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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은교 (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6. 2. 19:15




소설을 영화화했을 때 대개 사람들은 다르게 느끼기 마련인데, 소설을 먼저 읽었느냐 그렇지 안냐에 따라 영화가 확연히 다르게 감상된다. 매체의 특성상 소설만의 장단점이 있고 영화만의 장단점이 있는데, 내 경우에 '은교' 원작소설을 안 읽어봐서 영화와 비교할 수는 없고 영화만을 놓고 봤을 때 잘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섬세하게 비교적 간결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작은 부분에 있어서 다소 아쉬운 점들이 눈에 띄기도했다. 현대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관습을 깬 주인공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줄거리가 보편적 정서를 위해서는 옳은 선택이었겠지만, 현시대의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대중영화로 완공될 수밖에 없는 멋진 육면체 빌딩이어서 조금 아쉬웠다.


길을 걷다가 문뜩 눈에 띄는 건축물을 보고 '하! 근사하다. 멋지다'라고 느껴지는 것이 현재 '은교' 영화라면, 내가 욕심을 내서 바랬던 것은, 그 건축물 앞에서 말문을 잃고 굳은 입술을 가까스로 움직여 '감동적이다!'라고 감탄할 수 있는 작품까지는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군계일학으로 잘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 전체적으로 설득력이 있고 재미도 있고 감정의 요동도 있고 은근히 제시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좋았다.



원작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영화 초반에 할아버지 이적요(박해일 분) 인물에게 관객이 몰입할만한 소재를 제시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부인에 대한 사랑은 어느 정도였는지, 자식은 있는지, 젊은시절 애정관은 어땠는지... 등등 사랑 관련 과거 정보를 짧게나마 제시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이적요가 거의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여고생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성격(살아온 세월의 결과)를 관객이 확실히 공감하며 그의 속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설정하지 못한 것 같다. 지금 같은 경우는 단지 외부와 담을 쌓고 지내는 어떤 노인이 오랜만에 파릇파릇하고 생생한 여자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빠져들어가는 통속적인 것처럼 보여질 여지가 있어 보였다.


노인들도 성적 욕망이 없지 않지만 통제력은 젊은이들보다 앞서고 만약 결혼생활이 순탄지 않았다면 또는 부인과 잉꼬부부 사이였다면 한은교(김고은 분)에 대한 본능적인 또는 자신만의 독특한 반작용이 전혀 달라졌을테고 그런 것에 관객이 충분히 젖어들게 풀어갔다면 훨씬 깊이있고 좋았을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적요의 과거 애정관이 어땠는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여고생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한은교에게 외형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부족한 점이 없었지만,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짧은 정보만을 제시하는 것도 간결하고 좋았지만, '기왕이면...'라는 생각이 든 것은 한은교가 학교에서 학우들과 어떻게 지내는지(외톨이인지, 주변 친구들이 유치해서 혼자 공상하며 지내는 4차원 학생인지, 아이돌과 꽃미남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지 등등)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평소 얼마나 선머슴처럼 지내는지 그리고 연애나 사랑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의 모습을 한은교와 대비되는 관점에서 보여줬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한은교가 서지우(김무열 분)에게 정신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육체적인 끌림에 의한 충동적인 사랑을 하는 것에 대한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방향에서 이해 또는 공감을 돕는 소재로서의 역할도 하게됐을 것이다.


한은교는 이적요와 서지우가 입체적인 인물인 것에 비하면 현저하게 평면적이었다. 영화가 워낙에 내적이고 섬세한 영화인만큼 한은교의 육체적인 순수한 아름다움 이외에 - 이적요와 한은교의 사랑이 핵심 소재이기 때문에라도 - 한은교를 좀더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면 영화가 더욱 깊은 감동이었을 것이다. 현재는 마냥 순수하고 풋풋한 여고생으로만 비춰질 뿐, 왜 이웃집 할아버지 이적요에게 그렇게까지 빠져들게 됐는지 그것에 대해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인색한 또는 무덤덤한 연출 또는 시나리오였던 것 같다.



서지우의 경우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실체와 관련해서 혼란스러워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이적요 집에서 스승한테 직접 입으로 그 내적 갈등을 털어놓은 장면도 나쁘지 않지만, 그 전에 관객이 그런 것에 관해 은근히 엿볼 수 있는 사회생활에서의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란 얘기다. 예를 들어, 문학을 하는 동료들이 뒷담화를 하는 것을 살짝 듣고도 애써 태연하게 외면하거나, 악의적인 악플에 자신도 모르게 과민반응을 해서 주변사람을 놀라게 한다든가, 베스트셀러로 벌어들인 떼돈으로 작가스럽지 않은 것에 거액을 쓴다든가(현재 영화에서는 고급 승용차를 샀지만 고급 골프를 치고 고급 주점을 간다든가) 하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서지우의 말대로 이적요 자신의 체면때문에 통속연애소설을 제자인 서지우의 이름으로 출판하게 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돈에 지배되는 세상과 대중문학을 한단계 내려다보고 싶은 욕망도 있을 수 있고, 정말 늙은 자신을 오래동안 수발하며 존경해주는 제자에게 섭섭하지 않도록 인간적인 도리를 해야하겠다는 생각에서 선물을 주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한 사회에서는 그 원인이 흑인지 백인지를 따지기보다는 그 결과물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사회적인 정의인지 불의인지를 따지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비난을 받아야할 대상이다. 작가에게 예술성과 독창성(작은 의미로는 아이덴터티)은 재벌에게 있어서 현금과 주식 같은 존재감이기 때문에 그런 비난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결말은 스승이 질투심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트러져 제자를 살인시도하게 되는데, 신은(작가는) 너무 일방적으로 스승에게 죄를 짊어지게 하는 것 같다고 판단했는지 살인은 미수에 그치도록 만들고, 그대신 하늘에게 심판의 칼자루를 넘겨줘서 오만감에 빠져있는 제자를 죽음으로 이끔으로써 (보편적 정서 속에서 살아가는 대중관객들에게 이적요의 파격적인 사랑에 작은 연민을 구하며) 작가 자신의 의지대로 스승과 제자에게 조금은 다르지만 사형선고를 내린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자식이 남에게 혼나는 것이 싫어서 자신이 직접 남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혼줄내는 부모의 메라고 말할 수 있다. 스승 이적요는 내방하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집안에 틀어박혀 술에 빠져서 황혼의 저승사자를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한다. 즉, 독방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은교와 슬픈 면회를 하고 영원한 이별을 한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지만 작가는 노인 이적요가 풋풋하고 순수한 여고생과 진한 사랑에 빠진 댓가로 고통스런 형벌을 받아야한다는 관점으로 이야기의 결말을 맺은 것 같다(조금 상상의 날개를 펴서 파격적인 결말로 썼다면 자칫 마광수 교수처럼 순수문학의 아늑한 울타리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탕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보편성을 뛰어넘는 것에 대해서 신의 응징을 받는 영웅신화의 패턴을 따르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것만으로는 뭔가 심심하고 평이한 느낌이 들어서 제자를 질투심으로 살인시도하는 죄를 추가해서 이적요에게 가해진 형벌에 설득력을 추가하고 이것은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는데 기여한다.



영화적으로 좀더 섬세하고 세밀한 각색과 연출이 조금 아쉽지만, 삶과 사랑에 대한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은은히 베어있고 감상하는 사람이 조금씩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겨져 있고 비록 파격적인 소재이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감상하며 감정의 요동을 경험할 수 있는 보편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좋은 작품은 반드시 보편성을 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정성과 폭력성을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고 심오한 측면이 있기때문에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노릇이다.



2012년 6월 2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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