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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시간 여행자의 아내(Time Traveler's Wife)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4. 23. 20:27



시간 여행자의 아내(Time Traveler's Wife, 2009)


 

특별한 긴장감이 없는데도 끝까지 보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캐릭터 설정에 속하는 주인공이 불특정한 방식으로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는 유전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만 특이하고 다른 소재는 과할정도로 평이하다. 시간을 여행한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이 영화(원작 소설 포함)의 독특한 점은 시간 여행자가 겪을 수 있는 충격적이거나 흥미진진한 정치, 역사, 사회, 문화적인 사건을 다루지 않고 오직 오랫동안 사랑을 키워온 부인과의 러브스토리를 다뤘다는 점이다. 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장르에 속하지만 실제 내용은 끝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소녀 취향의 감성 로맨스일 것이다. 마치 비슷한 이야기로 일본 만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 않았다면 조만간 뼈대가 같은 이야기가 일본 만화로 나올거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 스타워즈(1977) 이후에 그 뼈대를 느낄 수 있는 일본 만화가 수없이 나왔던 것처럼 말이다.


특이한 주인공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특별한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데도 그럭저럭 재밌게 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어쩌면 관객의 취향을 매우 많이 탓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소 고풍스럽고 몇십년 전에 유행했을 법한 진부한 러브스토리 형식인데 인스턴트처럼 속사포처럼 사랑하고 헤어지는 요즘 20대들이 감상하기에는 고리타분하고 심심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모든 20대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상으로 특별한 사건이 없었는데 소설로는 어떻게 표현했기에 수많은 미국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소설도 그렇게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것처럼 원작 소설도 달달하면서 특이한 환경에서의 러브스토리를 큰 사건 없이 순수하게 전개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소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굳이 현실적으로 해석해야할 당위성도 없고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지만, 남편에게 어떤 특이한 선천적인 단점이 있다고 해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오랜 세월동안 키워가는 연인들을 위로하는 메시지의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가족에 대한 깊은 상실감과 그리움을 위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아름답고 순수하게 그렸다. 현대 성인을 위한 동화일 것이다.


한편, 큰 의미를 부여할 것까지는 없지만 남자 주인공이 우연히 장인의 오발로인한 총상으로 죽는다는 설정도 어떻게 보면 아주 의미가 없어보이지는 않는다. 의미심장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장인의 입장에서 애지중지하게 사랑으로 키운 소중한 딸을 낯선 홍두깨 같은 남자가 불쑥 나타나 유혹해서 데려가는게 결혼이라고 해석될 수 있고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자신만의 소중한 꽃사슴을 빼앗기는 상실감을 느낀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목만을 보고 특이한 액션을 기대했을까? '마이너러티 리포트' 같은 SF 스릴러를 기대했을까? '벤자민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같은 스케일이 크고 묵직한 서사극을 기대했을까? 모두 빗나갔지만 그렇다고 나빴다는 뜻은 아니다. 잔잔하고 순수하고 소소하고 담백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괜찮았다. 크고 깊은 감동은 없었지만 감상하는 동안 마음은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2012년 4월 23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