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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감상글]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by 김곧글 Kim Godgul 2023. 11. 13. 21:32

 


재밌었나? 필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재미는 있었지만 엄청 재밌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흥미로웠나? 나름 흥미로움은 확실히 있었다. 유익했나? 영화를 감상하면서 유익함을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나름 유익했다. 지적으로 고상해지는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 감상 중간에 지루해서 멈춘 적이 있었나? 멈춘 적이 있었지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였지 지루해서는 아니었다. 아참,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폭발 실험이 끝난 이후의 장면에서는 약간 지루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참고 끝까지 봤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가 단순히 흔한 킬링 타임용 영화와 비교된다면 결코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 워낙에 유명한 감독이 만들었고 내용이 매우 고상하고 학구적이라서 호불호가 매우 갈릴 것이다. 그래도 전 세계에 수많은 골수팬들이 널리 퍼져있어서 이 작품을 좋게 감상한 관람객들도 충분히 많을 것이다. 일단 영상미의 퀄리티가 좋아서 다소 복잡하고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놀라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짜릿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감상하는 맛은 확실히 있었다.
 
(필자도 한참 젊었을 때 교양과학 주로 우주과학에 관심을 갖고 교양과학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SF 장르를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랬었던 것 같다. 그러나 깊지는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겉핥기 식으로 유튜브 컨텐츠를 간간히 감상할 뿐이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영화적인 픽션으로 잘 만든 작품을 요즘 시대에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다. 전반적으로 흥행도 잘 안 되니까 제작되는 작품 수도 확연히 줄어든 것 같다. 필자의 경우 부끄럽게도 이 영화의 내용을 디테일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감상하는 맛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믿고 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값 톡톡히 하는 작품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하고나서) 필자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대표적인 액션 페인팅 작품이 그렇게도 미국에서 높게 추켜세워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유가, 기존에 수많은 평론가들의 평가들은 각자 찾아보시길 바라며,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의 그림들이 마치 ‘핵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연상시켜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면 최초의 핵폭탄 실험이 성공했을 때, 실전에서 일본에 투하해서 태평양 전쟁에서 매우 결정적인 공을 세운 것에 대해서 미국인들이 어마어마하게 자랑스러워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한국인 입장이나 무릇 어느 나라 현대인은 그것을 잘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미국인들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신무기(‘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미국이 개발해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매우 큰 자부심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미국도 애국심이 널리 고양되고 퍼졌던 나라였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분위기의 미국에서 소련과 군사력 경쟁을 하게 되는 냉전시대의 엄동설한 기류가 깊어지고 있던 1950년대(잭슨 폴록의 대표작들이 등장한 시기)에 미국은 그 어떤 것이라도 미국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공개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의 유럽 명화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완전히 미쳐버린 듯한) 화풍(액션 페인팅)의 그림..... 그리고 그 그림만을 얼핏 살펴봤을 때 수많은 미국인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 미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핵폭탄이 터지면서 수많은 입자들이 해체되어 제각각 이동하는(춤추는) 모습을 보는 듯해서 잭슨 폴록의 그림이 대표적인 미국의 추상화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서,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 그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핵폭탄이 터지면서 수많은 입자들이 흩어지는 경로를 그린 것 같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무릇 어떤 대상 또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깨알같이 해체해서 본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게 표현한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당시에 미국이 자랑스럽게 뽐낼 수 있는 발명품 핵폭탄의 위력도 그와 비슷했다. 잭슨 폴록의 독특하고 참신한 시도가 그토록 높게 치켜세워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서 당시에 절대반지처럼 추앙되었던 핵폭탄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단무의식을 고양시켜주는 그림이어서 그토록 특히 미국에서 추켜세워졌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신선한 (나만 신선한가) 생각을 떠오르게 해준 영화가 '오펜하이머'였다.

 

잭슨 폴록의 그림

 

 

 

2023년 11월 13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