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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이끼(2009, 국내) - 한국적인 고딕풍 스릴러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6. 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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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했던 웹툰이 영화화됬지만 기대만큼 못 따랐던 경우가 많은데 흥행을 쫓는 유명한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고 해서 어떤 만화인지 궁금해서 봤다. 영상미와 작품성과는 무관하게 흥행에 관해서는 남다른 재주가 있는 강우석 감독이 선택했는데 뭔가 느껴졌을 것이다.

만화 '이끼'의 장점은 그림과 연출력이다. 스릴러지만 논리적인 두뇌 활동을 요구하는 서구풍은 아니다. 흔히 접하는 헐리우드식 기승전결 내러티브 구조도 벗어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여러 캐릭터를 살찌우는데 그 연출력이 좋아서 지루하지 않다. 현대 영화가 대개 그렇듯 멀리 떨어져 전체적인 이야기를 봤을 때는 대단한 뭔가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끼의 장점은 세세한 연출력이 좋아서 그림을 보는 내내 재밌다는 점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한국적인 고딕풍 스틸러쯤 될 것 같다. 기괴한 괴물이 나오지 않지만 흉측한 뭔가 나올 것 같은 그림체와 연출력은 한국적인 고딕풍이라 평가할 만하다. 영화화되었을 때 산골자기 음습한 작은 마을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꽤 중요할 것 같다. 즉, 스토리에 엄청난 뭔가는 없지만 보는 내내 재밌었던 이유는 음산한 분위기의 마을과 거기에 사는 사연 있는 캐릭터들인데 이들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공간적인 미술(건축물, 조명)을 어떻게 필름에 담아 보는 즐거움을 주느냐가 영화의 흥행을 크게 좌우할 것 같다. 굳이 갖다붙이자면 봉준호 감독이나 나홍진 감독의 영상미가 적합할 것 같다. 지금까지 강우석 감독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영상미를 요구한다. 그에게는 도전이며 실험이 될 것이다.

'이끼'는 영화가 잘 만들어지면 서구권이나 일본에 리메이크 판권이 팔릴 수도 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여러 캐릭터들이 기독교적인 서구 문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월남전 소재도 들어갔고, 예수나 부처와 같은 일을 꿈꾸었던 인물도 나오고, 그를 교묘히 이용하는 마치 멤피스토 같은 교활하고 치밀한 악마같은 인물도 나온다. 박찬욱 감독 작품과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서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캐릭터와 소재에 기독교적인 뭔가가 짙게 베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걸죽하게 비볐다. '이끼'에서도 그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영화가 제대로 잘 만들어지면 일본과 서구권에서 좋아할만한 이야기와 인물이다.

훌륭한 스승을 둔 제자가 모두 훌륭한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제자는 스승과 어깨를 겨눈다. 한편, 훌륭한 스승을 만나지 않았어도 자신만의 무엇으로 스스로 훌륭해지는 사람도 많다. 어쨌튼 이끼의 작가 '윤태호'의 그림체는 허영만 작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캐릭터 그림체가 닮았고, 필요한 만큼만 채우고 여백의 미를 살리는 사각형 속의 미학도 그렇다. 그러나 윤태호 작가만의 독특한 강렬함과 걸죽함이 있다. 이는 허영만 작가에게는 없는 점이다.  

작년에 영화 '추격자'가 의외로 대박을 내면서 그런 류의 영화가 하나 둘 만들어지고 있다. '이끼'가 영화화되는 이유 중에도 '추격자'의 흥행 성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이야기도 다르고 소재도 다르지만 분위기와 스타일은 닮았다. 만화 '이끼'는 강우석 감독이 아니더라도 다른 영화사에서 영화화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잘 만들어진 것 같다.

2009년 6월 28일 김곧글

외부링크: 다음만화 '이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