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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도가니, 파수꾼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12. 26. 21:58



도가니(국내, 2011)

표면적으로는 '음흉한 쌍둥이 교장'이 악당이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진정한 악당은 교장을 구원하는 '다크 시스템'이다. '다크 머신(dark machine)'이라고도 한다. 인간 세상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나 해방이 없듯이 다크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와 장소는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다만, 어떻게 그 어두운 힘을 줄여나가느냐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자 운명일 것이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내용도 충격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폭풍스럽게 표현하고 있는데 예상외로 영화는 흥행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막연한 얘기지만, 영화 자체가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이야기 형식이 보통 관객에게 익숙한 형식이고 관객으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초반부터 중반까지, 즉, 법정 싸움의 초반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새로 부임한 보안관이 생소한 마을에 도착해서 악인을 인지하고 싸움이 오가다가 마침내 보안관이 악인을 물리치고 선량한 마을사람을 구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영화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익숙한 이야기의 결말에 해당하는 것은 이 영화에서 중간쯤에 해당하고 흥미로운 결말은 계속 이어진다. 보통 관객이 보기엔 선이 이기던지 악이 이기던지 어떻게든 결말이 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법정 싸움은 길어지면서 주인공 측 상황도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리고 영화는 미덕지근하게 안타깝게 비극적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런 결말은 작가가 진정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확고히 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악당은 쌍둥이 교장뿐만 아니라 (그것은 피래미일 뿐이고) 그들을 비호하는 다크 시스템이 진정한 악당이라는 메시지 말이다. 이런 점은 이 영화만의 신선한 매력일 것이다.

한국 영화에서 이 영화와 같은 계통의 성격(영상, 연출의 측면에서)의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으로 생각된다. 마치 방호복을 입은 주인공이 치명적인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발원물질을 검색해서 색출해야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넘어지거나 방귀를 꾸는 것처럼 진정성이 있는 심각한 이야기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중에 인간 본연의 코믹성을 첨가해서 관객에게 재미를 첨부하는 방식의 관점에서 말이다.

즉, 쌍둥이 교장은 그 자체의 모습과 태도만으로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 코믹스러운 냄새가 난다. '쯧쯧' 하고 혀를 차면서 나오는 헛웃음 말이다. 수위 아저씨의 부정증언을 들을 때도 관객은 비슷한 성격의 헛웃음을 뱉게된다. 반듯했던 검사가 비디오 테이프 증거물을 묵인하고 배신할 때도 관객은 안타까운 실소를 내뱉었을 것이다.

또한, 서유진(정유미 분)의 음주 운전과 욱하는 성질로 차창을 깨는 장면은 인물의 성격을 들어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재미적인 측면이 강한데 이야기의 심각한 메시지와는 무관하다. 주인공 강인호(공유 분)의 어머니도 구수하고 전통적인 어머니상이며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코믹적인 장면을 만들며 역시 이야기의 메시지와는 무관하다.

전체적으로 울분을 자아내고 심각한 분위기의 영화지만 작은 재미적인 요소가 들어있는데 그것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깨트리기는 커녕 오히려 이야기에 입체감을 주는 분위기 메이커(마치 음식의 맨 마지막에 넣는 후추, 참깨와 비슷) 같은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이런 참깨 요소가 '살인의 추억'과 닮았고, 이런 점은 한국의 어두운 분위기의 상업영화 또는 사회적 메시지를 짙게 들어내는 베스트셀러 소설의 특징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미국 소설, 헐리우드 영화의 비슷한 소재나 주제의 이야기에서는 이런 참깨적인 특징이 매우 적거나 아애 없는 경우가 많다)

혹시, sbs 시사프로 '그것이 알고싶다'의 영화버전은 아닐까, 또는 한때 유행했던 연쇄살인범 소재 영화의 아류는 아닐까 생각하며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전혀 다른 형식미와 이야기였고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된다. 당연히 여러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여담이지만, 배트맨 시리즈를 한국판으로 만든다면 펭귄맨(배트맨 2편에 나옴)으로 이 영화에서 쌍둥이 교장으로 폭풍열연한 배우 '장광'씨가 딱일 것 같다.



파수꾼(국내, 2011)

인물들의 내면묘사가 좋았다. 관객을 호기심으로 몰입시키는데 영화의 보편적인 서사가 아니라 장면들의 연결로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했고 결과적으로 작품성있는 영화가 되었다. 그 연결 방식은 영화 '21그램(21 Grams, 2003)'과 닮기도 했지만 내용과 색깔은 전혀 달랐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지나치게 실험성이 강했던 것 같다. 영화제가 목표였다면 상관없지만, 상업영화를 생각했다고 간주했을 때 보통 관객의 입장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 전달 방식이 재미에 빠져들기에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연구하거나 매니아 관객들은 좋아할만했다. 어떤 면에서 평단의 극찬을 받았지만 흥행에 참패한 상업영화 '구타유발자들(2006)' 또는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국내, 2005)' 같은 성격의 영화일 것이다. 작품성은 확실하지만 보통 관객과의 소통력은 불확실한 영화 말이다.

이 영화의 감독에게 분명히 뛰어난 영화적인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상업영화에 풀어내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보통 관객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서사 형식 속에 이 영화 감독의 장점인 인물들의 내면 묘사를 어떻게 적재적소에 심어놓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업영화를 만들 경우에만 해당한다)

여러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강물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영화에 녹아 있었다. 이들의 다음 작품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12월 26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