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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고지전 - 체제들의 전쟁에 사라지는 민초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12. 1. 22:04



종전 시점의 한국전쟁의 어떤 치열한 전장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한국전쟁의 의미, 남북 체제의 의미, 참전한 군인의 존재성, 인간의 존엄성 등등을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솔직히 재미도 있었다. 다만, 깊은 감동은 느낄 수 없었다. 상업영화가 꼭 깊은 감동까지 제공해야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정도 퀄리티의 국내 제작 영화라면 기분 좋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국내 전쟁 영화와 다소 차별화된 국내 전쟁 영화쯤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곳곳에 대중적인 웃음코드를 넣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내 느낌으로는 썩 재밌지는 않았지만 현대 보통 관객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재밌어할 수 있는 장면이라는데는 동감한다. 영화 '써니'에서도 그런 장면은 많았다. 한국처럼 크지 않은 영화 시장판에서 계속 제작하면서 살아가려면 일종의 타협의 무기일 것이다. 관객이 몰려들지 않는 실헝적이거나 고매한 예술 영화의 존재성도 확고부동하지만,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은 열정에 의해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결코 낮은 질감으로 볼 수만은 없다. 바야흐로 대중문화가 곧 주류문화이고 심지어는 보편적인 문화의 선두를 이끌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이 영화의 인물들과 이야기 구성은 지루하지 않고 재밌었다. 특히 거의 끝날 것 같은 막장 분위기에 크게 한판 터뜨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좀더 감동할 수 있는 장면이라면 어떤 암시, 생략하는 방법은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또는 대규모 막장 전투가 아니라 그것을 배경으로 조금만 보여주면서 소수 인물들의 어쩔 수 없는 치열한 혈전은 어땠을까? (그러나 역시 국내 보통 관객은 흥행 결과가 말해주는 바와 같이 화끈한 막장 전투를 좋아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비슷한 언덕에서 여러번 싸우다보니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다.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는 전쟁의 참혹한 측면이 느껴지기 보다는 그냥 화려한 전장을 시각적인 즐거움으로 관망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지 짧게 보여준 전장들을 모아놓은 (실제로 장소도 그러하고) 일종의 종합선물세트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덕에서 카메라가 수평으로 길게 트랙하는 장면은 정말 좋았는데 꼭 카메라 앞에 있는 인물이 총에 맞아 죽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 '이번에 바로 이 사람이 총에 맞겠구나' 생각했는데 정말 예상대로 맞아떨어지면서 영화에 몰입된 감정에서 퀴즈적인 감정으로 순간적으로 전이되기도 했었다.

또한, 큰 문제는 아니지만 문뜩 떠오르는 과거 명작 영화의 장면들이 있었다. 북측의 여자 저격수는 여러 관객이 알아봤듯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에 나오는 베트공 여자 저격수를 떠올렸다. 또한 그녀가 죽는 장면에서는 영화 '라인언 일병 구하기'에서 살려줬던 독일군이 나중에 미군을 죽이는데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낙동강 전투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장면을 떠올렸다.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별로였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렇게 높은 완성도는 아니었다고 생각될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최종병기 활'에서는 '상대편 절벽으로 뛰어넘기' 같은 창조적이고 신선한 명장면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명장면이 얼핏 떠오르지는 않는다. (물론 명장면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아무튼, 국내 영화 제작 현실에서 이 정도 비주얼을 만들어내기도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겨울과 여름이 교대로 나온 점도 좋았다. 그만큼 오랜 기간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였고 그런 점은 좋았다.

결론적으로, 고지전은 국내 전쟁 영화로써 괜찮게 뽑아진 영화라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어떤 이정표라든지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는 보여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만의 확연하게 들어나는 특징이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재밌게 볼 수 있는 한국전쟁 소재 국내 전쟁 영화로써 괜찮았다고 생각된다.

옥에 티라면 눈 내리는 장면은 정말 분위기 있고 멋있었는데 (개인적으로 판타지 영화, 판타지 게임에서 눈이 쌓인 산맥이 배경인 장면을 좋아한다.) 슬로우모션이 되었을 때는 'CG 눈'이라는 것이 다소 티가 났던 점이 아쉬웠다.


2011년 12월 1일 김곧글


ps. 겨울에는 특히 연말에는 밀가루 음식과 영화가 소화 잘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