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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4. 29. 19:45



지구 대부분의 지표면이 꽁꽁 얼어붙은 이유가 핵전쟁이나 핵발전소가 아니라 기상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던 인간의 과욕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었다. 이 재앙은 마치 성서의 바벨탑 붕괴나 노아의 방주에서 대홍수처럼 인간 스스로 자신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신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것에 대한 신의 거부권 입장표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설정은 매우 보편적이고 수많은 전 세계 신화에 종종 등장한다.

  


가장 먼저 주연배우 '크리스 에반스'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전까지 '어벤져스' 이외에 본 적이 없는 배우였는데 그래서 좀 괜찮은 정도의 액션 배우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에서 커티스를 연기하는 것을 보고 정말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에 크리스 에반스가 주연을 안 했다면 어쩔뻔했어?"


물론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명배우 송강호와 섬세한 명감독 봉준호의 작품이기에 국내에서는 그것만으로도 기본 이상의 흥행파워가 있었겠지만, 그 이상의 플러스 그리고 해외에서의 성공은 불확실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좋은 이야기이고, 음미할 수 있는 가치와 의미가 잘 담겨있고, 영화도 잘 만들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흥행, 그것도 국내 이외의 국가에서의 흥행에 관하여 생각하자면 '크리스 에반스'의 외모와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외에 에드 해리스, 린다 스윈튼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를 이끌지는 않았고 그런 관점에서 크리스 에반스의 공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크리스 에반스라는 배우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었다. 단지 액션 스타가 아니라 연기를 잘하는 액션 배우 스타. (생각해보면 그렇게 되도록 끄집어내준 또는 멍석을 잘 깔아준 봉준호 감독의 역할도 컸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 틸다 스윈튼의 약간 푼수끼 있는 연기도 좋았고, 본래 이미지가 그런 에드 해리스의 연기는 늘 그랬던 것처럼 좋았다. 개인적으로 불사신 같은 악역 프랑코 형을 연기한 '블라드 이바노브'가 인상적이었다. 정말 이 악역도 없었다면 전체적으로 다소 진지하지 못한 블랙 코메디 비슷한 영화가 될 뻔했다.  

  

  

인물들 외에 열차 내부 로케이션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굉장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만족할만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양하게 표현된 객차 내부는 많았지만 '정말 인류 생존자들이 생존하는 열차일까?'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마치 리얼리즘을 표현한 SF가 아니라 미니멀리즘, 상징주의를 표현한 것 같았다. 마치 컴퓨터 게임에서 시스템의 제한된 리소스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필요한 것만을 표현하는 것처럼 세부적인 인테리어나 미장센이 생략된 객실이었다.

  

예를 들어, 생존이 중요한 마당에 굳이 고급 사우나 시설, 나이트 클럽 등을 운영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즉 이런 설정은 사실주의적 표현이 아니라 상징주의적인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 작은 열차국가에서도 신분의 격차가 극명하게 컷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한편, 윌포드가 거주하는 엔진룸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마치 궁궐처럼 좀더 으리으리하고 어떤 위압감이 느껴지는 공간미학이 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끄러운 엔진 바로 앞에서 전자레인지에서 스테이크를 요리해서 식탁에 가져와서 먹고, 전후 관계를 생각해보면 윌포드의 개인 침실도 없고 심지어 고급 화장실도 없는 것 같았다. 윌포드 정도면 엔진룸을 제외한 별도의 객차 1개를 통채로 쓰면서 개인 침실과 직무실(벽장에 책이 가득하고 고성능 컴퓨터도 있고 큰 스크린으로 1960년대 영화를 즐기고)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아이를 데려간 목적이 그런 목적이었고 그 아이를 구하는 주인공 커티스의 행동은 충분히 서양인들이 좋아하는 현대 영웅의 모습일 것이다. 대중영화라는 관점에서 좋았지만 다소 작위적이고 식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체적인 이야기에 만족하지만 세부적으로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 점들이 없지 않았다. 단지 그런 목적으로 어린 아이를 데려간 것도 그렇고, 윌포드가 하층민의 지도자 길리엄과 한통속이었다는 설정도 현실적으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수많은 만화와 영화에서 흔히 익숙하게 봤던 설정인데 그것을 비중있게 표현한 것에 대해 식상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 커티스의 영웅적인 행동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에 가서 영웅의 행적에 대한 관객의 입장에서 카타르시스 또는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다 허무한 짓이었다는 생각 뿐이었다.


게다가 비록 송강호가 촉발한 것이긴 하지만 불가항력적이고 예상되지 못하고 발생한 눈사태가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는 해법이었다는 설정도 이야기의 결말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감정에 플러스가 되지 못 했다. 쉽게 말해서, 영웅이 우여곡절 천신만고 끝에 무엇을 성취한 느낌이 아니라 끝에 가서 전지전능한 신이 중요한 것을 해결해준 느낌이 든다. 익히 알려진 대로 Deus Ex Machina 라는 것이 평범한 관객의 입장에서 인간적인 만족감을 느끼는데 방해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이야기적으로 결말부분이 만족스럽지 못 했지만 이것은 개인차가 클 것이다. 어떤 관객들은 지금 이대로 만족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건 그렇고,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블랙 유머 같은 잔재미였다. 틸다 스윈튼의 메이슨 캐릭터와 학교 선생이 대표적이었다. 학교의 장면은 마치 컴퓨터 게임 '폴아웃(Fallout)' 을 생각나게 했다. (핵전쟁 이후 생존자들의 세계관을 다뤘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전혀 없지 않은 작품이다) 딱 그런 블랙 유머가 폴아웃 게임 전체에 걸쳐 조금씩 깔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블랙 유머는 아마도 1960년대 미국 SF 영화, TV 시리즈, 만화 등의 특징이기도 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아톰'이 여기에 속한다. 영화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대표적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굳이 그 중에서 구별하자면 초반이 중후반보다 훨씬 좋았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소름돋았던 장면은 창밖으로 팔을 내놓는 형벌도 아니고, 터널을 지날 때 야시경을 쓰고 살육하는 장면도 아니었다. 단백질 음식을 생산하는 드럼통 내부를 보여주었을 때였다.  

  


2014년 4월 29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