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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감상글] 콘크리트 유토피아 (Concrete Utopia, 2023)

by 김곧글 Kim Godgul 2023. 9. 27. 23:39

 




원작 웹툰을 전혀 감상하지 않고 순전히 영화만을 감상했다. 티저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감상 욕구를 솟구치게 만들었다. 천재지변 재난 장르 영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심심찮게 다뤄지는 장르지만, 한국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영화 장르는 아니다.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처럼 스케일이 제법 있어보이게 다뤄진 작품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반가움과 호기심을 추가해서 감상했다.


바깥 세상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상태로 가시권에서 유일하게 온전하게 살아남은 라스트 스탠딩 서민형 아파트 한 단지. 명시되지 않은 천재지변 이후에 혹독한 빙하기라도 찾아온 것일까? 실외에 방심하고 머물렀다가는 냉동실의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은 시체가 되버리는 세상이었다. 자신의 아파트가 비록 멀쩡했을 때는 이웃의 고급 아파트 주민들에게 홀대를 받았을지라도 현재는 세상의 그 어떤 궁궐 부럽지 않게 소중하다 (아파트 이름은 ‘황궁’). 자신의 집을 지키려는 황궁 아파트 원주민들과, 천재지변으로 일순간에 온 세상이 황무지가 되버려서 집 없는 떠돌이가 된 또 다른 부랑자(노숙자)들이 맞닥뜨리게 되면서 부득이한 원초적인 힘과 힘의 충돌...... 설정만으로 매우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매우 심각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한국의 흥행작이 대개 그렇듯이 감독은 약간 유머러스함을 간간이 넣어서 풀어냈다. 나름 괜찮았다. 현실적으로 공감되는 여러 인물들의 사연 있는 설정과 대화도 흥미롭고 재밌었다. 한국적인 특징으로 잘 채색된 독특하고 흥미로운 세계관이다. 추후에 시리즈가 안 만들어지면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요즘 한국 장르 영화에는 이런 것을 미리 염두해두고 기획 제작하는 것 같다. 그래야 투자 대비 뽕을 줄줄이 뽑아먹지. 다음 편은 신선한 빌런 영탁(이병헌 분)의 이전 이후 이야기로 풀어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지역에서 전혀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질까? 흥미롭게 감상했고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세계관 만큼은 나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개인적인 생각에 아쉬운 부분도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있기는 했다. 재난 장면은 인상적이었는데 그 이후의 실제 아파트와 주변 폐허의 묘사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정말 영화 보는 맛이 난다고 할 정도로 좋다고 생각되는 묘사는 아니어서 약간 아쉬웠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 단지도 주인공 급 또는 이 이야기의 세계관의 중심축인데 100% 이상 활용하지 못한 듯하다. (영화의 미술 관련 분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거주자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너무 부족한 듯했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그러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주자가 아닌 사람들도 흥미롭게 다뤄졌다면 (시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후반부에 이야기가 절정 다운 절정으로 치닫지 않고 그냥 그렇게 때싸움으로 끝내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도 좀더 심도 있는 뭔가를 펼쳐내고 풀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화 전체적으로 인물 설정과 세계관과 비주얼은 나름 괜찮았는데 그에 비하면 이야기의 후반에 뭔가 인상적인 임팩트의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티저를 보고, 본편을 감상하기 전에 이런 설정의 한국형 SF 근미래 이야기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울리는 시의적절한 설정이다. 근 미래에 전 세계가 어떤 큰 재난(기상이변, 천재지변, 우주적 재난...)을 겪고 초토화가 된다. 거의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기 일보직전이다. 각 지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소수의 사람들만 근근이 생존한다. 그렇게 약간의 세월이 흘렀고, 남한 지역에는 생존자들이 슬슬 뭉쳐서 사회를 이루기 시작하는 시기가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이다. 결론적으로, 남한 지역에는 제법 큰 조직이 2개로 압축된다. 두 세력은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전적으로 다르다. 매우 딴판이다. 이 두 세력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이런 저런 지역에서 이런 저런 사연 있는 인물들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전투하는) 이야기가 주요 소재이다. 중요한 점은 현재의 남한과 북한의 연속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은 북한 나름대로 따로 존재하고 있고 남한 내에서 2개의 큰 조직이 지배권을 놓고 생사를 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주변의 중국, 북한, 러시아, 일본, 미국은 인구도 많이 줄었고 각자도생에 여념이 없어서 남한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일단은 지들 국가들의 재건에 애쓰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미진진하게 감상했다. 어쨌든 만족스러운 점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었다면 중간에 멈췄다가 나중에 시간 날 때 이어서 감상했을 것이다.


2023년 9월 27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