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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조합하는 마야문자 - 다큐: 크래킹 더 마야 코드(Cracking the Maya Code)

by 김곧글 Kim Godgul 2008. 11. 11.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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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단위의 문자가 결합해서 한 개의 의미있는 글자(음절)을 만드는 문자 체계하면 대표적으로 중국한자가 떠오른다. 한글에서 글자가 조합하는 방법은 중국한자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어쨌튼 '결합해서 한 글자 완성' 착상은 중국한자에서 얻었을 것이다.

며칠 전 마야문자를 해독하는 학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제목은 Cracking the Maya Code. 관련 서적도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것 같은데 나중에 읽어 볼 계획이다. 마야문자는 중국한자처럼 상형문자이면서 때로는 알파벳(음소문자)처럼 쓰여지는 것들과 결합되어 쓰여진다고 한다(음소, 음절 문자처럼 쓰이면서 결합된다는 뜻). 중국한자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 한 개의 음절 속에 상형문자와 음소문자가 섞여서 쓰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본적인 마야 문자는 대략 800개 정도라고 한다. 한글, 로마자, 그리스문자의 갯수에 비하면 엄청 많지만 한자에 비하면 엄청 적은 편이다. 어쩌면 한자의 경우보다 결합해서 쓰여지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문자의 수가 적은지도 모르겠다. (결합하는 방법의 다양성으로 예상할 수 있다)

어쨌튼 마야 문자도 서로 다른 문자들이 결합해서 쓰여졌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글, 중국한자가 결합하는 방식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한다.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워 보인다. 또한 마야 문자 자체는 기하학적인 점, 선, 면으로 되어있지 않고 마치 조약돌에 그린 그림 같다. 태양신이라는 절대 왕권 하에 주로 농경사회였을테고 특권층만이 사용했을 법한 문자를 한 글자 쓰는 일에 굳이 게눈 감추듯 급하게 해야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로마자 알파벳의 태동 지역은 상업과 해상무역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배 출항 전에, 낙타 가버리기 전에 빨리빨리 계약서 쓰고 확인하려면 쉬운 문자가 절실했을 것이다. 이집트 문자 부류를 더욱 간결히 수정해서 사용하는 것은 필요충분조건이었을 것이다. 문자의 형태와 생활상이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야문자는 문자처럼 보이지 않고 장식용 그림 덩어리들의 오케스트라로 보인다. 상다리 휘어지게 다양한 형상의 문자가 모밀조밀 빼곡하다. 이유야 어쨌튼 독창성은 있다. 10미터 떨어져서 봐도 마야문자인지 알아보겠다.

다큐 끝부분에 보면 마야 유적지 지역 어린 학생들이 마치 역사 공부를 하듯이 또는 자신들의 문화를 알고 지키려고 (또는 마야 유적지는 유럽인을 관광오게만드는 그 지역 최대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열심히 배운다.

여담이지만 문뜩 이런 생각도 든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진기가 발명된 것, 그 이후 영사기(움직이는 사진)가 발명된 것은 누가 먼저 만들었느냐의 문제이지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만들었을 인류 역사의 운명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눈, 착시, 꿈, 이야기... 생각해보면 영화라는 존재는 누군가는 만들었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서로 다른 문자가 결합해서 한 글자를 새로 만드는데 그것은 결합에 사용된 각각의 문자와는 다른 의미 또는 음가를 가진다.'는 발상도 인류가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이후 발전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창작해냈을 법한 방법이었을 것 같다.

즉, 한글에서 '서로 다른 음소문자가 결합해서 한 개의 음절을 만든다'는 체계는 세종대왕이 당시에 한자 문화권의 다른 국가에서 만들지 못 했던 것을 가장 먼저 만들었지만 단순히 '결합한다'는 체계 정도는 인류가 문자를 사용한 이래 언젠가는 실행될 항목이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세종대왕의 뛰어난 점은 단순히 문자를 '결합한다'는 것으로 문자를 창제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소 다른 형식이긴 하지만 한자, 마야문자도 다양하게 결합, 조합한다) '문자를 결합하도록 만들었는데 그 방법이 꽤 단순하고 쉽고 간편하고 경제적이고 활용가용성의 폭이 많다.' 이 점이 뛰어난 점이다.

최근 개인적으로 벽에 부딪힌 부분이기도 하다. '결합하면서 쉽고 간편하게' 이런 문자체계를 만들려는데 쉽지 않다. '다소 복잡하게 보일지라도 괜찮고 결합되는 문자체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긴 것들이 다양하게 결합 가능하고 그 결합해 놓은 것도 단순하고 질서있게' 이런 문자체계를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다.

먼 미래에 어쩌면 지금의 로마자는 결합해서 쓰는 형식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결합해서 쓰는 문자체계가 단위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능적으로 뛰어난 문자가 인간 세상에 널리 전파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서양인들의 사고에서는 한자의 결합성, 의미의 다의성 등을 칭찬하고 동양인의 사고에서는 로마자(또는 그리스 문자)의 단순성을 칭찬하다. 전 세계 언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궁극의 세계 문자는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당연히 현행 한글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올바른 길을 달리고 있지만 당사자(the chosen one)는 아닌 듯 생각된다. 그렇다고 곧글류 문자체계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직 그 문자 체계를 발견한 자가 안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몇 백년 후 미래에 범지구적으로 또한 SF소설, 영화에서 심심잖게 볼 수 있는 화성에 이주한 새로운 인류까지 쓰게될 소위 '지구 표준 문자'가 어떤 형태일지를 예상해보면 '다양하게 결합하면서 결합한 것들도 단순하고 다양한 문자 체계'일 것 같다.

2008년 11월 11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