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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록키(Rocky, 1976) - 숨겨놓은 다른 메시지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8. 20. 19:06




어떤 영화 정보 프로에서 사운드트랙 관련 코너에 소개된 것을 얼핏 보고 문뜩 다시 감상했다. 록키(Rocky, 1976) 영화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진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먼 옛날 텔레비전의 '주말의명화' 또는 '토요명화'에서 일 것이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다지 재미없게 봤던 기억이 난다. 거의 온 가족이 14인치 텔레비전 앞에 모여 봤는데 늦은 밤이었기 때문인지 중간에 졸았던 기억도 난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각의 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달리면서 훈련하는 장면, 막판에 생생한 권투시합 장면은 그 당시에는 굉장히 감동적인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늘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다시 본 소감,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히 상승하는 드라마적인 전개가 인상적이다. 보통 장르 영화, 상업 영화 기승전결 패턴이 아닌 것이, 이런 측면에서 예술 영화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막판에 생생한 권투시합장면을 빼면, 나머지 이야기는 척박한 빈민가 환경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진실되게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30대 초 건달의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명불허전을 공인하는 만큼, 주인공 '록키 발보아'라는 인물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명언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인생역전 사건을 통해 보편적이고 감상적인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오늘 이 영화를 차분히 다시 보면서 그 전에는 못 봤던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개인적인 상상력의 날갯짓일 수도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동의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익히 알려져 있는 록키 영화의 감동적인 메시지가 핵심은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호두를 까면 그 안에 단단한 껍질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말랑말랑한 속살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무명 복서 록키가 왜 갑자기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 대전을 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결코 순수하거나 감동적인 계기는 아니었다.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가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게 자신의 위상과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일종의 프로 스포츠 흥행 비즈니스적인 시합이었다. 원래 아폴로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도전자와 대전하려고 했지만 그가 손가락 부상으로 시합을 치를 수 없었고 이미 엄청난 광고비가 투자된 상태에서 시합을 무기한 연기할 수도 없고 적당한 다른 선수를 찾을 수도 없던 진퇴양난에 빠져있을 때, (영화적이게도) 아폴로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서 미국 200주년 건국기념이라는 의미 있는 명분을 내세워 세계 챔피언이 일약 무명 복서와 시합을 하는 것을 추진하게 되고 그것은 누구라도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꿈같은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며 감동과 흥행을 이끌어내는 흥미진진한 프로 스포츠 흥행 이벤트이고, 여기에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은 아니겠지만 행운의 여신이 주인공 록키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이 영화에 숨겨져서 제시되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행운의 여신은 열심히 살아가는 성실한 슬럼가 출신 젊은이 록키를 선택했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수많은 대중들이 열광하고 감동하는 프로 스포츠의 순수하지 못한 이면을 비판하는 측면이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특이한 이벤트성 권투 시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흥행 비즈니스적인 측면으로 면밀히 보여주고 있다. 2012년 지금 시대에는 대중들도 프로 스포츠의 흥행 비즈니스에 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지만, 흑백 텔레비전이 널리 사용되었던 1976년 당시에는 그렇게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인식거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참신한 현대 문명 비판이었을 거란 얘기다.

또한 이 영화에는 좀 더 중요한 미국 현대 문명 비판 의식을 숨겨놓고 있다. 이런 내용까지 시나리오를 직접 쓴 실베스터 스탤론의 머리에서 나왔는지는 정확히 확신할 수 없다. 원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였으니 전혀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정말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면 굉장한 시나리오 작가에 등단되어져야 할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는 다소 일반적인 관점에서 상상해보도록 한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자전적인 스포츠 드라마를 감동적이게 썼다는 정도로 말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1976년을 생각해보자. 요즘처럼 정보화 시대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영화판의 대부분에서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하나도 수정하지 않고 수십억 원 쏟아 부어서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1976년의 영화판이라면 온전히 자신의 이름이 올라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였을 것이다. 아마도 록키의 거의 전체적인 줄거리, 와꾸, 드라마적인 에피소드들은 실베스터 스탤론의 자전적인 것 그대로 들어갔을 것이다. 즉, 그의 창작품이라는 얘기다. 그 순수한 감동의 스포츠 드라마가 맘에 들어서 제작자(아마도 흥행의 귀재)는 그의 시나리오를 구입하고 계약을 하고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여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말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제작자는 영화 속에 깊이감을 더하기 위해, 당시에 명작 영화에는 거의 들어가기 마련인 현대 문명 비판 의식을 전문작가를 보조작가로 붙여서 요즘으로 말하면 소위 '윤색'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윤색의 대부분은 록키의 자전적인 드라마 영역이 아니라, 프로 스포츠의 순수하지 못한 흥행 비즈니스 측면 그리고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혹독하게 후유증을 앓고 있는 미국 현대 문명 사회를 비판하는 영역이었을 것이다.


