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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풍산개(2011) - 이야기 원안 상이 있다면 딱이다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12. 20. 21:11




올해 국내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블로그에 글을 적은 것만 본 것은 아니다) 원안 자체만으로 보면, 즉, 이야기 자체만으로 보면 가장 좋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나리오를 보통 영화들의 잣대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때문에 각본상이 당첨되기에는 뭔가 애매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야기 자체만으로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올해 가장 빛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초반에 확 끌어당기는 인상적인 장면은 없었는데 풍산개(윤계상 분)가 북쪽 여인(김규리 분)을 데려왔는데 국정원이 배신 때리면서부터 본격적인 여정(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때부터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었다.

큰 주제는 체제나 조직에 희생되는 순수한 인간쯤 되겠지만, 보통 관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남녀간의 삼각관계, 즉, 강인하고 우직한 젊은남과 노련하고 치밀하고 현실적인 중년남이 청초한 젊은녀를 놓고 대결하는 이야기 구도는, MBC '전원일기'에 비견되는 KBS 장수프로 '사랑과 전쟁'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일 정도로 체제나 이념에 무관심한 현대 보통 관객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소재인데 이것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는 점이 좋게 보였다.

이런 점은 보통 사람들이 무겁고 따분하다고 느끼는 메시지를 어떻게 제거하지 않고 작품속에 숨기면서 관객이 이야기적인 재미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현실적으로 엄밀히 따지만 자전거를 타고 3시간만에 북쪽 여인을 남한으로 데리고 올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수없이 살인 훈련을 받은 국정원 요원들과 북한 공작원 여러 명이 그렇게 허술하게 지하실에 끌려온다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살인병기들이 그렇게 멍청하게 쌈박질한다는 설정도 개그콘서트에 나올 법한 장면이다. 그러나 은근슬쩍 관객은 그런 설정에 빠져들고 그냥 그럭저럭 재밌게 관람하게 된다. 그 이유는 어느덧 가슴에 들어왔던 여인을 주검으로 발견한 주인공의 분노에 찬 기이한 행동에 공감이 갔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을 했고 감독은 전재홍 씨가 했지만 누가봐도 김기덕 영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여질 것이다. 주인공 풍산개는 그동안 김기덕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 상이기도 하다. 일종의 김기덕 트레이드마크적인 주인공이다. 또한, 영상미, 미술, 미장센 등도 그렇다.

만약, 투자를 많이 받고, 기존의 김기덕식 속사포 촬영이 아닌 웰메이드 영화처럼 치밀하게 느리게 촬영하고, 시나리오도 블럭버스터풍으로 다듬고, 미술과 장소들도 풍부하게 담아냈다면, 돈은 많이 들겠지만, 어떤 면에서 한국판 '본(Bourne)' 시리즈가 될 수 있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의 때깔은 별로지만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했고 좋았다. 윤계상 배우도 이 영화를 통해서 한단계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어느정도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2011년 12월 20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