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칼럼, 단편68

[시] 솜사탕 (Cotton Candy) 솜사탕 솜사탕을 들고 구름을 타고 숲으로 날아라. 솜사탕을 들고 구름을 타고 냇가를 스쳐 날아라. 반달곰이 잡아먹는 연어 맛있겠다. 붉은 살, 와사비 섞은 간장에 찍어서 한 입 쏙. 녹는다 녹아. 입안에서 녹는다. 솜사탕처럼 녹는다. 건배하자 반달곰아 치어스 솜사탕을 들고 구름을 타고 바다로 날아라. 솜사탕을 들고 구름을 타고 심해로 들어가라. 수염고래가 잡아먹는 새우 맛있겠다. 투명한 살, 껍질 벗겨 초고추장에 찍어서 오물오물. 녹는다 녹아. 혀 위에서 녹는다. 솜사탕이 따로 없구나. 남자의 심연에서 힘이 불끈 솟아오르는구나. 식곤증으로 기절했다가 깨어나면 고래 배속. 당장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심해에 있기 때문, 배려심 있는 고래. 숨을 쉬러 수면으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허기지면 밥이나 해.. 2019. 3. 4. 00:31
[시] 늦깎이 눈발 (Snow Late Winter) 늦깎이 눈발 올겨울 오랜만에 늦깎이 눈발이 내리지만 녹아서 쌓이지는 않네. 새하얀 아름다움은 무채색의 잿빛으로 온 세상에 짙고 축축한 장막을 드리운다. 한낮이건만 태양은 구름 저편에 꼭꼭 숨어있고, 숲속의 새들은 시끌벅적하게 지저귀지 않고, 거리의 차가운 자동차 엔진과 타이어의 열광이 공허를 메꾼다. 그러나 어디선가 다가오는 감미로운 선율, 미세하지만 깊은, 자연의 생명력의 움찔거림과 숨소리가 새삼스럽게 감지되는 이유는 뭐였을까? 새하얀 눈의 사라짐이 그저 아쉬웠을 뿐, 무채색 습기는 환영받을 적합한 계절이 아니었을 뿐. 그러나 이것은 한낱 인간의 관점에서의 시시콜콜한 감상 자연에겐 이러나저러나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진실 세상 만물의 짓거리는 다 괜찮다고 여길 창조주에게는 그저 하찮은 피조물일 뿐인 인간.. 2019. 2. 23. 00:33
[시] 태풍 (Typhoon, Hurricane) 태풍 (Typhoon, Hurricane) 한가로움의 열광에 달아오른 한여름의 거인이 부유하는 습기를 조물락거려서 비바람을 만드는데 예상외로 폭풍이 빚어지는가 싶더니 걷잡을 수 없게 되었구나. 콧구멍이 아니라 눈구멍으로 생명이 불어넣어지자 몸서리 치고 기지개를 켜며 태풍이 태어난다. 중력을 거슬러 격정적으로 팽이처럼 춤을 추더니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흩날리며 문득 어딘가로 이동한다. 시선을 추켜세워 드넓은 창공을 우러러 부리부리한 눈망울을 흘기며 껌뻑거리는 태풍, 별과 달과 태양이 어둠 저편으로 줄행랑치고, 잔잔한 수면에서 본의 아니게 깨어난 파도들이 정신줄을 내려놓고 빛의 속도로 광란의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어떤 존재도 두렵지 않은 태풍, 어떤 존재도 인지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천진난.. 2019. 1. 30. 01:00
[시] 무언가를 하고 싶거든, 아기는 생각한다. (The Baby Thinks That She Want To Do Something) 무언가를 하고 싶거든, 아기는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고 싶거든. 아기는 생각한다. 뭐 하지? 오늘은 쉬는 날. 오늘 뭐 하지? 먼저 빨래를 해야지. 귀찮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좀 있다 꼭 할거다. 정말 한다니까. 그 다음에 뭐하지? 미용실에 갈까? 화장품을 사러갈까? 아직 쓸 거 많아. 옷이나 사러갈까? 사서 한 번도 안 입어 본 옷이나 입어주고 사도 늦지 않아. 때가 되면 어련히 입겠지. 일부러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고, 폰이 잠잠하다. 혹시 전원이 나갔나? 그건 아닌데. 그래 지금이 좋을 때다.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멀리 해야지. 시간 낭비다. 안녕, 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습관화되었다. 지금 결판낼 수 없어. 서서히 줄이긴 해야 할텐데. 그래.. 2019. 1. 29. 01:00
