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절은풍운(Overheard 2009)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8. 26. 23:43




2003년인가, 어떤 이유에선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무간도' 1편, 2편을 지금은 사라진 KBS2 토요명화에서 2주에 걸쳐 방영했다. 대부분의 영화처럼 홍보문구에 이끌려 호기심에 봤었는데 솔직히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았다. 요즘은 흔하지 않은 국내 성우의 더빙으로 인해 영화 자체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문뜩 생각날 때 몇 번을 더 봤다. 보면 볼수록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특유의 감흥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시대 아시아권 상업영화의 연출, 각본을 논할 때 결코 빼먹을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닌 작품이라 말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1편과 2편을 좋아한다.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알려지기로는 두 형제가 공동 연출을 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1편, 2편은 맥조휘 감독이 연출했고, 3편은 유위강 감독이 연출했다고 들었다. 그 맥조휘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한 2009년 작품이 절은풍운(Overheard 2009)이다. 그는 무간도 이후에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 영화는 가장 무간도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무간도와 비교해볼 때 이야기의 완결성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점이 느껴지지만 감독이 의도했던 것은 이전에 무간도에서 보여줬던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이었을 것이다. 다만, 변화를 준 그 요소가 관객의 정서적 깊이감을 북돋는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참고로 이러한 점은 이 영화의 후속작 '절청풍운2(2011년)'에서 더욱 심하게 두드러진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섬세하고 정교한 각본, 연출, 카메라시점은 혈기왕성했던 10년 전이나 요즘이나 녹슬지 않았다.


주인공 3명을 비롯 여러 인물들이 나오는데 각자 생생하게 살아있다. 같은 이유겠지만 수많은 장면과 에피소드가 있는데 각각은 유기적으로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는 대사의 단어마저 의도적으로 계획해서 썼다.(왠만한 시나리오들도 대개 그렇지만 이 감독의 시나리오는 좀더 촘촘히 정교하게 유효적절하게 연결되어있다고 보여진다) 단지 그 장면에서 중요한 대사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관객에게 낯설지 않도록 미리 준비시켜주는 단어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나요명'이 '여비서'에게 주가관련 내용을 비밀이라며 슬쩍 알려주고 나가면서 "...요트에 가서..."라는 대화를 한두마디 한다. 이 말은 이 장면에서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다. 물론 분위기를 위해서, 매끄러운 장면 전환을 위해서 쓰여졌다고 봐도 틀리지는 않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그렇게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장면이 관객도 주목할 수 있는 긴장감이 있고 이후에 몇 번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므로 한가지 요소를 지능적으로 추가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나요명의 '요트'라는 장소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나요명이 실질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높은 악당인 화업그룹회장 '마지화'에게 살인청부 당하려는 순간에 주인공 3명이 '안좋은 일에 깊이 계입(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이라는 첫단추를 끊는 로케이션이기 때문이다. 그 앞 장면에서도 그 이후 장면에서도 요트는 나오지 않는다. 만약, 어느 순간 생뚱맞게 요트 장면이 나오고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면 관객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그렇게 만들어도 틀리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섬세하고 정교하고 깊이감 있는 연출은 아니고 명작이 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 그래서 감독은 "...요트에 가서..."라는 대사를 미리 깔아놓은 것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요트 장면을 그 앞에 짧게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대사로 하느냐 장면으로 하느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서 감독은 대사를 선택한 것이다. 아마도 관객의 집중력 분산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 같다. 그 앞부분에서 나요명이 요트에서 여가를 보내는 장면은 특별한 긴장감도 없고 그때까지 주인공들과 연결될 요소도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은 어둡고 음침한 뒷골목의 생쥐들을 보여준다. 주로 먹을 것을 찾아먹고 있다. 그 중에 카메라가 서서히 뒤로 물러나면서 생쥐 한 마리가 힘차게 달려가 먹이를 먹는데 덫이 작동되어 팔딱거리는 꼬리만 보여준다. 그 카메라가 서서히 상승하면서 주인공들이 머물고있는 대도시 빌딩을 보여준다. 그리고 '절은풍운' 타이틀이 뜬다. 생쥐는 손대면 안되는 것에 손을 댓기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의 결말을 감잡을 수 있게 해주는 짧은 오프닝 시퀀스라고 볼 수 있다.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음악과 함께 '상업범죄수사과'에 소속된 세 명의 경찰관이 은밀히 나요명 사무실에 잠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한다. 영화니까 당연히 들통날 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고 주인공들이 초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슬기롭게 헤쳐나간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에서 다른 장면, 에피소드로 연결시켜주는 소품을 슬쩍 보여준다. 라이터다. 이 라이터와 연결되어진다고 볼 수 있는 장면, 에피소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감독의 정교하고 꼼꼼한 각본, 연출 실력을 알아볼 수 있다.

주인공은 작게 구분하면 한 명이긴 하지만 넓게 구분해서 세 명으로 볼 수 있다. 조니, 캘빈, 맥스.


도청장비를 설치할 때 캘빈이 라이터를 슬쩍 주머니에 넣는데, 그것을 조니가 우연히 보게 되고 잠복근부하는 오피스로 무사히 돌아와서 옥상에 가서 담배를 피우게 되었을 때 조니가 라이터에 관해서 넌지시 추궁한다. 캘빈은 라이터를 꺼내서 보여주며 그 속에 누군가 도청장치를 해놓았기에 가져왔다고 대답한다. 이 장면에서 조니는 청렴결백한 경력의 경찰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라이터는 아니고 세 사람이 오피스에서 공용으로 쓰는 라이터에도 도청장비를 은밀히 설치해놓았는데 그것에 대한 설명을 굳이 따로 하지 않아도 관객은 그에 따른 두세 개 장면을 이해할 수 있다. 글로 설명하자니 복잡해지는데 아무튼 이것은 이 '영화의 세련미'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세련미가 있다.

 
이 영화의 단점은 너무 무간도를 닮지 않으려고 의도했다가 균형의 감각을 놓친 것 같다. 결말부분에 다소 늘어졌고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 직전까지 괜찮았는데 말이다. 즉, 위선자 '마지화'의 최후를 그리는데 있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화'의 오른팔은 두목을 배신하고, 조니가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대가로 준 돈도 두둑히 챙기고, 마지화를 체포할 때 경찰에 협조했기 때문인지 이 자가 체포되는 장면은 없다. 그에 대해 영화가 설명해야할 당위성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불의가 묵인되는 것이라 불편한 마음이 든다. 영화에서 간접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1급 살인청부자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이솝우화식으로 말해보자면, 꼬박꼬박 알을 잘 낳는 거위가 있어서 평범한 삶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욕심을 과하게 부려 거위의 배를 가르게되고 결국 굶어죽는다는(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들이 잘못된 욕심을 부려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교훈적이지만 비극적인 이야기, 국내관객이 선호하는 주제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현재 중국계 영화감독 중에서 맥조휘 감독의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그 전에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꽤 좋아했었다). 그가 영화를 가장 잘 만든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의 영화 스타일이 매우 내 입맛에 맞는다는 얘기다. 영화 '이니셜 D'를 봤을 때도 그 어떤 풋풋하고 아련한 정서를 깊게 느낄 수 있었다.(평소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없는 편이다. 이 영화의 느낌이 매우 좋았다는 얘기다.)


2012년 8월 26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