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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건축학개론(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5. 10. 20:14




'당신의 첫사랑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영화가 끝날 때 30대 이후 관객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요즘 대중문화계에서는 거의 손 놓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서정성'이라는 재료를 신선한 것으로 모아서 진부하지 않게 잘 만든 것 같다.


재밌는 설정은 첫사랑이 초등학교 다닐 때도 아니고 대학 1학년 시절인데 대략 15~20년이 흘렀다고 완전히 딴 사람의 얼굴로 변했다. 소위 영화적인 설정이고 관객과의 일시적인 약속일 것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부탁한다. "이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보여줄테니 두 주인공이 세월이 좀 흘러서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어도 같은 사람임을 알고 보시기 바랍니다."


한 배우가 분장으로 커버하지 않고 왜 서로 다른 두 배우를 써서 영화를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만큼 두 인물의 정체성, 인격, 내면, 사고방식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영화적인 신선한 재미를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연출했는지 아니면 배우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과거와 현재의 각각 두 주인공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여진다. 세월은 많이 흘렀고, 치열하고 현실적인 사회 전장에서 힘겹게 살아왔기에 순수했던 과거 인격과 전혀 다른 인격으로 변해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영화적 설정이었다.


한편, 관객은 전지적 시점으로 현재의 승민(엄태웅 분), 서연(한가인 분)의 회상을 전부 엿볼 수 있고 두 연인들의 과거를 총체적으로 인지하게되고 그 순수하고 아련한 감성을 관객 각자의 항아리에 넣어 나름대로 숙성시켜 자신만의 첫사랑을 회상하며 영화를 백허그한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승민과 서연은 자신이 품고 살았던 추억을 다시 회상하는 시간을 가지지만, 현재 다시 만나서 그때의 오해나 새로운 사실을 습득하지는 못 한다. 두 사람은 과거에 대해 왈가왈부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다지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영화 속 두 주인공 승민과 서연은 영화를 보는 관객보다 더 적은 정보를 알고 있으므로 (상대방의 회상을 모르므로) 어쩌면 관객이 느끼는 총체적인 아련함과 서정적인 감수성보다는 적게 또는 낮은 수위로 느낄 것이다.



여담이지만, 서연이 다소 불쌍하게 느껴졌다. 제주도에서 어렵게 객지인 서울에 올라와 꿈을 품고 대학에 다니다가 첫사랑을 만나 풋풋하게 차근차근 성장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승민에게서 욕과 함께 절교선언을 당했다. 졸업을 하고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결국 이혼을 해서 현재는 돌싱이 되었고 노환이 깊은 홀아버지를 모시고 제주도 고향집에서 살아가기로 한다. 첫사랑 멘붕을 그냥 마음 속 깊이 뭍어버리기에는 못내 아쉬워 수소문 끝에 승민과 재회하지만, 그는 현재 신혼을 꿈꾸고 있고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도 자신을 오래동안 기억하고 있었다는 단서인 휴대용 CD 플레이어와 전람회 CD를 남겨놓고서... 서연은 SBS 교양 프로 '짝'의 돌싱특집에 나오면 남자들에게 몰표를 받을 수도 있는 캐릭터인데 제주도 벽지에서 아버지와 함께 적적하게 살아간다. 서연이 승민에게 뭘 잘못했기에 승민보다 덜 행복하게 살아가야하는걸까? 이렇게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마도 승민의 입장에서 더욱 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이 강하게 남고 (만약 서연이 너무나도 잘먹고 잘 살고 있다면 그런 감정은 다소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남성 관객의 감수성을 더욱 깊게 어루만지는 작용을 하고 영화의 감동은 더 진한 블랙 커피처럼 마음 속을 텁텁하게 어루만진다.



과거 서연을 연기한 걸그룹 멤버 수지라는 이름을 들으면 국내 코메디계의 거장 이주일이 생각난다. 아마도 '수지큐'라는 노래가 인기였던 시기가 영화 속 과거 그 시대였을 것이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수지라는 이름을 보면 이주일의 수지큐 노래가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코메디언 이주일의 일대기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제목은 '수지큐'로 하면 어떨까? 어쩌면 이미 어느 영화사에서 기획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2년 5월 10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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