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후궁: 제왕의 첩 (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8. 5. 02:48




여러 홍보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예상한 영화와 다소 달랐다. 에로틱적인 장면이 한국 영화라는 관점에서 괜찮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가 잔혹내방정권싸움이었기에 고려될 수 있는 점이었다. 전체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한 마리를 겨우 잡은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도 제작자나 감독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관객들이 홀딱 반할 정도의 에로틱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뭔가 차별된 에로틱을 만들어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 그리고 감상 후 남겨질 수 있는 의미를 주고자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차라리 재미라는 측면을 강조했더라면, 라는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 된 것 같다. 그래도 상업영화로서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은 되었으니 점잖은 보통 관객을 어느 정도 사로잡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사극이 드라마의 기수라고 말할 수도 있는 시대, TV에서는 다룰 수 없는 강렬한 에로틱을 정통 사극에 접목한다는 기획 의도, 여기까지는 신선한 기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에로틱 관련 부분만 따지자면 괜찮았다. 좀더 좋은 장면을 만들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비록 야동에 쩔어 사는 오타쿠같은 관객이 보면 실소를 머금을 정도로 밋밋할지 몰라도, 보편적으로 정상적인 국내 관객이 영화관에 떳떳이 들어가서 기분좋게 감상할 수 있는 정도의 괜찮은 에로틱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에로틱과 동등하게 아니 좀더 비중있게 다뤄진 잔혹하고 비장한 사극 관련 부분만을 따지자면, 비록 영화의 연출과 영상미의 땟깔은 좋았지만 이야기 자체가 현대적이지 못하고 과거의 익숙한 패턴을 답습하고 있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런 정도의 사극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하게 볼 수 있다. 좋게 말하면 보편성이지만, 그 보편성을 현대적으로 맛깔나게 재해석하는 뭔가가 부족했던 것 같다.        


  

화연(조여정 분)이 끝부분에 가서 복수의 야욕, 권력의 탐욕을 갑작스럽게 들어내는 게, 이런 이야기가 많았기에 낯설지는 않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차근차근 화연의 내면을 관객에게 야금야금 제시해서 감정이입되도록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는 얘기다. 반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생뚱맞은 느낌이 강했다. 차라리 중간부터 그녀가 아버지의 복수와 권력에 불굴의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관객이 빠져들만큼 보여줬어야하는데 그런 점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관객이 공감하며 재미에 빠져들 정도는 아니었다.


후반부에 마침내 화연이 왕과의 에로틱한 장면에서 마치 샤론 스톤이 얼음 송곳으로 할 뻔 했던 흉직한 짓을 비녀로 잔혹하게 저지르는 장면을 보면서 한 사람의 관객의 입장에서 "이건 뭐지? 굳이 왜 저렇게 까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생뚱맞은 감정이 떠올랐다. 분명히 정성을 들인 막판 에로틱한 장면에서 평이하지 않은 뭔가의 사건을 보여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것이 그런 잔혹한 장면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전체적으로 묵직하고 진지하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잔혹한 유럽 문학, 영화의 느낌이 한국적으로 완전히 여과되지 못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런 정도로 에로틱, 잔혹, 역사가 적당히 섞인 프랑스 만화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 혼합이 나빴다는 얘기가 아니라 겉으로는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관객이 인물들의 내적으로 스며들어 감정이입되고 공감하고 빠져드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는 얘기다. 영화의 땟깔은 고급스럽고 좋았지만 이야기적으로 이질감과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이 영화의 장점은 영화적인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좋았다. 에로틱한 장면이 홍보를 보고 기대한 관객에게 만족감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적은 분량으로 농도 짙게 영상미있게 만든 것은 분명히 좋았다. 아쉬운 점은 이야기에서 주인공 화연에 대한 집중도와 몰입도가 부족했던 것 같다. 좀더 입체적으로 다이나믹하게 표현했었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이다. 한편, 한국적으로 에로틱과 사극을 진지하고 진정성있게 접목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은 칭찬받을만 하다. 이 장르에서 아직은 한국적인 고전이 나타나지 않은 것 같고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남아있는 것 같다.

  


2012년 8월 5일 김곧글(Kim Godgul)






'영화감상글(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헝거게임 (The Hunger Game) : 판엠의 불꽃  (0) 2012.08.07
도쿄공원(2011)  (0) 2012.08.05
송곳니 (Dogtooth, 2009)  (0) 2012.07.30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0) 2012.07.28
돈의 맛(2012)  (0) 2012.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