[시] 조각배 조각배 어두운 먼 과거에서 기나긴 여정을 거친 별빛처럼 차가운 기운을 안고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타고 앙상한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조각배가 무한한 대양을 항해한다. 푹신하고 반투명한 이불을 들락날락하는 달무리가 물고기를 유혹하여 조각배 주위로 몰려들게 해서 오랜 출렁임의 운항에 의한 두통과 복통으로 속이 비워진 조각배 그 속에 조용히 잠자는 소녀의 허기를 달래준다.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꽉 움켜쥐며 움찔하는 소녀의 두 손 불안과 공허감이 혼재하는 웅덩이에 생기라는 동심원이 퍼지는 소녀의 두 눈 오랜 학식으로 채득한 지식의 눈이 감겨진 짧은 순간 원초적 본능의 눈이 총명하게 빛나는 찰나 동안 물고기의 육체는 소녀의 생명력으로, 시큼하고 짠 비린내는 달콤하고 고소한 감칠맛으로, 별빛과 달빛이 채색해준 물고기의 .. 2019. 1. 1. 15:20
[시] 한여름의 축배 (A Toast In The Middle Of Summer) 한여름의 축배(A Toast In The Middle Of Summer) 쩌렁쩌렁하게 녹음(綠陰)을 파헤치며 몰려오는 매미 울음의 격렬한 파도가 휘몰아치고 가라앉는 한여름의 오케스트라 서라운드로 파열되는 곳에서 아직 이른 새벽의 축축한 습기가 생기발랄하게 꿈틀거려 이슬을 들어 올리는데 눈곱이 남아있어 쨍쨍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저 높은 햇살의 자외선이 수풀 속으로 다이빙하여 익숙하거나 낯설게 지저귀는 다종 새들의 쾌활한 읊조림을 온통 휘저어서 포말을 반죽하여 맛있는 시상(詩想)을 만드는구나! 창백한 거인의 시선이 망라하는 지천을 휘청거리며 내달리는 아지랑이의 진한 취기는 까칠한 미소를 무분별하게 방사하는 꽃향기를 목마 태워 냅다 질주하더니 목젖 뒤에 숨은 요사스런 사이렌의 노래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적막하.. 2018. 8. 16. 00:47
[시] 설날의 보물 (The Treasure of New Year's Day) 옛날 교과서에 있던 설날 풍경 (New Year's images from Korean old school textbook) 설날의 보물(The Treasure of New Year's Day) 해마다 치러야 하는 명절의 만찬과 세뱃돈 수여식을 마치고 예전과 많이 달라진 전반적인 설날의 풍경에 익숙해지려 애쓰며 홀로 빈집으로 향하는 열차의 창밖으로 펼쳐진 고즈넉한 전원을 내다볼 때 머릿속에 어렴풋이 피어오르는 내 어린 시절 설날이 애틋하게 그리워 다시 돌아가고 싶단 감성의 덧없음이란 그렇다고 애써 삭제하고 싶단 이성의 부질없음이란 가끔 아주 가끔 끄집어내서 조몰락거리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다락방 깊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는 세상에선 가치 없는 나만의 보물 같구나 2018년.. 2018. 2. 15. 15:30
[시] 12월 어느 일요일 오전 (A Sunday Morning In December) 사진 출처: 인터넷 12월 어느 일요일 오전(A Sunday Morning In December) 오랜만에 일요일스러운 아침 햇살이 멀리서 비스듬히 창문으로 들어와 책상에 쌓여있던 책더미의 표지에 튕겨서 반짝거린다 여름이라면 아니겠지만 겨울에는 따사로운 이런 눈부심이 좋지 않을 수 없다 뜬금없이 떠오른 어렸을 때 봤던 만화책 아마도 겨울방학 이즈음 햇살에 기대어 읽었겠지 누런 종이를 침 바른 손가락으로 넘기는데 인상 깊었던 장면이 진하게 피어오른다 차가운 밤공기를 가로질러 새하얀 눈이 퍼붓는 어느 거리 날벌레들이 떠나버린 어두침침한 붉은 가로등 아래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 입김으로 꽁꽁 얼어붙은 서로의 손을 녹여주는 연인들 군고구마의 칠흑 같은 껍질을 벗기고 뜨거운 노란 속살로 입술을 녹이는데 멀리서 성탄.. 2017. 12. 17. 21:52
[시] 아기는 달린다 축복받는다 (The Baby Does The Ride And Be Blessed) 타볼까? 타볼까나? 자전거를 타야겠다. 아기는 자전거를 탄다. 차르르르 차르르르... 체인이 돈다. 공기가 회전한다. 바퀴가 원운동을 한다. 지구가 운행한다. 아기는 달린다. 달려. 바람을 가르고 달려라.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상큼한 꽃향기가 산란하며 뒤따른다. 이제 타봐야지. 타야겠다. 자동차를 타야 한다. 자동차를 타지 않을 수 없다. 아기는 자동차를 타고 달린다 달려. 운전대를 꽉 잡고 달린다. 씽씽 쌩쌩. 위아래로 좌우로. 아기는 다른 것을 잡는다. 스틱으로 속도를 조절해야 하니까. 자동차는 서서히 달아오른다. 공기마찰을 지나서 뜨겁게 달아오르며 달린다. 부릉부릉 부르르릉 부릉부릉 부르르릉... 아기는 또 다른 것을 잡지 않을 수 없다. 아기가 좋아하는 그것. 생명력의 열매. 흔든다. 위아래로 좌우.. 2017. 4. 5. 22:16
