으로써 그의 삶을 간결하게 조명했다. 간간이 실제 그의 개인적인 삶과 부인, 자식에 관해서도 보여준다. 다소 놀랐던 점은, 기존에 내가 상상했던 큐브릭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의 파격적이고 혁신적이고 인습타파적인 작품을 보며 내가 상상했던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괴팍한 성격에 파란만장하게 살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전혀 반대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결혼했고 비교적 가정적인 가장이었다. 부인은 그의 초기작 '영광의 길'에 출연한 여배우였다. 평생 그녀와 무난하게 살았다. 인터뷰에서 풍기는 부인의 인상은 톨스토이의 악처와는 반대로 보였다. '롤리타', '시계태엽 오렌지'를 만든 감독이 사생활에서는 영화 작업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가족과 지내거나 또는 집 근처 사무실에서 측근들과 차기작을 준비했으며 평소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라는 점이 얼핏 매끄럽게 연상되지 않는다. 웬지 실제 생활도 괴팍한 풍운아였을 것 같은데, 전혀 반대로 평범하고 점잖게 살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단히 치밀한 여우같은 성격의 인간형으로 보였다.

천재들 중에는 불행한 어린 시절과 불행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자가 적지 않은데, 큐브릭 감독은 어린 시절도 유복했고, 베르그만(Bergman) 감독처럼 매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고생하지도 않았고, 죽을 때까지 행복한 사생활을 살았다.

큐브릭의 천재성을 생각하며 클래식 작곡가에 비유하자면 그의 작품은 '베토벤'스러웠지만 그의 삶은 '바하'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큐에는 없는 필자의 생각인데 아주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참고로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 알렉스가 아주 좋아했고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로 사용됐던 음악이 베토벤 교향곡 9번이다)

다큐에서 한 평론가가 큐브릭을 이렇게 평가했다. '영화의 역사는 큐브릭 감독 이전과 큐브릭 감독 이후로 나뉜다.' 그만큼 그의 영화가 수많은 감독들에게 알게모르게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SF 영화 장르에서는 비단 평론가뿐만아니라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전과 이후로 SF 영화 역사를 무 자르듯이 나눌 수 있다. 실제로 다큐에는 헐리우드의 기라성같은 거장 감독들이 큐브릭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인터뷰를 한다. 전체 나레이션은 탐 크루즈가 했다.

큐브릭 감독이 만든 작품은 많지 않다. 대략 10편 내외쯤 될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작품은 소위 영화의 전당에 올려질 수 있는 고전이 되었다. 어떤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고 어떤 작품은 그러지 못 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영화는 세월이 흘러도 다시 감상할 가치가 넘치고도 남는다.

생각해보면 큐브릭 감독보다 흥행작을 많이 만든 감독들은 꽤 많다. 그러나 큐브릭 만큼 경외의 대상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영화의 종결자', '영화의 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다큐를 보고 가장 먼저 '시계태엽 오렌지(Clockwork Orange, 1971)'를 구해서 봤다. 정말 1971년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과 영상미였다. 단지 충격적인 몇몇 장면들 때문에 이 영화를 저급으로 평가절하할 수 있는데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해보면 (연극처럼 대사가 많은 편이고 중요하기때문에 한글자막이 잘 되있는 것으로 감상)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의미심장하고 현대 문명과 인간의 양면성을 냉철하고 심도있게 (다소 풍자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다큐에서 누군가의 말대로, 큐브릭의 위대한 점 중에 하나는, 그가 일찍이 거장이 되어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흥행 위주의 다작, 관객이 원하는 보편적이고 달콤하고 킬링 타임용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뜻인 것 같다)

큐브릭과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만드는 현대 거장 감독으로 데이빗 핀처가 떠오른다. 작품에 흐르는 주제의식의 관점이 비슷하다. (아쉽게도 두 감독의 영화는 국내에서 흥행성이 빈약한 편이다)

이제 겨울이고 연말이 다가오고 몸은 추워지고 마음은 숙연해지고 심장은 외롭고... 그 동안 봐야겠다고 생각만하고 있던 고전 영화와 소설을 감상해야겠다. (너무 과거 명작에 빠져있어도 안 좋다. 그땐 그때고 현재는 현재니까 말이다. 현실 감각은 언제나 중요하다.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야하는 존재이니까)


2011년 11월 14일 김곧글


ps. 추운 겨울에 창밖 거리에는 눈이 내리고 KPOP이 흐르는 카페 구석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병을 홀짝홀짝 들이키며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려 열나게 글을 쓰는 것도 현대 도시 풍경 중에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