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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헝거게임 (The Hunger Game) : 판엠의 불꽃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8. 7. 22:45




평범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20대의 감수성으로 펼쳐진 SF 세계관에 기존 체계의 룰을 깨는 영웅, 그것도 여전사 영웅의 전설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무시 하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근에 국내에서 만들어져서 대박을 친 영화 중에 이런 류의 줄거리를 따르는 작품은 없었다는 것에 근거해서 말한 것뿐이다. 이것도 문화, 관습, 집단 무의식 등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뿐 이래야 좋다 저래야 좋다는 판단은 각자 개인의 몫이다.

트와일라이트 1편을 처음 봤을 때 현대적 감수성으로 20대 여성(엄밀히 따지면 10대 후반이지만)의 성장기를 잘 표현한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헝거게임은 또 하나의 여자 성장기를 표현한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두 작품의 차이점이 있다면 트와일라이트의 여주인공 벨라는 멋진 남자에게 깊은 사랑을 받는 쪽이고, 헝거 게임의 여주인공 캣니스는 남자들이 생각하는 멋진 여자(여신)으로 추앙받는 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트와일라이트는 전원적인 분위기라면 헝거 게임은 치열한 야전의 분위기다. 그 외에도 서로 비슷한 점보다는 상반되는 점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두 작품이 전미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 이채롭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마치 어느 시점에서 최고를 달리는 양대산맥의 스타는 비슷하기 보다는 다른 점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뚱뚱이와 홀쭉이, 장신과 단신(의미가 다소 다르지만 돈키호테와 산초, 셜록홈즈와 왓슨)은 양대산맥이 될 수 있지만, 뚱뚱이 형제, 홀쭉이 형제는 둘 중 한 명만 존재감의 빛을 낼 가능성이 놓다. 어쨌튼 두 작품 모두 잘 만들어졌다.

헝거게임 이야기의 뿌리를 먼 과거에서 찾아보자면 로마제국일 것이다. 반란을 했다가 헝거 게임에 끌려가는 굴욕을 당하는 12개 구역은 로마가 정복한 이민족의 땅에 비유될 수 있다. 미국의 지배계층의 조상은 유럽인이고 그들은 대개 게르만족 계열이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로마제국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고 수많은 전투와 세월이 흘러간 후에 게르만족은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즉, 미국 조상들의 역사에는 반역,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참고로, '스타워즈 6편'에서도 반란군이 제국군을 이긴다). 그렇기 때문에 헝거게임을 대하는 미국인과 한국인은 무의식적으로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흥행의 차이가 큰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또한 트와일라이트가 국내에서 좀더 흥행을 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여주인공 캣니스는 모성애가 풍부하고 억척스럽고 건조한 여성 타입이다. 집안에서는 장녀, 여자들의 무리 중에서 어떤 무게감 있고 구심점이 되는 친구, 여고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는 남성적인 성격의 여고생, 아버지에게서 강렬한 남성적 영감을 얻지 못하는 자식들이 의지하고 따르게 되는 어머니상 또는 누나상, 페미니스트들의 질투심을 받는(왜냐하면 남자들 사이에서 대등하게 존재감의 빛을 발하면서도 남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에) 여성 이미지이다. 관객은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섹시함도 없고 여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점점 캣니스라는 인물에 빠져들게 된다. 인공 숲에서의 목숨을 건 게임, 헝거게임을 하면서 더욱 돋보이게 된다.

이 영화 또는 소설의 매력은 캣니스라는 독보적인 여주인공, 그리고 미국인들이(서구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는 기존의 어떤 울타리를 뛰어넘는 이야기(여기서는 각각의 구역이 당하는 부당한 헝거게임 전통을 깨부수는 것, 나아가서 판엠이라는 제국을 위협하는 것)에 있다고 보인다.

사실, 헝거게임 자체는 생각했던 것보다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이 강해서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끝부분에 홀로그래픽처럼 만들어진 멧돼지 같은 괴물이 어떻게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지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화 기술적으로 쟁쟁한 감독과 스텝들이 만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균형미와 절제미와 세련미가 돋보였다. 판타지 SF를 진정성과 사실성을 느껴지도록 만든 연출력이 좋았다. 모든 배우들도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했다. 당연히 주인공 캣니스는 자신의 의미심장한 매력을 잘 표현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미술이었다. 질척하고 칙칙한 탄광촌의 숲, 화려하고 세련된 판엠의 건축물, 실내 인테리어, 소품,... 특히 의상이 멋들어져 보였다. SF 영화에서 새로운 비주얼,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될 정도다.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비주얼 컨셉이 이후에 수많은 SF 영화, 만화, 게임에 영향을 준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정도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제 5 원소'의 미술(건물, 인테리어, 의상, 소품)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덜 다듬어지고 과하고 조화롭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어떤 측면에선 이런 면을 매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헝거게임의 미술은 신선하고 화려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조화로웠고 세련미마저 느낄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2012년 아카데미 미술상 또는 의상상을 받아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당연히 다음 시리즈가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엄청나게 흥행했던 판타지 SF 현대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중에서 가장 빠져들 만 했다. 가장 재밌었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관과 인물들에 가장 매료되었다는 뜻이다. 해리포터 시리즈, 트와일라이트 보다 이 영화가 좀 더 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2012년 8월 6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