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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감상글] Barbie (바비, 2023)

by 김곧글 Kim Godgul 2023. 9. 11. 23:02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흥행했는데, 한국에서는 파리만 날린 이유가 뭘까? 얼핏 페미니즘 풍의 메시지 때문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 그게 전부인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서 미국의 슈퍼 히어로 코믹스가 일본풍 만화책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으로 판매량과 인기가 바닥을 쳤던 시절에도 슈퍼 히어로 장르 영화는 매우 흥행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기도 하다. 

필자 생각에는 한국의 성인들은 (이 영화는 성인이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추억의 바비 인형과 관련된 것이기에 타겟 관객층이 현시대 어린이가 아닌 듯하다) 미국의 성인들처럼 바비 인형에 빠져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성인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필자가 매우 어렸을 때를 어렴풋이 추억해보면 주변에 여자들이 바비 인형을 갖고 노는 경우는 떡볶이, 오뎅을 먹듯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혹자는 동네 마다 즉 경제적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단적인 예로, 요즘 인터넷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예전 한국고전영화를 감상해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도 의도치않게 살펴볼 수 있는데 부유층의 서구식 잔디밭이 깔린 저택이든지 중산층의 양옥, 한옥이든지 하층민의 판자집(하꼬방)이든지 집안에 바비 인형이 있는 경우는 (특별히 인형을 메인 소재로 만든 영화가 아닌 이상)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만큼 널리 보급된 것 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이것만 봐도 한국에서는 마치 슈퍼히어로 코믹스(종이 만화책)처럼 바비 인형 불모지였음을 간접적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워낙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 평범한 한국인이 바비 인형이 뭔지는 알고 있지만, 영화에서처럼 여러 직업의 바비와 각종 소품에 대해서는 더더욱 생소해서 몰입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은 남자들은 각종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그려진 동그란 딱지를 가지고 놀 때, 여자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몇 십원 짜리 마분지에 칼라로 프린트된 (만화풍으로 그려진) 여자 인체와 의류와 소품을 가위로 잘 오려서 인형 놀이하는 모습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아주 특이하게도 이런 놀이를 (가족에 누나들이 많은 경우에 더더욱) 남자 아이가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쳐서 패션 디자이너가 된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이런 장르에서는 ‘순전히 한국 관객 취향의 관점에서’ 남녀 주인공이 세상의 편견 같은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순수한 사랑을 이뤄내야 흥행에 성공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떠오르는데, 80년대에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던 ‘마네킨(Mannequin 1987)’이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주제가 ‘Nothing’s Gonna Stop Us Now (music by Starship)’도 국내 라디오 팝송 프로에서 여러 날 동안 1위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연말 순위에서도 톱10에 들었던 것 같다. 아무튼, 영화 ‘바비’가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필자 생각에 (그렇게 고상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님) 보편적인 순수한 사랑을 살짝 신선하게 요리한 ‘러브스토리’가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편, 참고로, 이런 소재의 장르에서 그런 러브스토리를 기대한다는 뜻이지 모든 장르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와는 별개로, 영화의 비주얼은 매우 좋았다고 생각된다. 보는 내내 그냥 잘 만든 거대한 장난감 종합선물세트를 감상하는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솔직히 비주얼 관련해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CG는 보일 듯 말 듯 거북스럽지 않게, 실제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소품을 예쁘게 잘 만들어서 영화를 두루 장식했는데 몰입하는데 제 몫을 충분히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특별히, 바비를 연기한 마고 로비는 바비 인형 하면 얼핏 떠오르는 젓가락처럼 호리호리한 몸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감독이 캐스팅한 것에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영화는 외모가 아니라 연기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바비 인형의 몸매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배우들 중에서 선택했다면 이토록 흥행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마고 로비의 연기는 코믹스러움과 진지함 사이, 현실 세계와 장난감 세계 사이를 두루 아우르는 그 오묘한 연기를 매우 뛰어나고 독보적으로 잘 해서 인상적이었다. 만약 마고 로비가 바비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다면 웃기기도 하면서도 연기력에는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이 은근히 기대하는 러브스토리는 없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한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지금 생각 났는데, 유머 코드가 미국의 것과 한국의 것이 다르다는 것도 이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한 이유가 됐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소 미국인에게 익숙한 유머 코드가 나오고 토박이 한국인은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지 잘 모르는 장면도 많아 보인다. 아무튼 필자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재밌게 감상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거뒀으니, 레고 장난감 관련 실사영화(사람이 연기)가 부랴부랴 기획에 들어갔을 것 같다. 또는 어떤 유명한 장난감 관련 실사 영화가 스멀스멀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예전에 유명한 인형은 ‘못난이 삼형제 인형’, 판피린 감기약 CF에 등장했던 예쁜 여자 인형 (이것과 비슷한 인형이 70년대 한국영화에서 본 것 같다. ‘별들의 고향’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비슷한 인형이 중산층 가정집 거실에서 드물게 볼 수 있었다) 등이 있다. (혹시 어떤 외국인이 수많은 한국 영화들 중에 왜 하필 '별들의 고향'에서 예를 들었냐고 묻는다면,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톱10에 들어가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톱 50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위상이기 때문이다)
 
별들의 고향 (1974) : 사진 왼쪽에 있는 하얀 드레스 입은 인형(이것과 비슷한 형태의 인형)이 한국 중산층 집에 드물지 않게 있었다.

 


2023년 9월 11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