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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돈의 맛(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6. 23. 20:47



소재적으로는 최근 한국 영화 중에서 다소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고, 이야기적으로는 전형적인 것과 독특한 것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소재가 파격적이라는 것은 육체적 사랑 표현 수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같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알 수도 없는 상위 1% 종족(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 황금연못에서 물놀이하는 종족)의 안방에 관한 비교적 적나라한 표현이 파격적이었다는 뜻이다. 모든 1% 종족이 이 영화에서처럼 산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내면, 무의식은 어느 정도 닮아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지금까지 이런 성격의 영화, 소설,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모르게 학습된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인데 직접 볼 수는 없어도 대충 윤곽을 감지할 수 있다. '크리스찬 베일'의 '아메리칸 사이코(2001)'도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상위 1% 종족이 이 영화 속 인물들처럼 행동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모르긴해도 그들의 내면의 커튼 속의 의식, 무의식은 영화의 인물과 닮았을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의식, 무의식이 활화산의 용암처럼 팔팔 끓어오르는데, 이들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상위 1% 종족의 생각 속은 활화산의 마그마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날아가서 태우고 싶은 것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무소불위의 능력을 일평생 살아봐도 근처에도 갈 수 없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설명하기 모호한 깊은 곳의 욕망에 이끌려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영화, 소설, 드라마, 게임을 찾는다. 이것을 즐기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위로하고 정화한다. 대개 절대왕권을 휘두르는 사극이 뭇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 장르 온라인 게임 속에 빠져드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의 여러 욕망 중에 기본적인 생리적 욕망(식욕, 수면욕, 자기보호욕, 성욕) 외에 초고도 문명으로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은 2차적 욕망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황금욕과 권력욕일 것이다. 인간에게 황금욕과 권력욕이 없었다면 국가도 대도시도 인터넷도 심지어는 스마트폰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 또한 훨씬 줄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오손도손 모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갔을 것이다. 이 영화는 황금과 권력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껌처럼 씹고 뱉을 수 있는 상위 1% 종족에 대한 비평적 주제의식을 표현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좋았던 점은 우선 영상미다. 너무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신선한 느낌의 카메라 움직임과 컷이 검댕으로 뒤덮힌 얼음동굴 궁전 같은 1% 저택과 인물들의 심리를 미려하게 표현했다.


'실제 저런 사람일지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주영작(김강우 분)은 남자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보통 사람을 대표해서 1% 종족의 치부를 엿보는 관찰자적 입장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럴 경우에 실제 주인공은 -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주인공은 사라 코너 또는 존 코너이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무소불위 파괴력을 지닌 터미네이터가 주인공인 것처럼 - 백금옥(윤여정 분)일 것이다. 유황 연못에 가시덩쿨이 사방에 깔린 숲속 한가운데 우뚝 솟은 얼음궁전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최고권력자, 여왕 백금옥이라는 인물의 치부를 엿보면서 1% 종족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관객에게 흥미롭게 전달하며 감독의 메시지를 담았다. 그 메시지는 '황금과 권력을 뒤쫓다 좀비가 되는 것보다 현재 자신의 소소한 삶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가치있는 일이다' 쯤 될 것이다.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의 영향이 적지 않았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1% 종족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에서 백금옥의 맏딸 윤나미(김효진 분)과 아들 윤철(온주완 분)을 보면 정말 그쪽 세계 사람들은 저런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선입관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영화가 흡인력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우 김강우는 수려한 외모와 남성미 때문에 제2의 ......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업계에서 좌판 깔고 관상본다는 사람들이 칭찬했을 법해 보인다. 그러나 필모그라피의 작품 수에 비하면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신들린 연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서 어깨에 힘이 빠진 인물 강정호의 연기가 좋았고 이번 영화의 연기도 충분히 제몫을 해냈다. 솔직히 연기 테크닉적으로는 충분한 것 같다. 날을 갈만큼 갈았다. 앞으로는 어떻게 관객의 심금을 움직이는 연기를 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너무 근육질의 남성미 인물에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그것도 배우의 개성이고 취향이니까 꼭 반대방향으로 해야 좋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김효진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실제 그쪽 세계 1%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손색이 없었다. 향후의 연기 변화와 성장이 기대되는 배우다.


무엇보다 뜻밖의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몇 달 전에 '완득이'에서 완득이 어머니를 연기한 이자스민 배우가 인상적이었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에바'를 연기한 '마우이 테일러'가 인상적이었다. 초반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존재감있는 인물로 결론지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이야기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크게 아쉽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세부적인 측면이고 감독이 여러 가지 방향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처럼 보여지는 측면도 있어서 딱히 비판 받을 정도의 오점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주영작은 영화의 제목처럼 또는 영화가 전달하는 주제의식이 말하는 '돈의 맛'을 관객이 좀더 깊이 감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게 맛보지 못 했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쥐게 되고 그것으로 야기되는 주영작 개인의 변화가 다소 미약했던 것 같다. 좀더 내면적인 갈등 - 백금옥과 윤회장과 윤나미의 뜻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관객이 감정이입할만한 갈등의 관점에서 다소 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결국 영화가 결론에 이르렀을 때 관객이 느끼는 감동의 깊이를 얕게 만들었다.


물론, 그런식으로 했다면 전형적이고 진부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 약점도 없지는 않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예를 들면, 순진한 사람이 감옥에 수감되는 것), 생과사의 여정을 겪으면서 사람 자체가 변하는 이야기 말이다.


주영작은 본래 소시민적인 작은 영웅이었고 조금 흔들렸지만 영화의 끝에 이르러서도 성격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이 밋밋한 변화가 아쉬웠다. 그러나 감독은 이렇게 만들어서 의도적으로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 패턴을 탈피하려고 시도했는지도 모르다. 아무튼 주영작의 인격의 굴곡이 더 컸어야 영화의 보편적인 감동이 깊었을 것 같다.


또한 영화의 끝이 뭔가 아쉬웠다. 에바가 주검이 되어서 자식을 만나는 장면은 훨씬 앞에 나오고 상영시간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주영작과 윤나미가 부부가 되어 백금옥과 윤철에게 타격을 주는 반격?을 하고  그 얼음궁전을 출가하여 자신들만의(주영작과 윤나미) 녹색 궁전을 만들어 독립하는 장면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역시 전형적인 측면이 있지만 미완의 느낌은 덜했을 것이고 보통 관객은 일종의 보편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괜찮게 잘 만든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이런 성격의 영화를 만들어낼 현대 한국 감독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다. 대박은 어려운 컨셉과 소재지만 확실히 한국 영화사에 강한 존재감의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자신만의 영역을 차지한 것은 분명하다. 홍상수 감독이 자신만의 색깔로 여러 편을 만들듯이 임상수 감독도 자신만의 이러한 냉소적인 색깔로 여러 편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좋은 영화란 밝은 내용을 담고 있느냐,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느냐, 유익한 메시지를 전달하느냐,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의 영상물은 교양프로, 뉴스, 다큐를 비롯 다양하게 많다. 영화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잘할 때 관객을 끌어다앉힐 수 있다. 인간과 사회의 깊은 내면을 어떻게 감동과 재미와 여운을 담아서 통일된 하나의 선물상자에 넣어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2012년 6월 23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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