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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해저 2만리 - 쥘 베른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3. 1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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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구입했던 책인데 최근에 읽었다. 2005년에 쥘 베른 사망 100주기를 기념해서 그의 대표작들을 완역출판했다. 그때 몇 권 구입했었는데 최근에 읽었다. 수많은 만화, 애니메이션, 아동 도서로 출판되었지만, 거의 대부분 어렸을 때 한 번쯤 접해봤겠지만, 이번처럼 원본을 그대로 번역한 책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SF 장르를 좋아하기에 관심 갖고 읽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자의 취향을 타는 소설이다.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판매부수의 명성과는 별개로 문학적이지는 않다. 이야기 전개나 인물들의 갈등이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현대 영화나 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감상될 수도 있다. 명작 고전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누구나 읽어야할 정도로 위대한 소설 같지는 않다. 그러나 100년도 더 전에 그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놀랍고 출중한 소설이었을 것으로 감이 잡힌다. 현대처럼 환상적인 영화와 휘황찬란한 영상물이 24시간 범람하는 시대가 아니었을 그 옛날에 쥘 베른의 뛰어난 모험소설이 수많은 사람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때문에 소설 장르 중에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는 순수한 모험소설 분야에서 쥘 베른의 작품만이 갖고 있는 뛰어난 점은 백과사전을 방불케하는 풍부한 과학적, 역사적 지식과 흥미로운 상상력을 적절히 혼합했다는 점이다.

아동 문고의 '해저 2만리'와는 달리 원본은 거의 해양 백과사전에 가까울 정도로 지식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어느 바다를 항해하는데 어떤 해조류와 어류가 있고... 단순히 물고기 이름을 나열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양새와 특징을 한두 문구씩 넣어서 묘사했는데 보통 반페이지, 길 때는 한페이지를 넘길 때도 있다. 이런 내용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유익하며 재밌겠지만 영화적인 드라마틱한 전개를 기대했다면 하품이 쏟아질 것이다. 이 소설이 당시에는 신문 같은 곳에 연재를 했고 (챕터의 분량이 거의 비등하다) 당시에는 계몽 또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대중 소설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였을 시대라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마치 현대 대중적인 한국 영화에서 어떤 의미있는 메시지가 들어있어야 좋은 영화라고 판단하는 통념이 있는 것처럼 당시에는 과학적 지식과 계몽 지식이 적절히 들어있는 소설을 선호하는 통념이 있었을 것이다)

첨단으로 제작된 잠수함의 드라마틱한 모험담이 주 내용이 아니라, 수중 여행을 하며 관찰한 어류와 해조류를 백과사전식으로 서술한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지금으로 치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수중 파노라마를 다소 길게 여러 번 서술했다는 뜻이다. 그 외에는 지질학을 포함 다양한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력이 첨가된 내용이 많다. 어쩌면 그것은 당시 소설의 사실주의적 기법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좀 과해보였다. 해양 백과사전도 아니고 소설인데 말이다.

유명한 잠수함 영화로는 '유 보트(U-boat)', '크림슨 타이드'가 생각난다. '해저 2만리'는 이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해양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여행담에 가깝다. 약간의 갈등은 아로낙스 박사 일행이 노틸러스호에 잡혀있다는 정도인데 무력으로 감금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선장과 함께 해양 탐험을 즐기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귀족적이고 우아하고 매너있는 포로 생활이다.

어렸을 때 공중파 TV만 있었던 시절에 가끔 국경일에 유럽풍의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곤 했다. 아이들도 재미없다고 하고 시청률도 낮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지금처럼 컴퓨터 오락이 없던 시절에 애니메이션이니까 봤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유럽풍 애니메이션의 이야기 전개와 매우 흡사하다. 순수하게 재미로 따졌을 때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아로낙스 박사가 아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에 가깝다. 실제 주인공은 네모 선장과 그의 잠수함 노틸러스호다. 그리고 하나 더 첨가한다면 해양이다. 남녀간의 로맨틱적인 에피소드는 전혀 없으니 여자 독자들이 읽기에는 따분할 것 같다. 어쩌면 잠수함 부대에서 겪었던 군대 얘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장점과 매력과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학적인 매력과 감동이 약할 뿐이다. 쥘 베른의 소설은 짧게 말해서 '순수한 소년들의 로망과 모험'일 것이다. 주인공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이야기의 정서는 그렇게 느껴진다. 정말 꿈과 희망이 가득한 어린이들에게 쥘 베른의 소설만큼 우아하고 기사도적이고 과학적 지식도 주고 상상력도 풍부하게 주는 고전 명작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베스트셀러 명작 고전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내가 언젠가 애를 낳는다면 (내가 낳는게 아니라 내 부인이 낳는거지만)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이 어렸을 때 쥘 베른의 소설을 읽을 수 있게 유도할 생각이다. 쥘 베른의 소설은 세상 물쩡 다 겪고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현사회에 적응한 어른이 읽기에는 별로겠지만, 꿈과 희망을 펼칠 날이 창창한 어린이들에게는 꽤 고급스런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2010년 3월 14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