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소설 감상글)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4. 24. 16:29
가볍고 급박하게 변화무쌍한 일상의 현대에 이르러 더더욱 고전 중에 고전으로 추켜세워지는 이 소설에 대한 편견(고리타분하지 않을까?) 때문에 읽어야지 했던 때가 언제부터였던지 정확히 기억나지않을 정도로 차일피일했었다. 가장 최근의 일은 해리 포터의 실제 어머니인 'J K 조울링' 작가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품으로 이 소설을 언급했던 것을 보고서였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했지만 내 방에 들어온 이상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고 아주 짠하게 '바로 독서'라는 특별한 영예를 안는 책에 속하지는 못 했다. 그러나 최근에 다 읽고 나서는 짠하는 후회감이 들기도 해서 나 자신에게도 놀랐다. 이렇게 괜찮은 작품을 왜 진작에 읽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감.

현대는 로맨틱 영화와 드라마가 범람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그 중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에는 '꺅! 그래 맞아!' 라고 소리칠만한 패턴들이 있는데 이 소설은 그것들의 원형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현대적인 로맨틱 드라마, 영화의 효시가 되는 최초의 소설이라고 말하면 다소 과장이 가미됐을지는 몰라도 결코 어울리지 않는 꼬리표는 아니다.

등장 인물들을 보면 매우 전형적이다. 처음 부분에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읽다보면 너무나 익숙하게 머리 속에 그려진다. 왜냐하면 국내 국외(주로 헐리우드, 영국 영화) 로맨틱 장르에서 익히 봤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한 생각이나 행동의 관점에서 개성있고 매력적인 여주인공(소위 삶에 대하여 깨어있지만 그렇다고 전통사회의 보수성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각각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자매들, 말썽피우는 남과여(이들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한다. 왜냐하면 다소 평범하지 않은 여주인공도 이들에 비하면 대중들이 포용할만하다고 인식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가의 전략이 담겨있다), 자식의 행복(여기서는 결혼)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막무가내의 순박한 어머니, 과묵하고 점잖고 결단력 있는 아버지, 만인이 칭송하는 백마탄 왕자같은 팔방미인 청년 남조연(이 자가 남주연이 되면 너무 노골적이고 식상하고 심심해서 평범한 대중소설로 반짝했다가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로맨틱 장르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가장 기대하는 남자 주인공, 보통 국내에서 히트 친 로맨틱 드라마의 남주인공과 거의 흡사한, '꺅! 맞아!'라고 외칠 그런 사람이다. (다만, 시간과 장소가 많이 다른 국내에서는 어떤 요소들이 가미되어 다소 변형이 불가피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감명 받았던 것은 바로 매력적인 문장력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맛깔나는 대사는 없지만 (만약 맛깔나는 대사에 치중했다면 강산이 변해도 한참 변한 현대인에게까지 사랑을 받는 명작이 되지는 못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맛깔나는 대사는 그 시대의 감수성을 많이 의식하고 담아졌기 때문에 시대와 장소가 달라지면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술하는 문장이 매우 맛깔나고 훌륭하고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진중하지도 않고 너무 현학적이지도 않고 너무 문학적이지도 않으면서 오소독소하고 매력적인 문장이 심심하고 지루할 때 쯤 툭툭 튀어나와서 나로하여금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 표현력에 감명 받으며 이 소설을 기분 좋게 읽어내려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졸링 작가도 이 작품에서 문장력을 공부했다고 말했었다.

그렇지만 현대 대중들이 읽기에 부담스러운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인이 로맨틱 장르를 선택할 때 거의 기대하는 소위 맛깔나는 대사는 거의 없는 편이다. 소설이 쓰여진 그 당시 대부분의 소설이 그러하듯 긴 대사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대사의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 내용적으로는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 문화와 많이 달라 소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기 쉽지만은 않다. 어떤 남자들은 간신이 몇 페이지를 읽다가 혀를 차며 이렇게 내뱉고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또 재벌남과 생기발랄 평범녀의 사랑 이야기야!' 이러한 가시들을 골라내고 속살을 맛볼 단계에 이르면 더할나위없이 훌륭한 고전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2011년 4월 24일 김곧글



ps: 벚꽃이 바람에 날리니 함박눈이 내리는 것 같다. 그런데 왜 함박눈이 내릴 때는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것 같다고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걸까? 아마도 벚꽃은 1년에 아주 짧은 기간동안 폭풍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에 수 개월이 지난 후, 한 겨울에는 지난 봄에 벚꽃에 대한 감동이 더 깊은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어가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벚꽃이 함박눈에 비해 좋은 점은 침대에 뿌려졌을 때 침대와 하나가 되어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주의할 점은 함박눈이 침대에 뿌려졌다고 물침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