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 외화 중 순간 몰입도는 최고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12. 22. 20:12



2001년에 팀버튼 감독이 만든 '혹성탈출'이 기대이하였던 기억이 맴돌아서인지 이번 프리퀄 작품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괜찮았다는 얘기를 듣고 어제 밤에 감상했다. 결론적으로, 올해 본 외화 중에서 순간 몰입도는 최고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에 빠져들어 상영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군더더기 없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졌고 현존 최고 기술의 CG는 눈을 즐겁게 했다.

그건 그렇고, 주제적으로 다소 하드한 이 영화가 국내에서 260만 관객이나 들었다는 것은 꽤 이래적으로 보여진다. 유교 문화권의 한국인이 좋아하는 영웅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먼 옛날 국내 텔레비젼 '주말의 극장'에서도 여러 번 방영되었던 명작 '혹성탈출(1968)'의 향수가 30대 이상 관객을 끌어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파괴된 자유의 여신상)의 충격은 영화 '식스 센스'의 마지막 장면에 비견될 정도의 위엄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옛날 혹성탈출(1968)은 공포물에 가까울 것이다. 좀비로 득실대는 마을에 홀로 남겨진 인간이나 지능있는 원숭이에게 포획되어 온갖 수모를 당하는 영장류 인간이나 매한가지다. 그러나 이번 혹성탈출(2011) 프리퀄은 일종의 '스파르타쿠스' 같은 영웅 이야기다. 내 생각에 보통 현대 국내 관객들은 반란자(반역자)가 영웅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에 매료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럭저럭 흥행한 것은 의외라고 생각된다.

반면, 헐리우드 영화계에서는 반란자 영웅 이야기가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 이유는 원래 미국 역사가 그런 것과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합중국 역사의 시작은 대영제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역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국민영화 '스타워즈'도 반란군(신체계)가 제국군(구체계)를 물리치는 이야기다. 스타워즈도 국내에서 매니아들이 적지 않지만 미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전혀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가 어떻게 깨달은 원숭이들의 행성으로 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려고 하는데 영화가 끝나버렸다. 아쉽고 허탈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1편을 다 봤을 때의 그 기분과 같았다. 이제 활활 달아오를려는 순간, 다음 편을 기다려 달라며 막을 내렸다.

초반에는 치매 치료를 통한 인간의 행복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하는 다소 심오한 SF 주제를 다루고, 귀여운 원숭이가 외로운 인간과 어떤식으로 어우러져 살아갈지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갑자기 콜롯세움 같은 곳에 갇히더니 일종의 노예(스파르타쿠스)가 폭동을 일으켜 금문교에서 경찰병력(로마군)과 신명나는 대전투를 치른다. 영화의 전반과 후반이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태생이 블록버스터이므로 그 흔한 패턴을 너무 당연한 듯이 따라간 것이 이해는 가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좀더 현실적이고 치밀하고 근사한 결말이 펼쳐졌더라면 꽤 훌륭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겠는데 후반부 때문에 그냥 볼만한 상업영화 수준이 되었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취향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지나치게 진지하고 유머가 없다. 원숭이들과 인간들의 상호관계에서 유치하지 않게 적절한 유머를 넣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마치 전 지구를 멸망시키는 바이러스를 퍼트린다는 소재에서 이 영화와 닮은 점이 있는 영화 '12 몽키스'에서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세기말적 심각함을 정신병자 제프리(브래트 피트 분)의 코믹하고 기괴한 연기가 분위기를 전환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다음 편이 기대된다.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제임스 프랭코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성격의 인물을 과하지않게 잘 소화한 것 같다. 사실 연기력이 너무 들어나보이는 것도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된다. 영화 전체 감상이 좋았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배우는 연기를 잘한 것이다. 그리고 원숭이 시저의 표정 연기가 좋았었기에 자료를 찾아보니까 어쩐지... 골룸 역으로 유명한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였다. 그 전문분야에서는 현존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1년 12월 22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