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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파주 - 하나만 파고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12. 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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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이면서 시적인 영상미, 꼼꼼한 연출은 흠잡을 때 없다. 컷과 컷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에도 장인스러운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재능있는 여류 감독의 선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아쉽다. 예술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면, 국내외 영화제를 통한 명예가 목표였다면 상관없지만, 현대 보통 대중이 영화를 관람하는 재미와 많이 동떨어져있는 것 같다. 학생 운동을 했던 남자 주인공의 삶과 의지할 혈육 없는 처제의 삶이 교차하며 엮어가는 삶이 영화의 큰 줄기인데, 현재 남자가 종사하고 있는 철거민을 돕는 일에 너무 무게가 실어진 것 같다.

처제가 "형부"라고 처음으로 부르는 장면에 도달하기까지 철거민들과 강제 철거반들이 치열하게 대적하는 현장을 처제가 유유히 걸어서 형부가 있는 건물 위층까지 도달하는데 슬로우 모션으로 롱테이크로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한다. 그런 장면을 찍는 것은 매우 공을 들여야 가능하다. 즉, 감독이 철거민에 관련된 이야기에 무게감을 실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처음부터 철거민과 관련된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치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야기로 좁혀갔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철거민 관련 이야기는 현재보다 더 많이 생략하고(암시만 하고)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를 파고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실제로는 영화 초반에는 남녀간의 위험하고 심미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처럼 기대시키더니, 어느 덧 철거민의 애환의 비중이 높아지더니, 대중에 내보인 영화 홍보를 보고 관객이 은연중에 기대한 파격적이고 강렬한 사랑 또는 금기를 넘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랑, 그것을 통해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의 한 측면, 아이러니 그런 것도 없이 끝난다.

학생 운동, 철거민에 관한 배경은 좀더 많이 숨고 사랑을 대하는 남자의 탐미적이고 특이한 행동으로 관객은 그 배경을 느낄 수 있고 전체적인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로 풀어갔어야 현대 보통 관객이 영화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대중적인 영화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추측이므로 실제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 자체는 고전적인 영화 체계 속에서 새로움을 탐미한 잘 만들어진 영화다. 단지, 내용상으로 대중들이 즐길만한 영역에서 다소 동떨어졌다고 생각될 뿐이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데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전 작품 '질투는 나의 힘'도 그랬지만 여느 감독에게는 없는 자신의 독특한 무엇도 있고 그것을 관객들도 느낄 수 있으므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숲의 관점으로서의 내용인 것 같다. 현시대 보통 관객이 원하는 것만을 맹렬히 뒤쫓는 영화도 매력 없지만, 그렇다고 평론가들이나 학구적인 영화 학도들이 좋아할 법하며 보통 관객의 눈높이에서 한참 동떨어진 영화도 매력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두 안개가 만나서 겹쳐지는 영역 어딘가에 예술의 에덴 동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에덴 동산의 어떤 일부일 뿐이지 전부일리는 없다.  

2009년 12월 19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