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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단테(Dante)의 '신곡(The Divine Comedy)'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1. 2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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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몇년 전에 구입했었지만 읽다말고 내 손길보다 먼지와 더 가까워진 책이다. 개인적인 평가로 별사탕 3개 절반인 최근 SBS 드라마 '스타의 연인'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것을 계기로 포스트잇을 꼬깃해서 샌드위치 시켰놓았던 부분을 펼쳐 마저 읽었다. 몇달 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영화 '미션'의 유명한 선률을 듣고 몇몇 장면만을 숱하게 봤었지만 정작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 감상한 적 없는 '미션'을 챙겨서 봤던 것과 닮은꼴이다.

'신곡'은 '단테 알리기에리'가 쓴 운문체 기행문이지만 현대적 문장으로 풀어서 쓴 책을 읽었다. 번역된 문장들이 썩 매끄럽지 않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 했다. 게다가 수많은 컬러 그림 자료는 지루하지 않게 읽는데 도움이 컸다. 그중 지옥, 연옥, 천국을 다이어그램으로 간략히 설명해놓은 그림은 꽤 유익하다. 여담이지만 신곡을 읽기 전에는 '지옥'과 '연옥'이 같은 곳인 줄 알았다. 많이 다른 곳이다.

영화 '세븐(Seven)'에서 '브래드 피트' 장면에서 주룩주룩 장대비가 쏟아지고 자동차 안에서 범인을 잡기 위한 단서를 캐낸답시고 택배 받은 책을 읽던 중 짜증내며 내팽개치며 이렇게 말했다. "빌어먹을 단테..." 아마도 '신곡'을 읽다가 머리에 쥐라도 났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7가지 죄악은 신곡에서 가져온 것이다.

잉크를 껴언지며 그린 것 같은 '구스타프 도레'의 예술삽화 중에 신곡의 장면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어쩌면 그 농도 깊은 잉크 선의 스타일이 신곡의 내용과 꽤 부합해 보인다. 알고보니 '신곡'은 그 시대에 초대박 베스트셀러였던 것 같다. 신곡에 영감 받아 엄청나게 다양한 삽화, 그림이 창작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양한 삽화 중에 아크릴로 옅게 흘리듯이 채색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이 개인적으로 맘에 든다. 

'신곡'은 출간 이후 서구권의 문화 전반에 가히 절대적으로 막강한 영감을 끼친 것 같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무엇이 한자문화권적이고 무엇이 로마자문화권적인지(중세 이후 서구문화)를 알려고 할 때 반드시 참고해야 할 책은 성경 다음으로 '신곡'일 것이다. 종교와는 무관하다. 현대 문화 예술을 평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서구 문화 예술의 어릴적 일기장을 읽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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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신곡

신곡을 읽다보면 어떤 곳에서 '반지의 제왕'의 장면이 떠오른다. 서양 3대 판타지 소설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어스씨의 마법사'의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신곡에서 천국을 여행하는 장면은 사이버펑크 작가들이 표현한 가상 세계의 상상력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답다. '살바도르 달리'도 신곡을 감명깊게 읽었었을 것 같다. 신곡을 주제로 그린 연작 외에 유명한 그의 오리지널 그림까지도 신곡의 상상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마그리트'를 비롯 초현실주의 그림도 그렇다.

단테의 묘사대로 '한없이 아름답고 은혜로운 베아트리체'가 이끄는 대로 단테는 지옥, 연옥, 천국을 차례로 여행한다. 베아트리체가 직접 안내하는 경우는 천국에서이고 지옥과 연옥은 베르길리우스라는 시인이 안내한다. 단테의 필력에 의해 성모 마리아 조금 아래 서열에 추켜세워진 '한없이 아름답고 은혜로운 베아트리체'가 암울한 지옥과 연옥을 인도하도록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옥과 연옥은 베르길리우스가 인도하고 천국은 베아트리체가 인도하는 설정으로 썼던 것 같다.

지옥을 여행하는 장면은 암울하고 지저분하고 소름 돋는 공포의 향현이다. 재미도 없고 각양각색으로 무한 학대 받는 죄인을 견문하는 기행글이 대부분이다. 이보다는 덜 어둡지만 연옥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연옥에서는 고행을 해서 자신의 죄를 사하려고 노력하는 죄인을 견문한다. 간간히 천사들이 지옥에서보다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천국은 전혀 다르다. 비교적 짧은 내용이지만 꽤 기분좋은 행복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이러이러한 죄를 지으면 이렇게 괴로운 벌을 받고...'의 맥락이고 단순히 권선징악 교본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깊고 문명비판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하다. 결코 고리타분하거나 뻔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대 문화의 과반수가 서구문화의 영향력 속에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문화를 창작하는 어떤 분야에 종사한다면 반드시 한번 쯤 읽어보면 두루 유익할 것 같다. 보통 사람은 서구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 좋은 참고가 될 듯 하다. 그러나 순수하게 재미라는 측면을 놓고 봤을 때 가치면에서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중국의 '서유기'만큼 재미는 없는 편이다.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한국적인 정서와 꽤 멀다.

호랑이, 악어처럼 가죽을 남겨도 좋고 어떤 인간처럼 이름을 남겨도 의미 있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는 '신곡'처럼 엄청난 상상력으로 한 획을 긋고 문화와 인간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전승하는 소설을 쓰고 죽는 작가라면 이 세상에 태어났던 의미가 '항성천(신곡에서 천국의 가장 높은 하늘)'의 빛 입자 한 알 만큼 가치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2009년 1월 24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