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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트리 오브 라이프(2011) - 올해의 영화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11. 8. 11:17


대개 파격적인 형식미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젊은 천재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언제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테렌스 맬릭' 감독의 이전 작품을 못 봤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이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를 보고 '이렇게도 영화를 훌륭하게 감동적으로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용만으로 치자면 큰 임펙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이야기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 소년의 사춘기 이전 성장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이 영화를 감상하는 재미는 내용에 비중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용을 관객 친화적인 방식의 이야기성으로 구성하지도 않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보통 영화적인 형식이 아니란 뜻이다. 내용을 가지고 이 영화를 평이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코끼리의 꼬리만을 만져보고 '꼬리곰탕'이나 끓여먹자고 하는 것과 같다.

수많은 카메라 시점과 컷 자체도 여느 영화와 비슷한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다르다. 그렇다고 괴팍하게 다른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한 가족을 객관적인 시점에서 조망해주는 다큐멘터리 시점을 닮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보다보면 그것도 아니고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카메라 시점이었다.(총체적인 관점에서, 인물을 찍는 카메라 시점은 다큐멘터리 시점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스테디캠을 많이 사용했고, 카메라 자체의 움직임도 다이나믹하고, 특이하게 좌우로 살짝 오락가락 의도적으로 갸우뚱하는 기법은 보통 다큐적인 기법이라 볼 수는 없다. 또한 클로즈업 컷을 비교과서적으로 다른 컷들과 편집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감독이 표현하려는 시점은 일종의 '의식의 흐름 카메라 시점'이 아니었을까? '의식의 흐름' 기법은 20세기 초에 문학의 소설 분야에서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에 의해서 개척되었고 '도스토예프스키', '프루스트' 등이 이야기성과 접목해서 소설의 고전을 만들었었다.

영화의 영상을 카메라 시점으로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영화는 '의식의 흐름'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훌륭하게 창조했다. 물론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에서 '의식의 흐름'을 탐구하고 인상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영화 전체적으로 통일성있게 완성도있게 표현한 작품은 이 영화가 최초인 것 같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아직 이 영화를 적확히 평가하기는 이를테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과 맞먹는 위엄과 권위를 갖춘 영화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즉, 영화의 고전이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를 보다 깊게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영화란 뜻)

어떤 장면들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장면들과 매우 닮았다. 그러나 억지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우주의 탄생에서 지구에 이르는 생명체의 의식 무의식의 흐름'도 중요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의식, 어머니의 의식, 아들의 의식, 그리고 이들의 무의식 즉 인간의 무의식에 들어있을법한 생명체 공통의 무의식,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우주의 탄생, 신의 행적을 영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친숙하지 않은 영상과 카메라 시점과 컷들의 비개연적인 불연속성이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것은 보편적이고 익숙한 내용을 느리게 표현하면서 세부적으로 관객에게 보편적인 내용을 추측하게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즉, 관객은 영상을 보면서 이런저런 것을 상상해보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치밀하고 견고하게 꽉 짜인 스토리를 즐기는 관객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내용보다는 영화의 영상에서 새로운 형식미를 개척한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내용 위주로 영화를 평가하는 국내 관객 풍토에서 평가절하될까 우려된다.)

엄숙하고 경건하기도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영상과 음악과 수많은 컷들이 일관성이 있고 통일성이 있기에 총체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달콤하지 않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움, 지구의 온갖 생명체에 공통적으로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의식, 무의식을 표현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뽑은 2011년 올해의 영화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2001년부터 2100년까지 최고의 영화 100편을 선택할 때 반드시 포함될 작품이다. 올해 태어난 영화의 고전이다.


2011년 11월 8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