[시] 생명력의 열매는 아기를 축복한다 (The Fruit of Life bless the baby) The Fruit of Life bless the baby 수풀이 고개를 든다. 꽃이 활짝 웃는다. 숲이 만원으로 달린다. 산들바람이 분다. 강물이 콸콸 흐른다. 해와 별이 교대로 춤추고 노래한다. 들짐승과 날짐승이 뒤엉키며 춤추고 노래한다. 그리고 교미한다. 수평이 수직이 되도록 수직이 수평이 되도록 시간은 흘러간다.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를 먹어야 한다.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를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생명력의 열매는 아기 속에 있고,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 속에 있다. 생명력의 열매는 아기를 축복한다.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를 먹고 축복을 받는다. 생명력의 열매는 아기를 또 축복한다.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를 또 먹고 축복을 받는다. 그.. 2017. 4. 2. 21:37
[시] 겨울에서 봄으로 (From Winter To Spring) 겨울에서 봄으로 뜨거운 감각으로 빠져들기는 쉽고 차가운 이성으로 깨어나기도 어렵지 않지만 각인된 기억을 지우기는 불가능에 가깝구나 손가락은 펜의 선율에 빠져들고 펜은 종이의 멍때림을 깨우고 종이는 수없이 다양한 과거와 미래의 찬가를 불러대는데 막상 구체적으로 재현하지는 못하는구나 일부러 인식을 피해 자유로워진 운동화 끈을 매면서 문뜩 날개가 있었다면 높은 산을 먼저 올라갈까? 아니면 드넓은 대양을 횡단할까? 아니면 끓어오르는 사막을 가로지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다가 새삼스럽게 편한 운동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옛사람들은 얼마나 발의 고통을 무시하며 살아야 했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며 계속 걷는다. 발이 시럽지 않은 봄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은 불빛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아나는 것은 어둠.. 2017. 1. 24. 19:50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를 탄다 가을이 온다 누군가는 가을을 탄다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를 탄다 가을 하늘이 맑고 높고 푸르다 어떤이는 가을 하늘에 풍덩 빠진다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에 풍덩 빠진다 푸른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게 물든다 건강해진 말들이 아기를 태우고 신나게 달린다 아기의 윗쪽 아래쪽 입술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풍성한 가을 잔치가 여기저기 열린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흥겹게 하늘을 축복한다 아기와 아기는 각각 생명력의 열매에게 축복을 받는다 해가 달을 BITE 달이 해를 BITE STRONG, 아기가 생명력의 열매를 BITE STRONG 꽃잎이 벌에게 꿀을 INSERT 자연이 수목림에게 생명력을 INSERT DEEP, 아기는 생명력의 열매를 INSERT DEEP 편지지에 러브송을 WRITE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에 무한을 W.. 2015. 10. 12. 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