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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시) 뒷면과 반쪽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5. 3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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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제자가 스승께 여쭸다

"스승님, 오늘 저잣거리에 갔었는데 수많은 인파가 제 마음을 혼탁하게 했습니다.

제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의식하고 쳐다보는 것 같아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착각이란 것을 알지만... 어떻게 제 마음을 다스려야 좋겠습니까?"

스승이 잠깐 명상을 하고 제자에게 말했다.

"너와 눈을 마주치는 행인들의 앞면이 실제로는 뒷면이라고 생각하거라

즉, 그들은 뒷면으로 뒤로 걷고 있다고 암시해보거라."

순간 제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덤으로 제게 가르침도 주셨습니다.

무릇 세상 사람들은 내면적으로 뒤로 걷고 있다는 것를 우회적으로 깨우쳐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은 먼 산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제자에게 말했다.

"너는 메아리만 듣고 나무와 바위의 숨소리는 못 듣는구나.

무릇 세상 사람들의 사고가 뒤로 걷고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니라.

뒷면이라고 생각하고 좀더 섬세하게 세상 사람들을 살펴보라는 의미였느니라.

세상 사람들의 깊은 것,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무엇을 볼 줄 아는 것이 무릇 도(道)의 출발이니라.

그 지식이 넘쳐나는 순간, 그것 밖의 무엇을 볼 수 있다면 무릇 도(道)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


며칠 후, 제자가 다시 스승을 찾아왔다. 제자의 표정은 우울했다.

"스승님, 지난 번 가르침이 제 삶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스승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뒷면으로 뒤로 걷는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마침 제 약혼녀가 지나갔는데, 제가 그녀를 못 알아보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뿔이 나서 며칠 째 연락도 끊고 잠적했습니다."

스승은 껄껄 웃더니 대답했다.

"문제의 핵심은 다른 쪽에 있구나.

빛으로 가득 찬 자네의 반쪽을 어찌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단테가 본 베아트리체처럼 자네의 반쪽이 여신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자네의 로맨스 도(道)는 한참 부족함을 증거하느니라.

함께 명심하거라.

무릇 저잣거리 여인들은 뒷면으로 보이고

자네의 반쪽만 여신으로 보일 때 비로소

자네는 남편 될 자격을 획득했다고 말할 수 있느니라."


2009년 5월 30일 김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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