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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통증(2011) - 세상의 끝에서 만난 연인들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10. 28. 11:10



늦은밤 잠이 안와 문뜩 감상했는데 꽤 좋았다. 처음부터 몰입도가 높았다. 영화는 처음 5분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데, 꼭 그 시간이 중요한 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어떤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감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멈추게 하는 의식을 날려버리는데 충분했다. 처음부터 끝가지 멈추지 않고 바로 봤다. (물론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팔이 튀어나와 나를 의자에 강제로 앉힌 것은 아니다. --;)

세상의 벼랑 끝에 놓여있는 두 연인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도 내 딴에는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침울한 분위기가 국내에서의 흥행에 악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현대 국내 관객들은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좀처럼 영화에서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다수 TV 드라마도 비슷한 형국이다)

영상미도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간결한 서술성도 좋았는데 국내에서 흥행하지 못 한 것에 대해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처한 상황이 극도로 불행한 두 연인들이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되었는데, 펼쳐내는 밝은 분위기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거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보통 관객들이 꽤 좋아하는 것은 그러한 것일 텐데 말이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에서는 두 연인들이 만나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자체 에피소드들이 전체 스토리의 결론보다 중요할 수도 있어보인다. 두 연인이 불행하게 새드 엔딩되는 것은 보통 누구나 예상하는 결과이고 그런 몰가치적인 현실에 살고 있는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비록 다소 판타지적일지라도 영화상에서만이라도 기분 좋은 장면들을 보고 싶어할 거라 생각된다.(특히 국내 관객 성향이 그런 것 같다)

또한 국내에서 칙칙하고 암울한 사회문제가 결말에서까지 짙게  깔아놓은 것에 대해 비록 의미있는 영화를 만들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작품성에는 득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흥행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냥 심플하게 (또는 사회문제는 아주 약하게 암시하는 정도로만 보여주고) 두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된다. 몇 년 전 박찬옥 감독의 영화 '파주'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사회문제를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택하여 심플하게 펼치는 것이 복잡하고 풍부하다 못해 넘쳐나는 컨텐츠의 바다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교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용상으로 여자 주인공 '동현'의 성격 변화가 적었던 점이 아쉬웠다. 남자 주인공 '남순'의 성격 변화는 괜찮았는데 말이다. 즉, 남순은 동현을 만나고 나서 평범한 삶에 대한 의지가 솟아나고 있다는 점이 장면과 이야기상에 표현이 되었는데 동현에게서는 그런 변화가 잘 보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또는 실제로 그런 내용이 없다면 어떤 성격 변화가 보여지는 쪽이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문뜩 오래전에 감동적으로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뽕네프의 연인들'이다.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지만 어쨌튼 영화를 좋아했던 국내 관객들은 꽤 많았다. 물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이긴 했다.

또 하나 떠오른 국내 영화는 '파이란'이었다. 침울한 분위기하며 비극적인 남녀 주인공들의 결말하며 감성적으로 비슷한 점이 느껴졌다. (파이란도 국내 영화팬들에게 작품성으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영화지만 그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다. 참고로, 언젠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좋아한 국내영화 순위 10위 안에 '파이란'이 들어있던 적도 있었다.)

한편, 남순의 동료 선배 '범노'라는 인물이 순수하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남순의 처절한 몸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비즈니스를 하는 장면에서는 그리고 비극적 결말에까지 이용해먹는 장면에서는 영화 '레옹'이 생각났다. 레옹이 살인청부로 벌어들이는 수수료를 관리하는 뚱뚱한 이탈리아 남자가 떠올랐다.

어째튼, 영화 '통증'은 개인적으로 좋은 느낌으로 감상했다. 비록 흥행은 안됐지만 좋은 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2011년 10월 28일 김곧글


ps. 요즘 영화가 많이 땡긴다. 컴퓨터 게임은 가끔 하지만 예전과 같은 흥미를 느낄 수는 없다. kpop도 종종 듣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연인에 대한 생각으로 많이 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