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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로맨틱 홀리데이, 크리스마스 추억... 등등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12. 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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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홀리데이(The Holiday 2006)

크리스마스가 핵심 소재인 로맨틱 영화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감동적인 면에서 '러브 액츄얼리'에는 훨씬 밀리는 느낌이다. 톱스타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 컨셉과 구성도 좋았다. 단지 아쉬웠던 점은 두 여주인공의 내면의 로맨스가 핵심 줄기이고 남자 조연의 그것은 매우 약하거나 생략되어서 남자 관객이 감정몰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또한 여주인공의 직업도 아쉬웠다. 여주인공 2명의 직업에 있어서 보통 관객이 감정을 몰입할 수 있는 영역이 협소했다. 직업 자체라기 보다는 직업에 관한 묘사와 직업으로 인한 사건이 너무 비현실적이게 보였다. 좋게보면 동화적이었다. 즉, 평범한 보통 관객이 꿈꿀 수 있는 크리스마스 로맨스와 너무 딴나라 이야기처럼 보였다는 뜻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에는 괜찮지만 러브 액츄얼리 급의 감동을 기대하고 봐서 그런지 다소 실망스러웠다. '러브 액츄얼리'는 평범한 관객이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로맨틱 영화를 보기에 가장 훌륭한 영화인 것 같다. 예술적으로 따지면 더 훌륭한 영화가 많겠지만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면에서 그런 것 같다.


에반게리온

주인공 신지와 네르프 국장 아버지와의 갈등이 왜 그토록 기이할 정도로 과도해야만 했을까? 처절하고 구구절절하고 한맺힌 듯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왠만한 만화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주인공 상이었다. 두 부자에게 감정몰입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이 갈등하는 이야기가 서구 문명의 신화에 많이 있기도 하지만, 신지는 예수를 상징하고 네르프 국장은 야훼를 상징한다(또는 신지를 모세에 비유할 수도 있다). 에반게리온 이야기에 여러 면에서 기독교적인 요소가 많이 배어있는 것도 이를 거든다. 인류 종말에 맞서는 구세주 개념, 천사, 롱기누스의 창... 레이는 당연히 마리아를 상징한다. 모티브를 기독교에서 가져왔으니까 신지와 아버지의 갈등도 거기서 온 것 같다.


섬머 워즈(Summer Wars 2008)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이 좋아할 만하다. 한국과 비슷한 일본의 대가족이 나오고 국내에서도 통할 수 있는 가족간의 감동도 좋았다. 할머니가 막강한 권력자라는 설정은 일본 이야기에서 종종 보이는 것 같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해적의 우두머리도 할머니였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먼 옛날에는 여신이 최고신이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권(남성신)을 섬기는 정복자가 지배하면서 여신이 약화되었다. (곰과 호랑이는 토착민 여성을 상징하고 환웅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복자 남자를 상징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국내에도 다양한 흔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식으로 할머니가 배후에서 막강한 권력자였다는 설정이 그런 것 같다. 섬머 워즈는 전형적이지만 구성이 깔끔하고 꽉 짜여져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주인공 남자가 너무 순수하고 범생틱한 남학생이어서 거친 모험을 좋아하는 성인 남자들이 보기에 유치해보일 수 있다. 학생이나 가족 관객이 보기에 괜찮은 것 같다.


어떤 커플매치 TV 오락프로에서

최근에 연말 특집으로 어떤 커플매치 프로를 봤다. 본래 그런 프로가 아닌데 특집인 것 같다. 각설하고, 최근에 책도 출판했다고 하는 조연 배우 출신 중년 총각 남자와 조연 배우 출신 젊은 여자가 짧은 시간 동안 테이블에서 마주보고 얘기하는 순서가 있었다. 남자는 유머러스했고 호의적으로 이끌었다. 스스로 눈치가 빠르지 않다고 말한 여자도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에게 오늘 패션이 좋다고 대화를 이어가다가 "헤어는 만지시지 않았나봐요?"라고 말했다. 당구를 칠 때 삑사리 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여자는 표정관리를 했지만 약간 당혹해하는 표정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 했다. 사회자는 "그건 아니죠!"하며 썰렁한 분위기를 유쾌하게 전환했다. 내가 보기에 남자는 결코 짓궂은 의도는 없었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처럼 일반화할 내용은 아니다. 단지, 남자의 성격으로 판단하건데 그렇게 말한 것의 이면에는 '흔한 남자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예리한 관찰력을 칭찬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면 그 남자는 적어도 수많은 여자를 후려친 선수는 아닐 것이다. 그 여자도 산전수전 수많은 남자를 만나 본 유혹녀는 아닐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 두 남녀가 어울리는 것 같다. 2부가 있는데 아직 방송하지 않아 커플매치 결과는 모르겠다. 


노트북 (The Notebook 2004)

소문은 들었지만 이제서야 봤다. 미드와 헐리우드를 통해서 익숙해져버린 미국적인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마치 동유럽에서 만든 순수한 예술 영화같다. 생각해보면 전 세계 어딜가나 국가나 문화권에 상관없이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한적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나름대로 비슷한 의식과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 전원적이고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은 관객에게 딱 인 것 같다. 정이 쌓인 연인, 오랜 부부가 함께 보기에 매우 좋은 영화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 추억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서 그런가? 어렸을 때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매우 못 느끼겠다. 거리를 걸어봐도, TV를 봐도,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내가 어렸을 때보다 훨씬 못 한 것 같다. 단지 중산층 이하의 경제가 어렵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쉽게 말해서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그래프로 그린다면 완만한 내리막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역사...와 관련하여 수많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가끔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추억이 기억나곤 한다. 고등학생 때 교회에 다녔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에서 중고생 전체가 올나이트 파티를 했었다. 학생 수가 그렇게 많지도 적지도 않고 오붓했다. 남녀 짝이 만들어졌는데 그때 여중생과 짝이 됐었다. 부모님도 같은 교회에 다니시고 순수하고 청순하고 범생틱하고 착한 이미지였다. 이런 저런 놀이를 하고 거의 끝부분에 선물 교환을 했다. 여중생은 나에게 귀여운 다이어리 같은 걸 선물했다. 나는 어떤 것을 선물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그런 일에 익숙한 성격이 아니어서 준비를 안 했거나 또는 매우 보잘 것 없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는 청년부에 가끔 나갔고 그 여중생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문뜩 교회에서 봤는데 훌쩍 컸다. 그리고 이미지가 확 달라졌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 올나이트에서 키티 캐릭터가 그려져있을 법한 다이어리를 선물했던 여중생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고 불만으로 가득찬 시선과 삐딱한 걸음걸이로 교회에 왔다 갔다. 소위 반항적인 여학생 이미지였다. 의외였다. 행여나 그때 내가 선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 나비효과처럼 아주 티끌만한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런 생각은 세상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고 나를 너무 과대망상하는 짓이다. 아무튼 크리스마스에는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 것보다 어떤 것이든지 추억을 만드는 편이 훨씬 좋은 것 같다.

2009년 12월 28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