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러브픽션(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5. 6. 17:48




다소 혼잡스럽고 산만한듯한 에피소드들이 산으로 갈듯 하다가 그럭저럭 교통정리가 잘 되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다. 두 연인들의 사실적인 내면, 사고방식에 백분 공감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남주 여주를 제외한 인물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이어서 쬐금 아쉬웠다. 예를 들어, 주월(하정우 분)의 백수 형과 락밴드 친구들은 아스팔트 위에 A4지처럼 지극히 평면적이었다. 조금 입체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포인트를 찔끔 첨가했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반드시 조연들까지도 입체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법적으로 봤을 때 소설 속 이야기를 복고풍 3류 스튜디오 촬영 스타일로 연출한 장면들도 있는데 유치하지 않고 재밌었다. 전반과 중반에 서로 다른 2개의 액자영화(영화 속의 영화, 여기서는 영화 속의 소설을 영화로 표현)가 나와서 전체적으로 자칫 산으로 갈뻔 했지만 무난하게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두 연인의 내면과 로맨스를 신선한 관점까지는 좋았지만 심도있게 파고들지 못 하고 흥미로운 액자 이야기로 만회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대개 국내 TV 드라마의 로맨스 장르는 여자 관객이 주 타겟인 경우가 많다. 어쩌면 거의 전부일 것이다. 여자 관객을 위로하는, 재밌게 해주는, 공감해주는 드라마라는 뜻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종종 남자 관객이 타겟인 로맨스 장르가 있다. 이 영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6대4 정도로 남성 관객이 타겟인 것 같다.


일단, 남주 주월의 이야기, 생각, 에피소드가 꽤 많다. 그리고 여주인공 희진(공효진 분)은 사실적이면서도 이상화된 측면도 보여지는 인물이다. 쿨하고 똑똑하고 인텔리적이지만 여성적인 성격이고 남자를 사귈 때 자신보다 사회적 위상이 상중하인지 따져보지 않는 오픈 마인드이다.


또한 한국에 오래 살았으면서 굳이 알래스카 관습에 따라 겨털을 깍지 않는 점도 이상화된 인물이라는 점에 부채질을 해준다. 그것이 건강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산속에서 도를 닦는 도인도 아니고 비즈니스와 관련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현대 도시 직업여성이 겨털을 깎지 않는 경우는 매우 희박할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것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한 방에서 살았는데 본의아니게 할머니, 어머니의 겨털을 심심찮게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여자들이 겨털이 있거나 말거나 솔직히 무관심하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겨털굴욕'이라는 기사를 보면 그게 왜 굴욕인지 공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겨땀굴욕'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한다.)


TV 로맨스 드라마는 여성 시청자가 주 타겟이므로 남자 주인공을 이상화하고 여자 주인공을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야 가능한 많이 보통 여성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여주가 이상화된 측면이 강하고 남주는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다소 남자 관객이 타겟인 로맨스 영화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여주 희진은 심하게 이상화되어있지는 않다(혹시 필자가 남자이기 때문에 편견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굴욕적인 화장실 개그를 사회적 술자리에서 유모로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화하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물론, 어떤 남자는 이것을 이상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여담이지만, 상단의 포스터의 사진은 영화와 다소 동떨어진 것 같다. 남주가 여주에게 애걸하는 로맨틱은 아니기 때문이다. 끝부분에 쬐금 그런 장면이 있지만 포스터 사진에서 느껴지는 찌질남 스타일은 아니다. 무조건 관객을 극장으로 끌여들이고 보자는 심산으로 영화의 내용과 동떨어진 포스터 내용을 연출하고 카피문구를 세겨넣는 것은 좋은 애교 마케팅으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된다.


남자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로맨틱 관련 남자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그 중에 가장 공감되는 것은 이것이다. 후반에 희진이 주월의 누드 사진을 공모전에 전시했고 그것이 사진 동호회 회원들과 관람객들에게 웃음꺼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주월이 심각하게 화를 내는 장면이 그것이다.


희진의 생각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게 뭐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애초에 작품으로 전시할 거라고 말을 했고 강요하지 않았고 사전에 합의를 통해서 사진을 촬영했고 깔끔한 화질로 전시를 했을 뿐인데 주월은 붉으락푸르락 열불을 내는데 이해하기 힘들다, 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여자들은 주월은 속 좁고 변덕이 심한 남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희진의 주장이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 간과된 것은 남자의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멘붕이 된 것이다. 그 이유는 (필자의 생각이 남자를 대변한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영화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속시원히 설명하지는 않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되는 여느 연인들의 감정싸움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정작 주월이 왜 뚜껑이 열리듯이 화를 냈는지의 이유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희진이 이해하지는 못 한 것 같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자신의 누드 사진을 작품으로 찍는다면 (사랑에 빠져있기 때문일테지만) 그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그 사진이 작품으로 전시되더라도 남자답게 멋있는 장면이 채택되어 전시될 것으로 상상한다. 또는 설령 전시된다고 해도 소규모로 또는 동호회의 여성 회원들 위주로 관람할 거라 생각한다. 또는 그냥 여자친구의 친한 여자친구끼리 보며 재밌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봤을 때 주월이 가장 화가 났던 점은 (필자가 보기에) 재밌는 포즈의 또는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누드사진을 전시회를 관람하는 뭇 남자들이 보면서 낄낄거리며 웃는 상황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남자 동호회 회원들도 많이 있는데 거기서 실제 얼굴까지 알려지면서 상패까지 받는다. 즉, 주월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은 자신의 우스꽝스런 누드사진을 여느 남자들이 보고 낄낄거리며 재밌어하게끔 된 상황때문일 것이다.


만약, 주월의 다소 남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누드사진을 전시했다거나 또는 아애 그 전시회에 여자들만 입장할 수 있고 여자들만 깔깔거리며 웃었다면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 기분은 안 좋을 수 있어도 참을 수 있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다른 남자(경쟁자로서의 다른 수컷)이 자신의 우수꽝스런 누드사진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남자의 자손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이것이 주월이 열불을 낸 이유로서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그건 그렇고, 이 영화의 스타일을 굳이 따지자면 (필자의 느낌에) 영국 로맨틱 영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진한 것은 아니고 은근히 몇몇 요소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요소는 한국적이게 잘 소화되고 녹아있어서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진다.


감동이 깊거나 아련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했고 재밌게 볼 수 있었다.



2012년 5월 6일 김곧글(Kim Godgul)




'영화감상글(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울링(2012)  (0) 2012.05.14
건축학개론(2012)  (0) 2012.05.10
댄싱퀸(2012)  (0) 2012.05.06
시간 여행자의 아내(Time Traveler's Wife)  (0) 2012.04.23
이민자(A Better Life 2011)  (0) 201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