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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상실의 시대(Norwegian Wood, 2010, 일본)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3. 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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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군대에 있을 때 내무반에서 쫄병은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최고참들이 제대하고나자 가능해졌다. 그때 누군가 휴가 갔다가 들고 온 책 중에 '상실의 시대'도 있었다. 그당시 읽은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세월이 지난 후 언젠가 읽었었다. 스토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안개처럼 서려있다.

영화는 그 분위기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아련하고 먹먹함... 예술적인 영상미가 돋보였다. 순수문학에 속하는 하루키의 소설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지만 순수영화(예술성이 강조된 영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그렇게 상업적이지는 않다. 보통 일반인이 감상하기엔 지루하고 불친절하고 낯설 것 같다. 늪 같은 저수지 옆에 나무와 함께 서 있는 주요 인물들의 장면을 보면 문뜩 '타르코프스키' 감독영화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아련하고 먹먹한 정서를 세련되고 다이나믹한 영상미로 아름답게 잘 표현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무난하고 좋았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싱크로율이 잘 맞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에 '미도리'와는 달리 '나오코'를 연기한 배우의 느낌이 싱크로율이 다소 떨어져보였다. 내가 책을 보며 상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한편, 책에서는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생각되는 와타나베의 선배 '나가사와' 그리고 음악 교사 '레이코'의 비중이 거의 생략되었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주요 인물인 세 남녀에게 집중해야했을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런 영화는 스토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 정서, 영상미를 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트란 안 훙' 감독은 이런 장르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라는 영화에서 자신의 무엇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도전을 했다가 큰 실패를 본 것 같다. 세월이 갈수록 모든 분야에서 전문화가 심해졌다. 과거에는 한 감독이 여러 장르를 만들어도 대중들이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중들의 수준도 매우 높아져서 한 감독이 여러 장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라도 모두 다 흥행하고 좋은 평가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 현대 예술가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장르, 분야, 요소 등등에 집중하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세월이 지나면 다시 융복합하는 시대가 되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현재는 그런 것 같다. 개인적인 바램으로 '
트란 안 훙' 감독도 이런 류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주면 좋겠다.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자신만의 무엇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도 언젠가 다시 볼 것이다. 일단 영상미가 아름답기 때문이고 아련함과 먹먹함을 표현하는 영화가 최근 경향이 아니라서 그런지 희소성까지 있다. 하루키의 소설이 대체로 그렇듯이 이 영화도 혼자 있을 때 한가할 때 내면을 돌아보고 싶을 때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누구나 자신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또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10명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 그 10명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들어간다. 하루키의 소설은 치열한 삶의 현실에 적응하는데 힘을 주는 작품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실에서 고통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의 소설을 아애 거들떠도 안 볼 것이고, 어떤 사람은 한밤 중에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로 다시 읽을 것이다.


2011년 3월 21일 김곧글


ps: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피어서 봄이 온 걸까? 어떤 행동을 해서 사랑에 빠지는 걸까? 사랑에 빠졌기에 어떤 행동을 하는 걸까? 진실된 사랑이라서 길게 가는 걸까? 길게 가기 때문에 사랑이 진실해지는걸까? 서로 대비되는 각각의 문장들은 상대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Norwegian Wood - the Beat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