록키 영화를 오늘 다시 보면서 새롭게 보였던 것은 누구나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다보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의 건강한 메시지가 아니라(그런 메시지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 세계의 최고 챔피언 국가라고 자부하던 미국이 마치 스포츠의 순수정신과는 동떨어진 - 미국사회가 대외적으로는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는 - 프로 스포츠 흥행 비즈니스처럼 세계의 질서를 잡으려는 범 지구 집행자를 자처하며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혹독하게 패전하고, 그 전쟁의 어두운 정치적 속내를 깨닫게 된 1970년대 미국 세대(직간접적으로 월남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가 느끼는 현대 미국 사회를 되돌아보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된다. 록키 영화는 월남전으로 패배감에 빠져있는 미국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감동의 아메리칸 드림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다." 아마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바뀐 것 같다. 원래 1편을 제작할 때는 의미심장한 미국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도 넣었지만, 개봉 후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전 세계에서 초대박을 내자 대중들이 원하는 대로 시리즈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10에 9의 영화 제작사가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숨겨진 메시지는 결코 밝고 건강한 희망의 메시지는 아니었다고 필자가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다. 미국 건국 200주년 특별 권투 시합이라는 것은 매우 강력하게 미국 자체와 깊게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게다가 그 시합을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은 ‘아폴로 크리드’라는 헤비급 챔피언이다. 그는 시합 당일에 마치 무도회에 온 것처럼 화려하게 등장하는데 그의 코스플레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다. 이것은 미국 자체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더욱 돈독히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미국을 상징하는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Apollo Creed)의 이름 자체이다. 해석하면 '법과 질서의 신의 사도'쯤 될 것이다. 전 세계의 질서를 수호하려는 그 당시의 미국, 월남전을 주도한 미국을 상징한다. "그럼, 왜 백인이 아니고 흑인이지? 미국을 건국하고 미국의 핵심 지도층은 거의 백인이잖아." 라는 혹자의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 아폴로가 흑인인 이유는 월남전에는 백인보다 흑인이 훨씬 많이 참전해서 (특히 보병) 백인보다 몇 배나 많은 인원이 전사했다. 그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록키는? 록키의 풀네임(fullname)은 영화에서도 발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록키 발보아(Rocky Balboa)이다. 여기서 Balboa라는 단어를 사전검색해보면 알겠지만 '16세기초 태평양을 발견한 최초의 유럽인, 스페인 탐험가'라고 나온다. 즉, 흔하지 않은 이름, 발보아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월남전을 치르기 위해 미국이 진군한 해상로 태평양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고, 또한 '태평양에 면접한 대표적인 지역, 아시아에 사는 완고한(Rocky, 표정이 미국인처럼 풍부하게 않은 편이다) 사람들' 즉 베트남을 가리킨다. 추가로, Balboa의 B와 Vietnam의 V는 비슷한 발음이다. 스페인어에서는 알파벳의 B, V의 발음이 똑같이 [b] 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수많은 백인들 중에서 어느 정도 왕따에 속한다고 치부될 수도 있는 백인 이주민에 속하는 이탈리아인 록키는 베트남사람을 상징한다. 영화의 막판 권투 시합 장면은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을 상징한다. 권투 시합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생각해보면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심판들은 아폴로의 아슬아슬한 판정승을 판정하지만 관중들의 관심은 거기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서너 라운드도 못 가서 KO 당할 것으로 예상했던 록키의 끈질긴 사투에 감동한 것이다. 비록 록키가 이기지는 못 했지만, 세계 챔피언 아폴로가 한낮 무명 복서 록키에게 거의 패배할 수도 있을 정도로 혹독하게 당했다는 점이 대중들의 마음을 들썩인 것이다. 이것은 실재로 세계 최강 미국이 후진국 베트남에게 혹독하게 당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월남전의 결과와 똑같다. 베트남이 미국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월등히 약자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견뎌내고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사실 이 영화의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진정한 메시지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이것일 것이다)


록키가 베트남사람을 상징한다는 또 다른 요소으로는 그가 거북이를 애지중지 기른다는 점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유명한 호안 키엠(환검호) 호수의 전설에서 유명한 거북 신령이 등장한다. 15세기에 중국 송나라가 침략했을 때 레오이 왕에게 이 호수에서 신령한 거북이 나타나 보검을 줘서 중국을 물리쳤다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그래서 거북은 베트남의 독립의 상징으로 떠받들여지는 동물이라고 한다. 대개 국가의 권력과 권위의 상징으로 왕관, 보석, 반지, 의복 등이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신령한 거북이 전해준 보검이라고 한다.


그리고 간접적인 요소로 록키가 아드리안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나가면서 '칠면조는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때, 아드리안은 '그래도 추수감사절인데요', 라고 말하니까, 록키는 자신한테는 '그저 목요일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바로 앞 장면에서 록키는 아드리안과 그녀의 오빠가 아드리안이 만든 칠면조를 내버리며 다툼을 하는 것을 지켜봤기에 칠면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말 그런 이유였다면 굳이 추수감사절이 자신한테는 그저 목요일일 뿐이라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미국인에게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매우 크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미국문화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록키라는 인물을 살펴본다면 정상적이라면 그는 혼자서라도 추수감사절을 의미있게 보낼 정도의 캐릭터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그가 추수감사절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그 이유는 록키가 상징하는 것이 베트남사람이기 때문이다.



록키 영화의 숨겨진 메시지는 범 세계적 집행자를 자처하며 월남전을 감행했다가 혹독하게 대가를 치른 것에 대한 미국인의 우월의식 비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거 아니게 보이는 하층민 록키지만 그는 결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으로서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중상류층과 다를 바 없는 인격체이다.' 이 문장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미국인들에게) 겉으로 보기에 하찮게 보이는 후진국 베트남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위해 결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의지를 지닌 인격체로서 대다수의 미국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영화의 끝장면에서 록키는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에는 관심 없고 자신의 부인, 아드리안을 목메어 부른다. 그리고 감동의 포옹을 한다. 이 장면은 영화가 미국인들에게(정확히는 전쟁을 이끌거나 지지하는 정치인들과 일반인) 그들도(베트남사람들도) 우리들과(미국인들과) 다름없이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2012년 8월 20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