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4. 13. 23:31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개인적인 취향의 영화가 아니어서그런지 감동은 없었지만, 현재 시점 국내 남성관객들에게 폭발적인 재미와 감동을 안겨줬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한다. 충무로 관계자들 사이에서 한국조폭장르는 이제 죽었다고 할 정도로 제작기피 대상이라고해도 과언은 아닐텐데, 이 영화때문에 향후 1~2년 동안 수많은 시시한 조폭영화들이 쏟아져나올 것 같다. 몇년 전 '추격자' 때문에 범죄 스릴러 장르가 활개를 친 것처럼 말이다.


윤종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상업영화 잘 만드는 남자야.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았을 뿐이라구."


윤 감독이 자신의 실력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게된 결정적인 작품은 '용서받지 못한 자(2005)'였다. 필자도 이 영화를 신선하고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게다가 '하정우'라는 배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필자도 그 때부터 하정우씨의 미래를 밝게 점쳤었다. 어떤 인터뷰에선가 하정우씨가 윤 감독의 제안에 응해 일본 신혼여행까지 동행하며 영화 얘기를 했었다고 했는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페르소나를 넘어 수호신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첫 번째 장편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독립영화 필이 매우 강했고, 두 번째 장편영화 '비스티 보이스'는 메이져 상업영화이지만 여러 면에서 독립영화 필의 농후가 짙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세 번째 장편영화 '범죄와의 전쟁(2011)'은 완전히 환골탈태한 완성도 높은 메이져 상업영화였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본래 윤 감독만의 특유의 스타일을 거의 들어내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특히, 미묘하게 차이나는 인물들의 리얼리티적인 대사와 롱테이크 장면연출은 이번 영화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비스티 보이스'에서처럼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하는 결과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출적인 면만 따져봤을 때 철저하게 상업영화스럽게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고 그것은 매우 적중했다. 아마도 국내, 특히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남자관객들이 굉장히 좋아했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필자가 영화감상글에 몇 번 언급했는데 다시 말하면, 국내영화에 조폭을 메인 소재로 사용해서 흥행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반드시 조폭을 우아하거나 세련되거나 고풍스럽거나 점잖은 신사들처럼 그려서는 절대로 안된다. 쉽게 말해서 '대부 시리즈'같은 스타일로 한국 조폭영화를 만들면 십중팔구는 파리만 날린다. 왜 그런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한국 관객들은 조폭 소위 건달이 매우 무식하고, 욱하는 성질이 강하고, 체계적인 싸움이 아니라 막싸움을 하고, 충동적인 성격이고,... 반면에 굉장히 상하관계를 명확히 따지고, 냉혹할지라도 평소에는 매우 인간적인 조폭(가족, 부모를 각별히 생각함), 그리고 양반스럽지 않고 소위 상놈스럽게 그려진 조폭을 보고 싶어한다. 한국사람은 잘 모르지만 외국인이 보면 이런 점은 외국 조폭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조폭의 모습일 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 남자관객들이 익숙하게 좋아하는 조폭의 모습을 잘 담아냈다. 영화의 주제, 의미, 메시지, 스토리, 주인공 영웅들의 생과사... 이딴 거에 관심없는 그냥 보통 남자관객이 한국적인 조폭을 적나라하게 보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영화였다는 뜻이다.


윤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에는 반전의 메시지가 들어있었듯이 이번 영화에는 반폭력의 메시지를 살짝 담아내려고 한 흔적이 보여지기도 한다. 결국 극악무도하게 폭력을 일삼는 하이애나같은 조폭은 너구리같은 달변가 최익현(최민식 분)과 조검사에게 체포되는 결말이기 때문이다.


종전까지의 한국 조폭영화와 차별화된 점은 뭐니뭐니해도 최익현 인물일 것이다. 조검사가 말했듯이, 건달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그를 '반달'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런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갔던 한국조폭영화는 없었기에 신선한 면도 있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 굵은 의미에서 총 4명의 영웅이 등장하는데, 최익현(최민식 분), 최형배(하정우 분), 김판호(조진웅 분), 조범석 검사(곽도운 분), 이들 영웅 중에 논픽션, 픽션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순수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없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전체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좀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건드려주지 못한 미스인 것 같다. 전 세계 영웅 신화에서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내면의 무엇을 담지 못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영화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더 높은 경지의 작품을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 '레옹'에서 '스탠' 형사,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에서 게쉬타포,... 극악무도한 악당들이지만 보편적인 영웅 신화에서 엿볼 수 있는 깊은 곳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다.


한가지 더 아쉬운 점은 순수한 의미의 영화로서의 이야기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시간을 조금 바꿨을 뿐 이야기는 그저 나열식에 지나지 않았다. 앞뒤 사건들의 인과관계, 맞물림, 역전, 뒤통수, 긴박감, 빗나간 예상,... 이러한 순수한 이야기적 재미는 없는 편이다. 픽션으로서의 재미와 감동이라는 측면에서 관객수에 걸맞는 높은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영화가 국내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한국 남성관객들이 좋아하는 조폭의 모습을 정확히 적중해서 표현했다는 점, 주조연들의 명연기, 특히, 최민식씨의 연기변신은 올해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정우씨나 조진웅씨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최민식씨의 배역이 연기력을 펼치기에 훨씬 좋았고 또한 분량도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빛에 가려졌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간간히 슬쩍 거북하지 않게 보여주는 유머있는 장면들도 매우 좋았다. 비오는 날 강아지가 혀를 낼를낼름거리는 장면도 구수하고 좋았고, 소방차 이미테이션 장면도 좋았고, 마지막에 박성광 개그맨의 개그도 유효적절했고, 그 외에 여러 유모가 나오는데 유치하지 않았고 재밌었다. 그리고 이전 작 '비스티 보이즈'와는 전혀 다른 상업영화 연출력을 펼쳐보인 윤 감독의 실력, 판단도 흥행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시리즈로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인데 다음 연작도 기대된다.



2012년 4월 13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