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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흥행한 한국 영화와 원피스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2. 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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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소비층의 어떤 흐름 또는 성향이 한 작품의 흥망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평단이 공인하는 작품성과는 별도로 작품의 흥망은 현재 시점의 소비층의 선호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기류가 있기에 새로운 작품과 영웅이 생겨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대중음악이 길거리 떡볶이, 배달 음식, 패스트푸드 개념을 닮아가듯이, 상업영화는 과거에 비해 유행가처럼 가볍고 보편적인 정서를 많이 수용한다. 또는 그런 대중문화 콘텐츠가 흥행에 좋은 결과를 냈다.

문뜩 이런 의문이 들었다. 국내 영화 해운대, 국가대표, 전우치, 7급 공무원... 등의 최근 흥행했던 국내 영화의 캐릭터들의 성격은 어디서 착상을 얻었을까? 영화 전문가들의 평가가 그리 썩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흥행에 크게 성공한 요인은 최근 10대에서 20대 관객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성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살짝 다르게 보면 텔레비젼 오락프로 '무한도전'과 '1박2일'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도 닮은 구석이 엿보인다.

어떻게 보면 '신짱구' 만화의 캐릭터들이 성년이 된다면 그들과 같을지도 모른다. 딱 잡아서 '이거다'라고 지목할 수는 없지만 일단, 현재 한국의 10대에서 20대에게 영화와 관련해서 가장 폭넓게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일본 애니는 '원피스(One Piece, 1990년대 후반 시작)'인 것 같다.

주인공 루피(Luffy)를 비롯 '밀짚모자 해적단'의 캐릭터들의 성격은 낭만적이고, 담백하고, 유교사상보다는 노장사상을 더 많이 지니고 있고, 어딘가 미성숙하고(사리분별을 이익에 따라 냉정히 따지지 않고), 해학이 풍부하고, 자신과 관련없는 것에는 무관심하고(그러나 정의감과 단체 소속감은 강렬하고(이것은 국내에서는 민족주의로 은유되고)), 낙천적이고, 사회적인 성장 단계에 무관심하고, 의리를 중요시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건다. 그리고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또는 보통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민하지 않고 사회통념상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에 심각하게 고민한다).

최근 흥행한 한국 영화의 특징은 노골적으로 말하면 내용이 특별하지 않고 전형적이고 심지어는 유치한 장면도 많지만, 일단 관객이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은 재미를 충분히 느낀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서사에 있다기보다는 자신들의(10대, 20대) 사고방식을 많이 닮은 캐릭터들에게 동화되어 흥겨운 시간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도전'이 극장 판으로 나온다느니 만다느니 소문이 있었던 것처럼, 마치 그런 류의 캐릭터를 영화 속에 보는 것을 좋아하는 젊은 관객들이 많은 것 같다. 최근에 흥행했던 한국 영화의 캐릭터들을 애니 '원피스' 속에 등장시켜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 속 캐릭터가 원피스의 캐릭터에서 착상을 얻었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의 대표적인 특징 중에 하나인 행여나 모자라더라도 열정을 쏟아 붓는 것 그리고 낙천적인 달관 또는 해학성이 원피스 속에 풍부하게 들어있다. 어쨌든 원피스 만화책과 애니는 일본,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대중적인 흥행성의 관점에서 만화계의 해리포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에는 만화를 좀 읽는데 '원피스'의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재미가 솔솔했다. 만화계의 '아라비안나이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는 해적 판 '스타 워즈'다. 일본 자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원피스 극장판이 국내에서도 개봉한다고 한다. 그 바로 전에 나온 '원피스 극장판 9기 겨울에 피는 기적의 벚꽃'을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꽤 재밌었다. 내용도 좋고, 감동도 있고, 애니 기술적인 측면도 훌륭했다. 시간이 없어서 TV판 애니를 볼 수 없다면 (너무 많아서 보기도 힘들다) 극장판만 봐도 원피스의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 날 때 원피스 만화책을 읽고 있는데 동심으로 돌아가서 기분 좋게 읽을 수 있고 좋았다. 잠시 심각함과 심오함을 떨쳐버리고 싶다면 마치 맑은 하늘 아래 야구장을 찾듯이 원피스 같이 뻔하고 유치한데도 재미가 솔솔한 만화책을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2010년 2월 10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